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 개인이야!”
21세기를 사는 한 여성이 악다구니하며 외쳤다. 응? 어쩌란 말이지? 지금이야 당연한 말이지만, 사실 이 한 마디는 전근대와 근대를 구분 짓는 말이었다. 20세기까지 누군가의 소유물이거나 창조물에 불과했던 인간은 이 한 마디로 가문, 종족, 종교라는 봉건적 굴레에서 ‘개인’으로 분리됐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은 소위 ‘여성상위시대’란 말도 있다. 정말? 여성은 ‘개인’이기조차 힘들지 않을까. ‘소꿉놀이’ 김수빈 감독의 외침을 들어보면 다시 의문이 생긴다. 그는 스크린 속에서 엄마의 역할, 아내의 역할, 며느리의 역할을 이야기하는 남편 하강웅 씨를 향해 “나는 김수빈 개인이라고오오!”를 외친다.
2월 개봉한 ‘소꿉놀이’(제작사 시네마달)는 김수빈 감독의 삶을 “한 개의 샷, 한 테이크로 죽을 때까지 찍은” 영화다. 김수빈 감독은 23살 당시 피임에 실패하며 엄마+아내+며느리+학생+유학 간 남편 몫까지 일하는 ‘가장’의 역할을 ‘맡게’ 됐다.
김수빈 감독은 6년 동안 자신의 눈이 된 카메라를 통해 남편, 어머니, 시어머니의 입장과 태도를 담았다. 그들과 싸우고, 그들을 이해한다. 이 영화는 여성에게 강요되는 모성애·가사노동, 소꿉놀이처럼 강요되는 ‘역할’에 따져 묻고 “균형점”을 찾는 김수빈 감독의 이야기다. ‘개인’의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개인’의 보편적 갈등은 ‘관객 개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꿉놀이’의 매력은 딱딱할 수도 있는 주제를 유쾌하게 풀어낸다는 점이다.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뮤지컬 통·번역가, 각색 작가라는 이력에서 묻어 나오는 유머가 있다. 김수빈 감독이 직접 제작해 영화에 배치한 ‘음부쏭’ 대목에서 관객들은 요실금 같은 웃음을 짓거나, 박장대소한다.
지난 5일 대구를 찾은 김수빈 감독을 <뉴스민>이 만났다.
임신테스트기가 나오고 남편 하강웅 씨는 곧바로 자기 엄마한테 전화한다. 이 과정이 심각할법한데 하 씨 반응은 장난스럽다. 이 장면을 포함해 영화는 연출된 부분도 있나?
백 퍼센트 실화다. 어떤 의도를 갖고 ‘이런 메시지를 전달해야지’ 하고 만든 것이 아니다. 내가 겪는 사건들이 나한테 어떤 의미인지 호기심이 있었다. 일인칭의 나는 사건에서 당황과 충격을 느끼지만, 나의 초자아는 이 사건을 찍으려는 본능이 있었다. 신랑도 개방적이고 엉뚱한 사람이라 촬영에 잘 응했다.
영화에서 나오는 장면은 임신테스트기를 3번째로 썼을 때다. 2개째까지 나는 현실 부정을 했는데, 세 개째에서도 임신이라고 나오니 수긍할 수밖에. 그제야 신랑을 불렀는데 너무 좋아하더라.
극에 나오는 인물은 모두 모순적인 인물이다. 우리 시어머니도 개방적이면서 보수적인 사람인데, 임신 사실을 알고 처음으로 한 말이 “아기 놓자”였다. 시어머니는 경주의 전통적인 문화 속에서 자란 사람이다. 우리가 당황할까 봐 침착하게 행동한 것이었다.
심각한 상황에서도 남편의 그저 장난스러운 모습이 철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남편은 어떤 사람인가?
엉뚱한 데가 많다. 때로는 비현실적인 부분도 있는데 헌신적이기도 하다. 나랑 결혼할 당시는 가진 게 없고 준비된 것이 없는 사람이었기?때문에 그저 그 지점에서 출발한 것이다. 시어머니도 남편도 자기에게 과도한 역할이 주어지면서 내 역할이 무엇인지,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되는 그런 정체성 혼란의 시기를 겪는다. (철없는 모습이나 갈등을 빚는 경우도) 급하면 자기 몸부터 살아야 하니 그런 상황에서 나오는 반응이다.
그래도 남편은 “청소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려. 30분도 투자 못 해?”라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는 게 아닌가.
