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한 여성은 무덤에 한 쪽 발을 걸치고 있다”(차드공화국, 아프리카)
“아기를 낳으러 방에 들어가는 산모는 자기 신발을 다시 돌아본다”(한국, 아시아)
오롯이 나만의 경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있기는 할까? 경험은 내밀한 주관에 갇혀 있지만, 간혹 내밀한 감정이 거대한 보편성과 만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 몰아치는 감정의 폭풍우는 내가 담을 수 있는 그릇의 크기를 손쉽게 넘어 가버리고 만다.
1년 전이지만,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나는 무척이나 불안했고,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몸서리를 넘어 벽에다 내 머리를 쿵쿵 박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태명 ‘율복’이가 태어났다. 간단한 처치를 한 후 아이를 보았을 때 억지로 참아왔던 감정이 터지고 말았다. ‘율복’이가 나에게 눈웃음을 지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주위를 둘러보면 나만 이렇게 결혼, 출산, 육아의 삼종신기를 갖춘 것은 아니다. 신기한 일이지만, 2000년대 들어 삼포세대의 선두주자를 자처하던 주위의 또래들, 그 가운데도 저임금장시간노동에 시달리는 여럿 활동가들이 이 삼종신기를 갖추게 되었다. 하층계급이 출산율을 떠받친다는 명제를 스스로 증명했다고나 할까.
아무튼, 최근 저출산 때문에 각종 출산정책이 장려되고 있다. 심지어 집권당 대표께서는 도저히 따라갈?수 없는 드립력으로 ‘조선족’드립을 시전 하기도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건대 저출산 문제를 공론의 장에서 떠드는 사람들은 보수와 진보를 떠나 대게 엘리트 중년 남성이다. 그리고 이들은 국가의 백년대계와 경제인구, 사회양극화 등 다른 무엇을 위해 필요한 것이거나 자신의 논리를 증명하는 현상으로 출산이라는 단어를 꺼낸다.
출산의 의미에 대해서 진지하게 말해주는 사회적이고 공적인 발화자는 아무도 없었다. 출산의 고통과 과정은 주관적이지만, 그 의미와 과실은 다른 이들이 가져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뭔가 붕 뜬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중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들었다.
이 책은 그동안 출산의 역사를 되짚어 보며, 출산이란 것도 당대의 사회적, 경제적, 권력적인 쟁투와 환경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수많은 사례를 통해서 보여준다. 왜 출산은 고통스러우며, 이 고통을 어떻게 해결했으며, 분만과정의 주도권(?)과 사회적 의미를 탐색하는 등 여러모로 흥미로운 책이다.
물론 흥미롭다고 해서 손쉽게 넘어가는 책은 절대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수많은 죽음과 괴로움을 기록한 분야를 돌아보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인류가 지능스탯에 몰빵하기 위해 신체스탯이 퇴화 당하면서부터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큰 고통을 담당한 것은 바로 여성이었다. 여성들은 다른 포유류나 영장류보다 태아의 큰 머리와 자신의 작은 골반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즉, “상충되는 두 요건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다른 동물에게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산과적 문제를 갖게 되었다”(p.35)
손쉽게 이야기하면 인류라는 집단이 지능발달이라는 진화적 결과물을 얻기 위해 이족보행이 전제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 결과로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태아의 머리가 커지고 이족보행으로 골반은 작아지는 모순이다. 더 간결하게 이야기하자면 우리의 사회적, 과학적, 역사적, 기술적 발전을 위해 필요한 고통을 오로지 여성의 출산통에 몰빵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을 읽어나가기는 손쉬운 일이 아니다. 산통과 의학발전과정, 그리고 아직도 다양하게 일어나는 부족적 출산과정에서 나타난 수많은 여성의 죽음들이 담담하게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고통 경감을 위해 마취제를 쓰는 것조차 종교적인 집단의 비난을 받았다. 그나마 마취제에 대한 종교집단의 히스테리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의 출산에 마취제가 쓰임으로서 잦아들기 시작했다(p.196).
그리고 이 죽음의 공포와 고통마저 한 국가 내에서는 계급적으로, 전지구적으로는 지역불균등 원칙에 지배받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최근 산모 사망자의 99%가 개발도상국과 그 이하 경제규모를 지닌 국가에서 발생하고 있다(p.446)는 점은 여전히 가슴을 강하게 두드린다.
이렇게만 보면 상당히 우울할 것 같지만 그런 책은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분만 사례와 분만방법을 보여주기 때문에 흥미진진하면서도 놀랍다. 그동안 한국에 소개된 분만법(라마즈라던지, 르봐이예, 수중분만법)이 어떻게 탄생하였는지 설명해준다. 최신 분만법의 도입이라는 한국적 소비맥락은 이들 다양한 분만법이 가지고 있는 분만과정의 치열한 논쟁과 다양성이라는 맥락이 거세되어 있다.
예를 들어 수중분만법을 도입한 사람의 주장은 수중분만법이 많이 오해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진통과정에서 물을 사용하는 개념이지 물속에서 출산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너무 여성위주의 책이라고 오해하지 말기를.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아버지 혹은 남편이 분만과정에 함께 할 수 있게 된 것도 시대의 자연스러운 변화가 아니라 수많은 커플들의 투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고, 그 과정에서 아버지들이 출산과정에서 수행하는 역할이 다양했음을 보여준다. 다만 다양한 역할 중에는 방임과 무관심은 없다. 강요된 무기력은 있을지 몰라도 방임과 무관심은 없다. 오해하지 말기를.
출산을 다루는 책이라 얇은 두께의 책은 아니다. 출산의 의미조차 단언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해주는 출산의 의미는 출판사가 명기한 책의 추천문구에 너무나 정확하게 적혀 있다. “출산 중인 여성을 대하는 방식은, 여성이 공동체에 공헌하는 바를 그 사회가 어떻게 평가하고 존중하는지를 보여주는 척도다.”
아, 그리고 이런 평가도 책에 명기 되어 있다. “놀랍다, 태어난 사람이라면 마땅히 읽어야 할 책.” 나는 이렇게 변주하고 싶다. “출산 관련 정책을 다루거나 사회적 발언을 해야 할 사람이라면 꼭 읽어라, 두 번 읽어라, 아버지가 될 사람은 사서 읽어라”
내 가족의 안전한 출산을 위해서 지난 세기 수많은 고통과 의학발전 과정 중에 희생당한 이름?모를 산모와 아이의 명복을 빌며. 오늘날 사회적, 진화적 모순을 한 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수많은 산모에게 경의를 표한다. 오늘도 기쁨과 두려움, 즐거움과 괴로움을 등 뒤에 지고 헬조선에서 출산하는 이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고민하는 공론의 장이 제대로 마련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