[민교협 시사칼럼] 공정한 공정성 담론을 위하여 / 강우진

11:37

5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대선판이 열렸다. 큰 판이 열리자 저마다 자신이 혼란과 격동의 한국 사회를 이끌어갈 적임자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흥미로운 것은 전혀 다른 정치적 이념과 정책을 가진 후보자들 모두가 공정과 정의를 외친다는 사실이다. 민주당의 이재명 후보는 출마 선언문에서 “위기의 원인은 불공정과 양극화입니다. 누군가의 부당이익은 누군가의 손실입니다”라고 원인을 진단하고 “우리가 저성장으로 고통받는 것은 바로 불공정과 불평등 때문입니다“라고 해법을 제시했다.

반면에 국민의힘 윤석렬 후보는 후보 수락 연설에서 “우리 사회의 공정과 상식의 회복을 바라는 민심은 정치신인인 저를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로 선택했다”고 일갈했다. 우여곡절 끝에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에 합류한 김종인 선대위원장은 “우리는 지금 무능하고 부패한 문재인 정부를 심판하고 벼랑 끝에 선 민생과 경제를 되살리며 공정과 상식의 기준을 바로 세울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대장정의 출발점에 섰다”고 밝혔다. 이쯤 되면 모든 게 공정이다.

공갈빵처럼 부풀려진 공정성 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정성이 한국 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공정성 담론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첫 번째 계기는 이명박 정권의 등장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과정에서 BBK와 도곡동 땅 논란으로 대표되는 심각한 도덕성 논란에 시달렸다. 집권 후에도 강부자·고소영 내각논란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을 거치면서 민심 이반을 겪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3년차인 2010년 8월 5일 제65주년 광복절 기념사에서 공정사회를 기치로 내세웠다. 이명박 정부의 갑작스런 공정사회 국정담론에 보수적인 언론조차도 전두환 정권의 ‘정의사회 구현’을 연상시킨다고 비판했다.

두 번째 계기는 이명박 정부를 계승한 박근혜 정부 4년차에 발생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였다. 공적으로 위임한 권력을 사유화한 신가산제(neo-patrimonialism)의 적나라한 속살을 목도한 국민들은 “이게 나라냐”며 분노했다. 연인원 1,700여만 명이 광장에서 촛불을 들어 헌정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냈고 부패한 권력자는 결국 구속되었다. 광장에서 폭발한 시민의 분노는 단순히 부패하고 무능한 권력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한국 민주주의의 불공정성에 대한 누적적인 불만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사건사적인 국면을 통해서 표출된 것이다. 사태 이전 한국 사회를 상징했던 수저 담론이 이를 상징한다.

세 번째 계기는 문재인 정부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누적되었던 공정성에 대한 시민의 요구가 촛불 광장에서 폭발하였고 문재인 정부는 촛불 대선을 통해서 집권하였다. 문재인 정부의 슬로건은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그리고 정의로운 결과였다. 문재인 정부는 시민의 요구를 받아서 공정성을 국정 지표로 삼은 첫 번째 정부였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공정성의 화두만을 던졌을 뿐 서로 다른 차원에서 충돌하는 공정성 이슈를 제도화할 원칙과 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공론장을 마련하는 데 실패했다. 이에 따라서, 문재인 정부 하에서 공정성 논의는 복합적인 공정성이 다차원적 수준에서 충돌하는 양상을 보여 왔다.

▲20대 대선판이 펼쳐졌다. 전혀 다른 정치적 이념과 정책을 가진 후보자들 모두가 공정과 정의를 외친다.

문재인 정부에서 나타난 공정성 논의는 몇가지 특징을 나타낸다. 먼저, 복합적인 공정성이 매우 협소하게 정의된 ‘절차적 공정성’에 집중하여 충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정성 논의는 미국 철학자 노직(Robert Nozick)의 시장주의적 공정성 논의를 닮았다. 절차적 공정성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는 공정성 논의는 종종 개혁에 저항하는 현실 유지의 논리로 귀결된다.

또한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정당한 몫을 주장하기 위해서 공정성 논의가 동원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집단)의 주장을 공격하기 위해서 무기화되고 있다. 양극화된 한국 정치 진영의 정치적 무기로 공정성 담론이 활용되어 왔던 것이다. 이른바 조국 사태에 분노했던 청년층의 목소리는 공정성의 역습이라고 부를만했다.

또한 조국 사태를 통해서 다른 진영에서는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을 공정성의 담론으로 주장했다. 진영간 대립속에서 정치적 동원의 무기화된 공정성은 목소리가 큰 주류 집단을 더 크게 부각시키고 소수 집단은 비가시화했다. 예를들어 청년의 다층적인 삶은 ‘이십대 남성(이대남)’으로 묶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공정성 가치가 한쪽으로 납작해진 것이다.

이에 더하여 공정성 논의는 한국식 능력주의(meritocracy)와 결합하여 나타났다. 한국 정치사상 최초로 30대 야당 대표로 선출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능력주의 논쟁을 정치권에 쏘아 올렸다. 그는 출마 선언문에서 ‘실력만 있으면 어떤 차별도 존재하지 않도록 하는 공정함으로 모두의 가슴을 뛰게 만들자’고 제안했다. 나아가 그동안 한국 사회가 만들어 낸 기울어진 운동장을 보정하는 최소한의 장치로 도입된 여성 할당제를 포함한 다양한 할당제 폐지를 주장했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이 상징하듯이 한국 사회에서 교육이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넘는 징검다리가 아니라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통로가 된 지 오래다. 능력조차 세습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 상황에서 시험으로 환원된 능력주의는 승자에게는 오만을 패자에게는 굴욕만을 줄 뿐이다.

촛불정부로 자임했던 문재인 정부에서 화두가 된 공정성 논란은 갈등 조정 기제로서 민주주의 역할을 다시 환기한다. 무엇이 기회의 평등인지, 능력을 어떠한 기준으로 측정할 것인지, 여러 이유로 제도적 우대가 필요한 사람들을 어떻게 얼마나 지원할 것인지, 공론장을 통해서 사회적 합의에 이르는 노력이 시작되어야 한다. 이번 대선은 공정하지 않았던 그간의 공정성 담론을 공정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다.

강우진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