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코로나19 이후 공공의료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대구시는 제2대구의료원 건립을 천명했고, 공공의료에 대한 지원도 확대하겠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제2대구의료원 건립 추진을 앞두고 대구 공공의료를 ‘어떻게’ 강화하고, 지원할지, ‘무엇을’ 강화하고 지원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코로나 이후, 대구 공공의료] ① 2021년 6월 현재, 대구의료원
[코로나 이후, 대구 공공의료] ② 진단, 대구 의료체계의 빈틈
[코로나 이후, 대구 공공의료] ③ 처방, 제2대구의료원이 나아갈 길은?
[코로나 이후, 대구 공공의료] ④ “제2대구의료원 건립, 큰 그림에서 고민해야”
[코로나 이후, 대구 공공의료] ⑤ “좋은 공공병원, 지자체 정책 의지가 중요해”
[코로나 이후, 대구 공공의료] ⑥ “공공병원, 잠재 응급환자 소화할 수 있어야”
[코로나 이후, 대구 공공의료] ⑦ “대구는 정말 의료 자원이 충분한가?”
[코로나 이후, 대구 공공의료] ⑧ “제2대구의료원 건립, 뉴노멀과 올드노멀의 경쟁될 것”
김창엽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연구소 소장)와 인터뷰는 제2대구의료원 건립을 대구 안에서만 고민할 게 아니라 전국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필요성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처럼 민간의료 의존도가 높고, 공공의료 확충에 인색한 나라에서 제2대구의료원은 단순히 ‘대구’ 의료원 성격에 한정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로나19 시국에 대구의료원은 대구 시민뿐 아니라 전국의 코로나19 확진자를 치료했고, 치료하고 있다. 비단 대구의료원만 그랬던 것도 아니다. 지난해 2, 3월 대구에서 확진자가 폭증했을 땐 광주의 공공병원으로, 경기도의 공공병원으로 대구 시민들이 입원했다. 민간의료체계가 병상을 내놓지 않을 때, 전국의 공공병원이 서로를 도우며 코로나19에 대응했다.
코로나19 이후에도 이같은 분위기는 여전할 거다. 공공병원이 적지만, 역할은 더 강조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전국적 관점에서 제2대구의료원의 위상과 역할을 고민할 필요가 있을거다. 그렇게 시작된 김창엽 교수와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오랜 시간 의료의 공공성을 강조하고, 건강불평등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를 교정하는 노력을 해온 김 교수는 본질적인 물음에서부터 이야길 시작했다.
본질적 물음이란 건 이런거다. ‘의료가 불평등하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공공의료 확충이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의료시설이 충분하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뉴노멀은 그저 오는 것인가 만들어가는 것인가’···. <뉴스민>은 지난 12일 서울 동작구 시민건강연구소에서 김 교수를 만날 예정이었지만,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 격상에 따라 20일 비대면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기사는 두 편으로 나눠 싣는다.
= 취재를 하며 다양한 이야길 들었지만 대구의 경우엔 전체 의료체계를 놓고 볼 때, 의료기관이 부족하다거나 질적으로 떨어지는 건 아니라고 하더라. 그런데 그것이 조화롭게 운영되지 않아서 경북대병원 같은 경우에는 응급실이 포화 상태가 된다거나 하는 문제가 있다는 이야길 많이 들었다.
의료체계에서 대구가 충분하다, 부족하지 않다는 말도 쪼개서 봐야 한다. 중환자 치료 시설은 충분하다고 치자. 그러면 대구에서 모든 사람들이 아무런 비용 부담 없이, 시간을 많이 쓰지 않고 갈 수 있는 1차 의료 기관이나 인력은 충분한가? 정보도 잘 없고, 스마트폰도 잘 쓰지 못하는 노인들은? 이들 중에선 고혈압이나 당뇨를 관리해야 하는 이가 많은데, 잘 되고 있는가? 대구 달성군의 외진 곳에 있는 사람이나 북구에서도 깊숙한 곳에 떨어져 사는 사람들은 제대로 된 의료 관리를 받고 있는가? 이런 건 의료의 문제가 아닐까? 의료 자원이 충분하다는 이야기에서 이 사람들을 빼고 이야기해도 괜찮은가?
= 의료 자원이 충분하다는 건 착각이라는 이야기로 들린다.