정리, 청소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내가 헐렁하고 너저분한 것 좋아하고 그런 환경에 타격도 받지 않는데, 우리(처가) 식구들은 그게 아닌 거다. 나는 잘 시간도 없는데 나보고 청소를 하라고 하니…하지만 환경이 달랐던 것이고 그런 환경에서 각자의 힘듦을 가지고 서로 노력했다. 나로서도 시댁에 가면 이제 음식 순서도 맞추고 안 쓰는 가전제품 코드를 다 뽑고 다니고 하는 변화가 있다. 가끔 튀김젓가락으로도 밥을 먹는다(김수빈 씨는 처음 시댁에 갔을 때 하강웅 씨가 튀김젓가락으로 밥을 먹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영화 속에서 출산 직후 태어난 하노아 씨를 보고 아무 말이 없다. 당시 어떤 생각이 들었나?
모성애와 연관 지어 말하고 싶다. 우리 사회에서 모성애는 너무 신격화됐다. 영화 속에서 육아하는 방식은 나의 방식도, 우리 엄마의 방식도, 시어머니의 방식도 다 다르다. 하지만 ‘엄마’라는 존재에 강요되는 역할, 스테레오타입이 있다. 모두의 방식이 다 다른데, 그것을 ‘엄마’라는 하나의 방식으로 만들고 있다. 나는 임신 중일 때 느낌이 너무너무 이상했다. 힘들고 괴로웠다. 과정 하나하나가 역겨웠다. 하루 종일 체한 것 같고, 잠도 제대로 못 잤다. 내가 ‘숭고한 모성애를 가지고 잉태하고 있다’는 뭐 그런 생각보다 나는 숙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좋은 것들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생물체에 다 빨리고 있구나. 내 몸 안에서 노폐물이 아닌 생명체가 나온다고 생각하면 되게 이상한 거다. 여성 생식기에서 3KG짜리가 나오는 거다. 굉장히 이상한 것 아닌가?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 당신 생식기에서 아기가 나온다고 생각해보라. 내 경우에는 “사람 몸에서 사람이 나왔어. 으악!” 이런 느낌이었다. 그 기괴함과 그로테스크함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소꿉놀이’ 창작 동기는 김수빈 감독?개인?입장에서는?’개인’으로 남기 위해 만든 작품 같다.
결혼 이후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었다. 결혼 전에는 나는 온전히 김수빈으로 살았다. 삼포세대라지만 할 거 다 했고, 자유롭게 살았다. 직업이든, 내가 하는 일이든 모든 게. 그런데 결혼 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는 애 엄마, 가장, 며느리, 아내가 됐다. 거기서 ‘김수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목숨 걸고 이걸 찍었다. 이걸 찍지 않으면 이 상황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오래 찍다 보니 카메라가 마치 제3의 눈이라도 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됐다.
‘개인’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살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거리감을 느낄 수도 있지 않나?
많은 사람이 회사에?다니다 지친다. 그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돈 필요 없으니까, 내가 휘둘리지 않고 내가 주인공인 삶을 살 거야. 그러면서 나 같은 창작행위가 아니라도 취미활동이나, 술 먹거나 놀러 다니는 것도 한 방법이 된다. 본질적으로 봤을 때 그 방법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다르다. 내 경우에 그 방법이 창작이었다. 나는 김수빈이다. 인생 자체가 자기를 찾아가는 여정인데, 죽을 때까지 알 듯 말 듯 모르게 살아가는 건데 나를 찾지 않고 살아가는 게 어떤 의미가 있겠나. 물론 환경이 다른 타인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할 수 없다. 그건 경솔한 말이다. 그런 입장의 차이는 영화 속에서도 나온다. 우리 엄마와 내가 다르고, 우리 시어머니가 다르다.
영화를 통해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싶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감독의 인생을 통째로 담은 작품에서 관객이 저마다 다양한 생각을 가질 것 같다.
그렇다. 다만 젊은 세대가 보고 가이드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다. 답이라기보다, 이런 삶을 산 사람이 있는데 너희는 어떻게 살고 싶니?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리고 피임은 꼭 하라는 말도 하고 싶다. 연관된 건데, 여성이 자기 몸에 대해 잘 알았으면 좋겠다. 여성 생식기, 가슴, 몸의 변화 등이 임신이나 출산 이후 많이 달라진다. 현실적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지나치게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고. 여성이 출산 이후 몸이 많이 망가진다. 그걸 보완하는 수술이 다양한데 사실 그건 개인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남편을 위한 수술인 측면도 있다. 나는 그래서 수술도 안 했다. 사는 게 소꿉놀이라면 주체적인 소꿉놀이를 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