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부산 재보궐 선거에서 나타난 20대 남성 표심을 놓고 ‘이대남’(‘이남자’) 현상 진단이 미디어를 달구며 세대 담론에 또다시 불을 지폈다. 최근 야당 대표로 선출된 젊은 정치인이 집권 여당의 패배 요인을 “2030 남성의 표 결집력을 과소평가하고 여성주의 운동에만 올인”한 것으로 지적하며 남초 사이트에서 인기몰이를 하자, 여당 일부 남성 정치인도 “페미니즘 정책 때문에 졌다”며 앞 다투어 20대 남자들 마음 달래기에 나섰다. 애초 여당 정치인 두 명의 성폭력 사건으로 치러진 선거임에도 선거 과정에서 이러한 문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선거 결과를 둘러싸고, 소위 20대 남성에게 박탈감을 준 ‘지나친 페미니즘’이 문제라는 결론이라니···. 한국 정치가 소위 상식과 논리쯤은 쉽게 뛰어넘는다는 걸 알고 있더라도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전개다.
뭔가 이렇게 앞뒤 안 맞는 일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처럼 일어날 때는 보통 이런 프레임을 통해 이득을 보는 집단이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수혜자가 청년이 아니라는 점이다. 청년 여성은 고사하고 정치권이 구애하고자 하는 청년 남성의 삶 어느 부분도 젠더갈등을 이용한 세대담론을 통해 나아지지 않는다. 정치인 입장에서는 실질적으로 문제 해결을 하지 않고 말을 보태는 것만으로도 자신을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미디어는 쉽게 대중적 관심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프레임은 꽤나 매력적인 모양이다. 이처럼 젠더갈등을 청년세대의 가장 큰 문제로 만드는 현재의 청년세대 담론은 “싸우지 말고 친하게 지내는 것이 좋다”는 지극히 일반적이지만 상당히 문제적인 결론이나, 혹은 청년 여성, 남성 중 누가 문제인가를 성급히 결론짓고자 하는 이분법적 태도로 나타나곤 한다. 청년의 고달픔, 분노를 자양분으로 삼는 청년 담론 내에서도 청년은 대상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20대 남성이 보수적인가? 20대 남성의 여성에 대한 편견이 유독 심한가? 최근 세대와 관련하여 다양한 설문조사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중 얼마 전 기사화되었던 KBS의 세대 인식 집중조사 결과1가 적지 않은 이들에게 충격을 준 것 같다. 학력이나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에 대한 질문이나 북한에 대한 태도,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한 의견 등의 질문에서 청년 남성이 다른 집단(청년 여성, 50대 남성, 여성 집단)에 비해 보이는 태도를 놓고 우려와 비난의 목소리가 들린다. 교육자로서 이러한 결과에 심란하지 않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 결과를 놓고 청년 남성을 서열화된 격차를 당연시하고, 차별을 옹호하는 집단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한 것처럼 위험한 일이다.
다만 이 조사에서도, ‘20대 남자’ 등 기존 다른 연구들에서도 지적된바 “페미니즘”, “성평등”이라는 말 자체에 거부감을 보이는 특정 청년 남성들이 있음을 추정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청년 남성의 젠더의식이 중장년층보다 낮다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역시 기존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다. 필자가 가르치는 남학생들만 보더라도 “남자라면 응당, 여자라면 응당” 식의 성역할 고정관념이나 성별에 따른 차별을 문제시하는 것에 있어서는 50-60대 남성에 비해 훨씬 합리적인 사고를 한다. 현재 청년 남성의 ‘반페미니즘’ 경향성을 단순히 차별에 찬성하는 것으로만 읽기에는 부족함이 많다는 말이다. 여기에선 다루진 않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의 역사성과, 특히 한국의 맥락에서 청년 남성이 느끼는 박탈감의 정체에 대해서는 여러 좋은 연구가 나오고 있다.