한국 전체를 놓고 보면 대체로 부실하다. 예를 들면 저소득층에 대해서 또는 의료기관과 지리적으로 많이 멀거나, 노인, 장애인에 대해선 필요하지만 충족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특정한 계층에 따라서, 장애 여부에 따라서, 고용 형태(정규직/비정규직)에 따라서, 소득에 따라서 상당한 정도의 의료 불평등이 있다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다. 이걸 의료 문제라고 보면 대구가 또는 경북이 의료 자원이 충분하다는 건 어떤 의미냐는 거다. 앞서 이야기한 이런 문제를 잘 해결하고 있느냐는 차원에서 보면, 대구에 대해선 정확한 정보가 있는 건 아니지만 전국적 경향을 볼 때 이를 충분히 해결하고 있는 지역은 없다. 이런 불평등은 전국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다.
= 지금의 말씀은 소외계층에 대한 의료 서비스 지원이라는 공공의료의 역할에 한정된 설명처럼 들린다.
‘소외계층’이란 말도 다시 짚어야 한다. 소외계층이라고 하면 독거노인, 장애인 등을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문제가 있는 말이다. 전체는 다 괜찮은데, 일부만 떼어서 특별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문제가 크다는 느낌을 준다. 실제론 그렇지 않다. 의료에서 불평등한 정도로 하면, 소득계층에 따라 수직적으로 나열된다. 아주 여유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은 충분한 의료 서비스를 받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내려갈수록 차츰 문제가 생긴다. 그렇다면 어디쯤에서 구분해서 문제 있는 집단이라고 볼 것인가? 이런 방식은 이분법적인 구분이다. 의료 불평등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 그 말씀은 다시 전 국민에게 필수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공공의료 패러다임의 변화와 궤를 같이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표현을 어떻게 하든, 구분을 어떻게 하든 간에 의료에서 벌어지는 불평등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할 때, 한국 의료의 기본적인 패러다임, 사람들의 기본 인식의 틀은 비용 부담 문제 하나로 해결해 왔다. 비용 부담 문제는 결정적으로 건강보험 제도가 도입되면서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 관심에서 멀어졌다. 본인 부담을 뺀 나머지 부분이 전 국민 건강보험 체계에서 차이가 없어진 것처럼 보이는 거다. 민간의료기관이든, 공공의료기관이든 비용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게 된 거다. 그렇게 불평등, 취약성이 생기는 나머지 다른 영역도 없어진 것처럼 느껴지게 됐다.
= 그런데 없어진 게 아니라는 말씀이신 것 같다.
비용 부담만 있는 게 아니라 지리적 거리, 취약지역이라는 게 있다. 경북 영양이나 청송은 공공이든 민간이든 멀어서 못 간다. 지리적인 요소뿐만이 아니다. 글자를 못 읽는 노인은 몰라서 못 가고, 차가 있으면 10분이면 가는 거리를 차가 없으면 못 간다. 또는 일당벌이 하는 노동자는 시간이 없어서 아무리 아파도 병원에 못 가고, 빈곤층이나 가난한 사람은 병원을 찾아가는 건 되지만 병에 더 많이 걸린다.
병이 생기고 난 다음에 병원에 가서 비용 부담을 하는 건 비슷해졌더라도 거기까지 이르는데 수없이 많은 불평등과 취약한 요인이 있다. 이런 것들이 비용이 비슷해졌다는 것만으로 ‘문제’란 인식이 사라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비용도 비슷하지 않다. 최근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서 발표한 걸 보면 병원 소유 주체에 따라서 본인 부담 비율도 차이를 보였다. 공공병원이냐 민간병원이냐에 따라서 차이가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비용 부담도 사실은 동등해진 게 아니다. 그래서 제 주장은 가장 넓은 의미에서 한국 의료의 공공성을 높여야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거다.
“의료와 건강의 불평등, 전국적으로 보편적인 현상”
“넓은 의미에서 한국 의료의 공공성을 높여야 문제해결”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을 개선하기 위한 공공성 확대”
“공공병원 더 짓자는 주장, 공공성 확대에 부합하는지 되돌아봐야”
=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건지 솔직히 잘 잡히지 않는다.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방금 말씀드린 것을 다 해야 한다는 의미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한국 사회 전반에 공공성의 원리가 적용되어야 좀 더 덜 불공평하고, 좀 더 형평성이 높은 건강 수준, 의료 혜택으로 갈 수 있다는 의미다. 그중에서 공공병원 공공의료는 일부다. 의료 말고, 예방도 해야 하고, 지리적 거리나, 정보 해독력과 관계없이 의료에 동등하게 접근하기 위해 교통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이번에 콜센터, 물류센터에서 확진자가 많았는데 그건 병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노동조건이 개선되어야 한다. 노동조건이라는 공공성이 올라가야 한다는 의미다. 또는 시골에 있는데 야밤에 몸이 이상하다. 코로나인 것 같다. 그런데 운전도 못 한다. 그러면 교통편이 있어야 할 거 아닌가? 그게 아니면 한 달에 한 번은 고혈압 때문에 병원에 가야 하는데 교통이 아주 불편하면 공영버스가 있든, 100원 내면 되는 택시를 운영하든 해야 할 거다.
