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이 무한경쟁에 놓여 있어서일까? 승자와 패자의 희비가 엇갈리는 대결은 언제나 사람들의 흥미를 끈다. 때문에 서바이벌 오디션을 구도로 둔 콘텐츠는 차고 넘치고, 그것도 식상할까봐 강한 자극을 곁들여 확대 재생산된다. 1999년 출간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배틀로얄(2000년)>은 서바이벌 대결 구도를 극단적으로 다룬 영화다. 제목은 셋 이상이 링에 올라 최후의 1인이 남을 때까지 싸우는 프로레슬링 경기 용어에서 따왔다. 이 프로레슬링 경기는 고대 로마제국의 검투 경기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영화는 어른들이 무인도에 무작위로 고른 고교 반 아이들을 무인도에 가둬 놓고 서로 죽이게 한다. 살아남은 한 명만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당시 친구끼리 죽이는 잔혹한 설정 때문에 논란이 일었다. 흥행은 성공했다. 일본에선 2001년 역대 흥행 수익 3위(31억 1,000만 엔)에 올랐다. 국내 누적 관람객 수는 11만 2,500명에 그쳤으나, 2년 뒤 정식 개봉되는 사이 온라인에 나돈 불법 다운로드물이 인기를 끌었다. 시종일관 친구끼리 잔인한 살육이 이어진 게 관심을 모은 비결이다. <배틀로얄>의 유사 포맷은 <신이 말하는 대로(2014년)>, <이스케이프 룸(2019년)>, <아리스 인 보더랜드(2020년)>가 바통을 이었다. 모두 다수의 인원이 하나의 장소에서 죽을 때까지 서로 싸우거나, 임무를 완수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설정이다.
표절 시비에 휘말린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역시 서바이벌 대결 구도를 띤다. 문제는 위에 언급한 영화들의 설정이 뒤섞여 있다는 점이다. 게임을 치르고 이기지 못하면 가차 없이 죽음을 맞이한다는 건 <신이 말하는 대로>와 흡사하고, 내가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전개는 <배틀로얄>과 유사하다. 정해진 규칙으로 게임이 운영되는 점은 <아리스 인 보더랜드>와, 생존게임이 세계 극부유층과 초고위층의 유희라는 것은 <이스케이프 룸>과 같다. 일확천금을 위해 목숨을 건 게임에 뛰어든다는 건 일본 드라마 <제로 일확천금 게임(2018년)>과 한국영화 <10억(2009년)>과 흡사하다. 심지어 게임을 위해 특정 공간을 독특하게 꾸미고 알록달록한 모양새가 동심을 자극한다는 점은 <찰리와 초콜릿공장(2005년)>과 닮아 있다. 특히 독특한 복장의 게임 운영진은 초콜릿공장 움파룸파족과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드라마 전개가 예상한 대로 흘러간다는 점이다. <오징어 게임>에는 456명의 참가자들이 나온다. 벼랑 끝에 내몰린 그들의 사연은 다양하다. 사채업자 빚 독촉에 시달리는 백수, 거액의 회사 자금을 유용한 증권회사 엘리트 직원, 조직의 돈을 탕진한 조직폭력배, 브로커에게 사기당한 소매치기 탈북민···.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나온 인간군상이다. 참가자들은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게임에 목숨을 건다. 무대는 외딴 섬에 마련된 비밀스러운 공간이다. 운영진의 정체는 가려져 있다.
