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텍의 여성노동자들은 성차별적인 임금 문제를 다투는 과정에서 6번의 소송을 통해 겨우 차액 임금을 반환받았습니다. 형사소송을 대법원까지 진행한 끝에 성차별 판단을 받았고, 이후 차액 임금을 반환받기 위한 민사소송을 다시 해야만 했습니다. 소송에 걸린 세월과 비용, 소송 준비로 침해된 삶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배진경(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 한국여성노동자회)-
최근 동아제약 사건이 불거지면서 채용성차별에 대한 심각성이 얘기되고 있지만,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이 서류단계부터 남녀 채용 비율을 조절해 여성을 차별한 채용 사례는 지속해서 제기된 문제였다. 성별임금격차와 여성 저임금노동자 비율, 유리천장지수 등은 OECD 국가 중 최하위 기록할 정도로 한국에는 여성노동자를 차별하는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비교적 쉽게 문제라고 인식할 수 있는 성차별 외에도 여성노동자들이 겪는 성차별은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여성노동자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여성노동자들은 직장 내에서 겪는 성희롱과 성폭력은 상대적으로 많은 문제제기가 이뤄지고 있고 다양한 투쟁을 통해 판례와 결정례를 만들며 법과 제도를 변화시켜왔다. 반면 성폭력 사건과 떨어질 수 없는 성차별은 여성들이 노동현장에서 다양하게 마주하고, 여성의 자립과 사회적 지위의 획득을 방해하는 등의 심각성이 있지만, 그동안 법이 개입할 문제로 인식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해결절차 또한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문제 해결이 어려웠다.
6일 오후 유튜브를 통해 중계된 <차별금지법 연속 쟁점토론회 “평등을 토론하라”-성희롱과 차별의 구제, 여성노동자의 권리로 정의하기>에선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노동현장에서의 성차별 문제를 드러내고 피해자들을 구제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이들은 차별금지법이 그동안 규율되지 못했던 차별행위와 관행들을 명확하게 ‘차별’로 개념화할 수 있는 근거를 풍부하게 제공하면서 차별 전반에 대해 실효성 있는 구제수단을 통일성 있게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법이 실제로 가장 많이 적용될 수 있는 분야는 고용-성차별 분야로, 직장 내 여성노동자들이 겪는 ‘성차별적 괴롭힘’ 역시 조직적, 구조적인 차별의 문제라는 점을 사회적으로 환기하며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로 접근해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선 여성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성폭력과 ‘성차별적 괴롭힘’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들이 제기됐다. 그리고 차별금지법은 차별적인 조건에서 어떻게 여성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지, 차별적 환경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2차 피해는 어떻게 제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발제가 이뤄졌다.
“‘성차별적 괴롭힘’, 차별금지법으로 드러낼 수 있을 것”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최근 ‘성차별적 괴롭힘’에 대한 문제제기가 현장에서 제기되고 있다”라며 “최근 나타나는 성차별은 대체로 매우 교묘하고, 성차별이 아닌 다른 사유로 인한 차이로 포장되는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했다. ‘성차별적 괴롭힘’은 성차별에 기반한 괴롭힘으로 아직 국내에 합의된 용어도 없고, 이를 규율하는 법령도 없는 상황이다.
배 대표는 이에 “회사는 직장 내 성희롱이라는 문제 제기를 받게 되면 이 사건이 성희롱인가, 아닌가에 대한 판단에 집착하게 된다. 성희롱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리게 되면 이 문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문제를 제기한 피해자인 여성은 지나치게 예민하고 까칠한 사람이 되고 만다”라며 “성희롱이라고 보기엔 모호하지만 여성노동자들이 겪는 괴롭고 힘든 상황이 분명 있다. 문제를 문제로 인정하기 위한 명명이 필요하다. ‘성차별적 괴롭힘’의 명명과 법적 규율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라고 강조했다.
배 대표는 성차별적 괴롭힘의 현황을 8가지로 분류해 제시하기도 했다. ▲사내 돌봄노동 요구 ▲성적 대상으로 요구 ▲장식, 분위기 메이커로서의 역할 ▲사적 업무 요구 ▲남성생계부양자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성차별 언동 ▲의도적 하대, 사적 호칭과 반말 ▲성별에 따른 업무 배정 ▲여성의 능력에 대한 폄하다.
배 대표에 따르면 현재 고용상 성차별에 대한 구제를 담당하는 기관은 국가인권위원회, 고용노동부, 법원 세 곳이 있지만 모두 한계를 지니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권고만 가능하기 때문에 행정 처분의 집행력을 두고 있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지고, 고용노동부는 사업장 근로감독만으로 성차별을 판단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법원은 소극적 태도로 성차별을 협소하게 판단하고 있어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성차별 사건을 제기하기도 판단받기도 어렵다.
배 대표는 “이러한 성차별적 괴롭힘을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이 문제를 성희롱 범주에 포함하는 것, 직장 내 괴롭힘 범주에 포함하는 것 두 가지 방법이 고려되고 있는데 이 두 가지 방법이 모두 마땅한 방법은 아니라는 게 제 생각”이라며 “차별금지법안이 성차별적 괴롭힘을 규율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성차별 자체가 발생시키는 심각한 문제들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일 수 있다. 또한 문제를 문제로 인지할 수 있게끔 기준을 명확히 확립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라고 기대를 드러냈다.