왜 그런 것까지 사회적으로 부담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노동조건이고 교통이고 각자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 사람은 의료 혜택에서 불평등이 생기고 건강에서도 불평등이 생긴다. 예를 들어 가난하면 결핵에 더 많이 걸린다. 결핵에 걸렸을 때 치료를 하는 것과 별개로 덜 걸려야 하는 건데, 그럴려면 주거 조건, 소득 불평등이 가능하면 줄어야 이 문제도 좋아질 수 있는 거다. 이게 전반적인 공공성의 문제라는 것이고,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이라고 한다.
여러 사회적 결정 요인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앞서 말한 병원 밖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이 있다. 이게 1단계다. 병에 걸리느냐 안 걸리느냐의 문제다. 그다음 단계는 병에 걸렸을 때 병원 밖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학술적으로 정립된 건 아니지만 저는 이걸 의료 이용의 사회적 요인이라고 부른다. ‘병원에 갈 시간이 있다, 없다’, ‘거리가 멀다’, ‘우리 동네에 믿을 만한 곳이 있다’, ‘의료기관에 대한 정보가 있다’, ‘본인 부담을 충분히 낼 정도로 소득이 있다’ 같은 것이다. 병원은 그다음이다.
= 제2대구의료원이 대구, 경북 나아가선 국가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지에 대한, 어쩌면 간단한 질문에서 시작했는데 말씀을 듣고 보니 이건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니다. 사실 방금 설명한 건, 이렇게 좋아져야 한다고 하는 건, 온 세상을 다 바꾸자는 이야기다.
= 그 말씀인 것 같다.
온 세상을 다 바꿔야 하는데 온 세상을 다 바꾸는데 시간이 걸리고 어렵다. 물론 전체적으로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게 이론적 답이 될 수밖에 없지만,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는 게 아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의미가 없느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다. 건강보험은 무슨 역할을 했느냐면 의료 이용을 촉진하는 사회적 요인의 굉장한 진보다. 안동의료원은 안동 사람 입장에선 병원까지 가는 지리적 요인을 줄이는데 굉장히 큰 역할을 하는거다. 그런 점에서 따져봐야 한다. 공공병원을 더 짓자는 게 이런 맥락 속에 있다.
그래서 거꾸로 물어봐야 한다. 공공병원을 더 많이, 병상을 더 늘리는 것이 이런 맥락에서 가치 있는 정책이고 주장인가? 왜냐하면 정책이란 건 국가가 공권력을 이용해서 실제적인 변화를 일으키려는 시도가 아닌가? 그러니까 공공병원이 이런 맥락에서 본래 가치나 의미를 충분히 충족시킬만한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는 거다.
= 공공병원 확충은 그런 측면에서도 충분히 공공성을 확대하는 의미를 갖는 게 아닌가?
제 말씀의 맥락을 따라가면 공공병원 하나 짓는다고 소용없을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병에 덜 걸리게 하고, 병원까지 가는 여러 불평등 요인을 줄이는데, 200~300병상 병원 하나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런데 공공병원이 하는 일을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어 ‘세금 더 내고 복지국가로 가자’고 할 때 이게 왜 안 되느냐? 우리가 복지혜택을 크게 누려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가시적이고 경험 가능해야 정치적 동력이 생긴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사람들이 기꺼이 동의하고, 정치적으로 지지할 수 있는 건 현실의 경험과 감각이 기초가 되어야 가능하다. ‘그래, 그렇게 하면 되겠더라’는 경험과 감각이다. 이게 바로 정치적 토대다. 그래서 공공병원이나 기관, 현실 제도를 사람들이 직접 경험하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던 걸 보이게 하고, 미래에 속한 걸 현재로 당기는 역할을 하는거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경험과 판단 가치를 부여하고, 사회적·개인적 변화에 대한 절실함이 만나게 되면 실제로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계속)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