참가자들이 치러야 할 게임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뽑기, 구슬치기, 오징어 게임 등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하던 놀이다. 게임 규칙이나 해법을 찾는 데 시간과 공을 들일 필요는 없다. 때문에 관객이 등장인물과 함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재미는 없다. 그래서인지 드라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게임 내용과 게임을 풀어가는 참가자들의 모습을 조명하지는 않는다. 매 게임마다 탈락자는 속출하고 그들이 허무하게 죽는 모습만 화면에 담긴다. 이 탓에 게임은 정교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설계된 게 드러난다. 게임에선 어이없는 편법이 대놓고 등장한다. 달고나 뽑기에서 운영진 눈앞에서 라이터를 사용하거나, 구슬치기에서 속임수가 통과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드라마가 집중하는 건 생사의 갈림길에서 드러나는 인간군상의 민낯이다. 자동차 회사 구조조정으로 희망퇴직한 뒤 창업에 연거푸 실패해 사채빚에 허덕이는 기훈(이정재)은 가진 것 없고 똑똑하지 않지만 이타심이 강하다. 자진해 생존게임에 뛰어든 그는 잔혹한 경쟁을 혼란스러워한다. 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 이상적이고 상호모순적이고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 도박에 중독되어 노점상하는 노모에게 의지하면서 게임에 참가해 타인의 죽음을 외면해놓고선 노인 등 약자에게 인정을 베풀고 냉혈한 동생에게 인간성을 부르짖는 모습이 너무 억지스럽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수석 입학한 상우(박해수)는 60억 원의 빚을 지고 게임에 참가한다. 적자생존을 이해하고 손익을 계산하며, 불리할 땐 인간성을 내려놓는다. 탈북민 새벽(정호연)은 북에 남은 가족을 탈출시키기 위해 게임에 참가한다. 누구도 믿지 않는 새벽은 소매치기한 기훈과 정을 쌓고 삶을 포기한 지영(이유미)에게 연민을 느낀다. 참가자들의 이야기만 나오는 건 아니다. 실종된 형을 찾기 위해 형사 준호(위하준)가 운영진으로 위장해 게임에 잠입한다. 그는 몰래 사망자의 장기를 내다파는 무리에 합류해 운영진을 처벌할 수 있는 증거를 모은다. 그러다가 위기에 처하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마주친 형은 피붙이를 저버린다.
누구나 전개 방향과 복선, 결론을 예상할 수 있는 점은 매우 아쉽다. 그동안 범죄액션물의 영화 캐릭터와 요소를 짜깁기한 느낌에 상투적인 클리셰들를 반복하는 데다, 결말은 최근 유행하는 스릴러물을 연상시킨다. 게다가 그동안 질리게도 봐왔던 캐릭터를 그대로 도용하고, 깊이 없는 캐릭터들에 억지스러운 대사를 갖다 붙인 모양새는 한숨이 나온다. 배우 이병헌과 오영수의 정체가 드러나고, 등장인물 간 관계가 얽힌 부분에서는 클리셰가 절정에 이른다. 내용을 유심히 살펴보지 않아도 다음 장면을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이야기의 흐름은 뻔하다. 사회 구조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설정과 전개에 과도하게 녹인 탓이다.
클리셰로 범벅이 된 드라마의 주제의식은 남을 밟고 올라서야 하는 경쟁에 내몰린 구조에서 공정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보이지 않고 그저 잔인함을 통해 자극만 강조된다. 경쟁으로 내모는 현대사회와 인간성을 잃은 사람들을 끌어와 영화 속에 꼬집으려 했다면, 참신한 아이디어와 익숙한 틀을 벗어난 설정, 뻔하지 않은 전개와 탄탄하고 정교한 플롯으로 무장해야 했다. 하지만 드라마는 죽어가는 와중에 인간에 대한 믿음과 불신, 아내와 아들과 살던 옛날 골목 풍경에 대한 회한, 자발적으로 게임에 참가하지 않았느냐는 당위 등을 설명하기에 급급하다. 간단한 유아적 놀이에 목숨을 건다는, 대단하지도 참신하지도 않은 아이디어에 이런저런 이유를 가져다 붙인 것에 불과한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징어 게임>은 전세계 넷플릭스 티브이 쇼 부문 1위에 올랐다. 미국, 독일, 브라질,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모로코 등 66개국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외국에서는 호평 일색이다. 영상 콘텐츠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 지수는 100%에 이른다. 국내에선 반응이 엇갈리지만, 대체적으로 한국 드라마가 세계적인 화제작으로 우뚝 선 것을 환호한다. 높게만 보였던 문화적 장벽이 무너진 것이라고 추켜세운다. 짜임새, 완성도든 결과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고 있으니, 극찬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냥 넘기기에는 씁쓸하다. 사회 결함을 인간의 뒤틀린 본성에서 찾는 <오징어 게임>의 메시지를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공중에 붕 뜨고 흥행만 주목하기 있기 때문이다.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