“차별금지법 제정되면 고용-성차별 분야에 가장 많이 적용될 것”
조혜인(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는 경우 법이 실제로 가장 많이 적용될 수 있는 분야는 고용-성차별”이라며 “법의 제정이 실효성 있는 차별의 시정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법 제정 과정에서 차별금지법상 고용 차별 규정들의 내용과 쟁점이 사회적으로 충분히 알려지고 논의되고 검토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21대 국회에 발의된 <차별금지법안>은 지난해 6월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것이다. 대표 발의 다음날 국가인권위원회는 국회가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평등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차별금지법안>은 ①고용 ②재화·용역·시설 등의 공급이나 이용 ③교육 ④행정서비스 등의 제공이나 이용 영역에서 차별을 금지한다. 법안은 고용 영역에서의 차별들은 다시 구체적으로 규율하고 있는데 고용과 관련한 모든 단계에서 문제되는 차별들을 구체적인 조항으로 다루고 있다. <남녀고용평등법>보다 대체로 자세하다. 모집·채용, 근로계약의 노동관계 성립 전후의 단계서부터 유지단계(근로조건, 임금·금품, 임금 외 금품, 교육·훈련, 배치, 승진), 종료단계(해고·퇴직 등)에서 문제되는 차별들이 다뤄지기 때문이다.
조 공동집행위원장은 “차별금지법 제3장의 규정들은 무엇이 고용과 관련하여 금지되는 차별 행위인지를 현행 법률보다 자세하게 규정함으로써 그동안 제대로 규율되지 못했던 차별행위와 관행들을 ‘차별’로 명확하게 개념화할 수 있는 근거를 보다 풍부하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차별금지법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된 지금 중요한 것은, <차별금지법안>의 이러한 구체적인 차별 규정들이 이런 행위도 차별로서 문제될 수 있다는 사회적 가이드라인으로 풍부하게 읽히도록 만드는 일”이라고 밝혔다.
또한 차별금지법 제정은 2차 가해에 대한 예방으로서도 기능하는 효과가 있다. 이날 중요하게 다뤄진 사건인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의 경우에도 피해자는 고소 이후 피해를 부정당하고 피해자를 공격하는 심각한 2차 피해에 시달린 바 있다.
조 공동집행위원장은 “차별금지법상의 불이익조치 금지는 성희롱에 한정되지 않고 차별금지법상 차별 전반과 관련하여 진정, 소 제기를 하거나 그에 조력했다는 이유로 당하는 불이익조치 전 반을 포괄한다”라며 “2020년 양 법안은 모두 불이익조치를 금지하면서 그 조치를 무효로 하고 있으며 불이익조치를 한 사용자에 대해 형사 처벌 규정 또한 두고 있다. 평등법 시안은 나아가 징벌적(가중적) 손해배상 책임까지 규정했다”라고 설명했다.
근로기준법 밖에 있는 여성들에게도 필요한 차별금지법
한편, 이날 토론엔 여성예술인이 참가해 다양한 폭력에 놓여있는 여성예술인들에게도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마임창작자이자, 성평등작업실 이로를 운영하는 이산 씨는 “‘근로자’와 ‘사용자’를 근로기준법보다 넓게 정의함으로써 고용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제반 차별을 보다 폭넓게 규율하고자 하는 차별금지법 입법안이 통과된다면 여성예술인들이 겪는 차별과 괴롭힘 문제 해결에 한층 가까이 갈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라며 “여성의 성적대상화와 성착취가 그 토대라 해도 과언이 아닌 대형 문화예술산업, 모든 사회문제를 개인의 차원으로 돌리는 신자유주의의 흐름, 성범죄를 낭만화시키며 정당화하는 남성우월주의 적인 시각에 맞서는 동시에 각계각층의 반차별 운동과 함께 연대하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2016년 ‘00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으로 알려진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은 예술현장의 전반적인 성착취, 성차별, 성폭력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2018년엔 연극계에서 3대 거장이라 불리던 극작가 및 연출가 2인에 대한 성폭력 고발이 있었다.
이산 씨는 “문화예술계 반성폭력 운동은 ‘대표적 예술인’ 다수의 업적이 후배나 제자들에게서 착취한 시간과 돈, 감정 위에 쌓아 올려져 있음을 드러내는 장을 열었다”라며 “작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여성예술인들에 대한 성폭력과 성적, 정서적 착취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과 맞닿아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문화예술계 반성폭력 운동진영 역시 예술계 내 성폭력 문제에 대한 공감대를 확장하고, 실질적으로 피해자의 권리를 구제하고 가해자를 제재하는 해결의 경험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며 “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의 독자적인 사건처리절차마련을 통해 계약관계 밖에 있고 법에 저촉되지 않아 제재할 수 없는 성적 괴롭힘과 성차별을 공공영역에서 다루고 해결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기사제휴=박다솔 참세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