KBS 조사에서 많이 주목받은 결과는 “기회가 되면 내 것을 나눠 타인을 도울 것”이라는 질문과 관련하여 주관적 계층 인식이 높아질수록 청년 남성이 다른 집단에 비해 남을 돕고자 하는 의향이 감소하는 것이었다. 통상 본인 사정이 넉넉한 사람이 타인에게 좀 더 관대한 자세를 보일 것이라는 예측과 반하는 것이기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결과다. 이와 관련해 기사화된 자료의 정확성, 분석의 타당성에 대한 논란이 있기도 했지만, 이 글에서 주목하는 지점은 이러한 결과를 어떻게 읽어내고 어떤 통찰을 얻을 것인가이다. 이 결과는 청년 남성을 하나의 이상한 집단으로 뭉뚱그려 보는 시각에 오히려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청년의 노동시장과 가족형성에 있어서 기회 불평등을 살펴본 김영미의 2016년 연구2도 청년세대 내 기회의 격차가 주관적 인식의 다양한 측면에 반영되고, 사회경제적 지위가 주관적 인식에 미치는 영향이 다른 연령집단에 비해 청년층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청년세대 내 계층에 따른 인식 차이는 한국 사회 불평등 구조를 악화시키는 기제를 면밀히 살펴봐야 하며 이를 세대 간 차이로 환원할 수 없다는 것, 나아가 현재 청년 담론의 현실 왜곡을 비판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공정성’을 화두로 삼은 청년 담론에서 누구의 목소리가 과대대표되고 과소대표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한다는 정규직 청년이 ‘공정성’을 외치는 목소리가 가득 찬 자리에서 수많은 비정규직 청년의 목소리는 사라진다. 구의역, 태안화력발전소, 평택항···. 이것은 청년의 문제가 아닌가? 일상 속에서 위력에 의한 성폭력,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경험하는 청년의 문제는? 청년들 삶 속의 긴박한 문제는 현재 ‘공정성’, 젠더갈등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청년세대 담론 속에서 증발해버린다. 더 문제적인 것은 이야기가 그냥 이야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재구성한다는 점이다. 마치 젠더갈등이 지금 청년 문제의 핵심인 것으로 자꾸 이야기되다보면,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던 사람들의 생각조차 그 방향으로 이끌어가면서 결국 정말 그것을 문제의 원인으로 인식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뭣이 중헌지’ 아는 게 어려운 세상, 청년들의 삶은 더더욱 미궁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
20대 남성 청년의 보수화를 피상적으로 다루는 담론 한편으로는 저성장 시대 경제적 위기에 처한 청년들을 불쌍하고 불행한 존재로 동정하는 시선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 청년이 겪고 있는 위기이자 한국 사회 구조 변화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상처, 위축, 분노 등을 청년 개개인의 본질로 여기며 연민하는 시선 역시 너무 쉽게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일 수 있다. 일례로 필자가 있는 사회학과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점점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학생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페미니즘 대중화 이후 전반적으로 학과 남학생의 성평등 의식이 높아진 것도 체감되고, 여학생의 경우 이전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사회현상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보여 수업에 들어가는 것이 신이 난다. 물론 밝고 아름다운 모습만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지점에 놀랄 때도 있고, 세대 차이도 종종 느낀다. 그런데 차이는 그들 안에도 있고, 내가 그렇듯이 청년들도 다면적인 존재라는 사실도 매번 느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 청년들은 ~다”라는 단편적인 일반화는 긍정적인 것이건 부정적인 판단이건 간에 그다지 유용해 보이지 않는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청년세대 내 계층 격차, 그리고 이러한 불평등 구조 속에서 젠더의 작용 등 다종다기하게 제기되는 질문을 간과하는 조급함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대신 문제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려는 끈질긴 관심, 그 복잡다단함을 쉽게 단순화하지 않으려는 인내심과 성찰성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과소대표되는 청년의 목소리 역시 여러 장소에서 들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실체를 가리는 말들의 잔치에 편승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임은 분명하다.
육주원 경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