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삶과 죽음, 그리고 영생을 위한 지나친 욕망. <서복(SEOBOK)>이 담고 있는 주제는 심오하다. 서복은 줄기세포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 복제인간이다. 진시황의 명을 받들어 불로초를 찾으러 길을 떠난 신하 서복의 이름에서 따왔다. 영화감독이자 배우인 장예모와 공리 주연 <진용(1989년)>에도 등장한다. 서복은 한반도를 건너 제주 서귀포를 들렀다고 한다. 그래서 제주도에는 서복의 전설이 있고, 이를 기념해 기념관도 만들어져 있다.
영생의 비밀을 품은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 서복(박보검)은 항구에 정박된 거대한 선박으로 꾸며진 대기업 서인그룹의 연구소에서 지낸다. 어느 날 서복의 비밀을 알고 있는 연구원이 폭탄테러로 목숨을 잃게 되자, 연구소와 정부는 서복을 강원도의 벙커로 옮길 계획이다. 서복의 이동 작전의 책임자는 죽음을 앞둔 전직 정보국 요원 민기헌(공유)이다. 뇌종양을 앓고 있는 기헌은 서복의 능력을 이용해 치료해주겠다는 정보국 안 부장(조우진)의 제안을 수락했다.
기헌은 극비리에 인간복제 실험을 진행해온 서인연구소에 들어서고, 서복의 실체와 마주한다. 서복은 10년 전에 만들어졌고 성장 속도가 인간보다 두 배 빠르다. 그래서 24시간마다 약을 투여 받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롭다. 척수에서 생성된 단백질은 인류가 앓고 있는 모든 질환을 치유할 수 있다. 그런데 연구진은 아이러니하게도 서복이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기헌에게 생뚱맞게 주변 사물을 염력으로 움직이는 서복의 특별한 능력을 보여준다.
정보국 요원들의 경호를 받으며 강원도 벙커로 향하던 기헌과 서복은 외국 용병부대의 습격을 당하고 억류됐다가 탈출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세력에 쫓기던 기헌과 서복은 정보국에도 배신을 당한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둘은 서로 연민을 느낀다. 마지막에는 위험한 세력들이 모인 서인연구소로 다시 향한다.
<서복>은 여느 SF와 거리가 있다.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고민이 담겨 있어서다. 영화는 처음부터 죽음과 삶을 둘러싼 다양한 인간들의 두려움과 욕망의 모습을 보여준다. 불로와 무병, 영생의 존재인 서복을 중심으로 인간의 두려움과 욕망이 표출된다. 그러면서 인간의 삶을 위한 동물 실험에 대해서도 은유적으로 비판한다.
문제는 철학적 주제를 풀어내는 방식에서 발생한다. 예측 가능한 결말과 단순한 선악 구도는 영화를 가볍게 만든다. 고뇌를 품고 있는 인물은 기헌과 서복뿐이다. 나머지는 별다른 감정적 굴곡이나 의미 있는 변화 없이 단조롭고 평면적이다. 속마음을 숨김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대사들은 진부한 악당들의 유치한 말다툼 같다.
또 주제보다 서복의 초능력이 더 중요하게 다뤄진다는 것도 단점이다. 서복의 염력은 일본 애니메이션 <아키라(1991년>를 베낀 티가 다분하다. 영화의 골격이 <아키라>와 닮아 있다. 이 탓에 흥미진진하고 논쟁적인 주제를 붙잡고서도 이야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달려간다.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와 죽음을 목전에 둔 시한부의 동행이라는 주된 맥락에 초점을 맞췄다면 아쉬움이 크진 않았을 것이다.
초능력이 없었더라면 더 나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영화에 CG 대신 개연성에 대해 고민했을 테니 전개는 조금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영생을 얻으려는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심도 깊은 고민이 묻어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을 내뱉기 위해 제작자가 편의한 선택을 한다.
<서복>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개연성의 부재다. 폭탄테러의 원흉이 서인그룹의 회장(김재건)이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고, 정보국이 왜 서복을 제거하려는지도 불분명하다. 정보국에서 기헌에게 서복의 이동을 의뢰한 이유와 서복의 탄생과 성장을 곁에서 지켜본 책임 연구원 임세은 박사(장영남)의 마음이 돌변한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전직이지만 요원이던 기헌은 허당끼가 다분하고 뇌종양의 고통은 이야기 전개가 막힐 때만 등장한다.
극심한 두통으로 기절한 기헌은 숙면을 취한 것처럼 깨어난다. “왜 네 마음대로 해?”, “그럴 거면 너 혼자 가.” 기헌과 서복이 티격태격하면서 ‘케미’를 쌓을 때 주고받는 대사는 유치하다. 기헌과 서복의 로드무비에 시간을 할애했다면 오히려 개연성이 강해졌을 것이다. 그랬다면 관습적인 전개에 머물다가 갑자기 신파 조로 치닫는 후반부 장면이 거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영화에 배우 공유와 박보검이 등장하는 건 관객의 몰입을 돕는 유일한 카드다.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