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앞두고 있지만 경북대 서문(대현동) 인근에 거주하는 무슬림 가정은 한국의 명절 분위기까지 느껴볼 여유가 없다. 북구청과 경북대 등 관계 기관이 이 지역 이슬람 사원 건축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서, 지역 내에 무슬림 혐오 정서가 커졌고 거처를 옮겨야 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 사원 건축 부지 바로 앞에 사는 경북대 대학원생 알리(가명, 33) 씨는 지난 일요일(12일) 오전 스피커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한국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영어로 들리는 한 문구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슬람 아웃(Islam out)”.
알리 씨는 옆에 누워 있는 딸(4)과 아들(2)이 자신들을 향한 소리에 놀랄까 봐 염려됐다. 그날 대현동에는 유튜버가 찾아와 증오 연설(헤이트 스피치)을 하며 라이브 방송을 했고, 급기야 경찰까지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사원 건축 문제가 불거진 뒤, 이곳에서 세입자로 살아온 무슬림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떠나야 하는 상황도 연출되고 있다. <뉴스민>이 서문 지역 무슬림 커뮤니티에 확인한 결과, 최근 이곳 일대에서 외국인 가정 다섯 가구가 계약 만료 후 집주인으로부터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은 것으로 확인된다.
이들 다섯 가구 중 네 가구는 무슬림이다. 다른 한 가구는힌두교도이지만 집주인으로부터 무슬림이라는 오해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무슬림 가구 네 가구 중 한 가구는 이곳을 떠나 경북대 인근 다른 곳에 터를 잡았고, 다른 세 가구는 조만간 다른 곳을 찾아 떠나야 한다.
알리 씨는 조만간 집을 비워야 하는 세 가구 중 한 가구의 가장이다. 그는 20일까지 방을 비우라는 통보를 받았다. 갑작스러운 통보였지만, 알리 씨는 다른 곳을 찾는 수밖에는 없었다. 매일같이 방을 알아보려 지역 일대를 돌아다녀도 방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경북대가 이미 새 학기에 접어들어, 적당한 방은 계약이 이미 이뤄진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알리 씨는 집주인에게 방을 구하지 못했다고 사정했고, 방을 찾을 때까지 15일 동안 더 머물도록 허락을 받았다.
알리 씨의 옆방에 살던 경북대 대학원생 노만(가명, 34) 씨는 이미 방을 비우고 경북대 쪽문 근처로 거처를 옮겼다. 노만 씨는 6개월 뒤 박사과정을 마치면 방글라데시로 돌아갈 계획이었기 때문에, 집주인에게 6개월만 연장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노만 씨는 “그 집에서 살 때 ‘테러리스트’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어느 종교에나 극단적인 사람들이 있지만, 우리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라며 “대화를 해야 한다. 북구청이든 누구든 같이 모여 앉아서 방법을 찾는 길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기자와 만난 알리, 노만 씨의 집주인 A 씨는 재계약을 하지 않는 사정에 대해 “주택 연금을 신청하기 위한 것”이라며 “다른 건 모른다”고 설명했다. A 씨 말처럼 집주인들이 계약연장을 해주지 않은 이유가 단지 무슬림 때문인지는 분명하게 확인되진 않는다.
다만, 인근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아무래도 집주인들이 외국 사람을 선호하지 않는다. 말도 안 통하고, 문화도 다르고, 사원 때문에 문제도 있다”며 “있던 사람 나가면 외국 사람과는 계약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마을 분위기를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집주인들은 세 많이 주고 깨끗하게 쓰면 마다할 이유는 없다. 무슬림이라는 이유가 계약만료랑 연관이 있다기 보단 소득과 문화에 차이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세를 구하는 (이슬람) 사람들이 보통 가족끼리 생활하고, 소득 수준도 떨어져서 불편하다는 인식이 예전부터 있었다”고 말했다.
대현동 이슬람 사원 건축 허가 반대 비상대책위원회도 관계 기관이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서재원 비대위 공동위원장은 “이 지역에는 (무슬림을) 안 받으려는 분위기가 있다. 누가 계약 연장하고 싶어 하겠나”라며 “경북대 총장도 찾아갔지만, 만나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17일 저녁, 기자와 만난 알리 씨는 여전히 옮겨갈 방을 찾고 있다. 그와 아내는 아들과 딸의 손을 잡고 인근 지역의 옮겨갈 집을 알아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방 하나 빈 곳이 있다고 해서 보고 오는 중이에요. 계약이 잘 될지 모르겠네요. 우리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모든 룰도 다 따르고 있어요. 그런데도 갑자기 집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 슬픕니다. 사원 갈등이 알려지면서 외지 사람들이 와서 크게 헤이트 스피치를 합니다. 아이들이 놀라는 일도 있고, 아이들한테 문제 생길까 봐 무섭습니다. 지금은 평화가 없어요. 사원 가까이 살고 싶지만, 오히려 떠나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방자치단체가 도움 줘야 하는데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 같네요.”
박중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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