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는 여하튼 노랗게 웃는다.
내가 사는 이 도시, 동네 골목길을 일삼아
ㅁ자로 한 바퀴 돌아봤는데, 잔뜩 그늘진 데서도
반짝! 긴 고민 끝에 반짝, 반짝 맺힌 듯이 여럿
민들레는 여하튼 또렷하게 웃는다.
주민들의 발걸음이 빈번하고 아이들이 설쳐대고
과일 파는 소형 트럭들 시끄럽게 돌아나가고 악, 악,
살림살이 부수는 소리도 어쩌다 와장창, 거리지만 아직
뭉개지지 않고, 용케 피어나 야무진 것들
민들레는 여하튼 책임지고 웃는다. 오십 년 전만 해도 야산 구릉이었던 이곳
만촌동, 그 별빛처럼 원주민처럼 이쁜 촌티처럼
민들레는 여하튼 본색대로 웃는다.
인도블록과 블록 사이, 인도블록과 담장 사이,
담장 금간 데거나 길바닥 파진 데,
민들레는 여하튼 틈만 있으면 웃는다. 낡은 주택가,
너덜거리는 이 시꺼먼 표지의 국어대사전 속에
어두운 의미의 그 숱한 말들 속에
밝은 구석이 있다. 끝끝내 붙박인 ‘기쁘다’는 말,
민들레는 여하튼 불멸인 듯 웃는다.문인수 시집 <쉬!> 가운데 ‘밝은 구석’ 전문
한결같이 서정시를 쓴 문인수 시인이 지난 7일 “저토록 고단하고 무겁”다고 했던 삶을 버리고 “가볍고 가벼워서 짐이 없는” 몸으로 돌아갔다. 장례는 대구시인협회장(회장 윤일현)으로 대구 파티마병원 장례식장에서 치러졌다. 이하석 대구문학관장을 비롯해 문무학, 김용락, 노태맹 시인 등과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고인의 고향 성주에서 온 성주문학회 김수상 시인은 “지난달 11일 정동수, 박덕희, 김성경 씨와 선생님을 모시고 국수를 먹고 차도 마셨는데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서 세상을 달리했다. 선생님은 뵐 때마다 밝은 웃음으로 맞으셨다”고 시인을 그렸다. 또 “시인께서 ‘나는 제자가 없다’하셨는데, 아마 서울에서 활동하고 제자라도 두셨다면 지금보다 더 잘 보내드리지 않았을까 싶다”고 아쉬워했다.
발인일(9일) 아침 유족들과 여러 문인들이 참여한 영결식에서 김선굉 시인이 조사를 읽고 이하석 시인(대구문학관장)이 추모시를 낭독하며 고인을 보냈다.
작은 돌이 내 책상 위에서 깜빡, 눈 뜨고 있습니다.
그대가 내게 주워준 까만 돌로,
그대는 내게 원고지처럼 눌려져 있습니다.
인도에서 가져다준 불상 하나가
내 방의 구석을 성스럽게 부스럭거리고 있습니다.
그대의 몸에 맞추었다가 온 옷들 몇 벌도 헐렁하니
때로 내게 건들거립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많은 것들이, 그대라서
내게 아주 있습니다.아아 그대 때문에 우리는 함께 아름다워서
동화천과 남한강, 동강의 여울에 재잘재잘 노을처럼 탔지요.
우리는 서로 눈부셔서, 주전 바닷가 파도 소리에
돌의 말들 닳도록 섞었지요.
우리는 서로 화안해서 동해처럼 서해 해안처럼 퍼덕였지요.
우리는 서로 수줍어서 함께 고령과 성주의 신작로를 닦았지요.
우리가 서로 마주 불러서야 지리산도 굽이굽이 텅텅거렸지요.그대와 함께 있었던 모든 자리가 그렇게
마구, 끄뜩없이, 꽃불 났지요.
그리운 이여. 그대는 이제 저물어서
눈부심과 화안함, 수줍음과 아름다움의 꽃 언덕을 넘어가네요.
그대의 뒷모습이 눈부심과 화안함과 수줍음과 아름다움으로
물들었네요. 서로 자꾸 땡기네요. 그러나 자꾸 불러도
돌아보지 않으면, 그대는 가는 사람. 이미 간 사람. 어쩌면
마구, 가버린 사람.그대가 시로 지피던 서정과 명랑성의 기도는
무한 환하고, 눈부시고, 수줍어서 수시로 열리지만,
그대는 마침내 가는 사람, 이미 간 사람,
어쩌면 다 가버린 사람.그리하여 내겐 곁이 없어져서,
그 바닷가에, 산등성이에, 강여울에,
함께 앉았던 수성구청 앞 벤치에
꽃차처럼 달려가는 수줍음과 눈부심으로
그대와 함께 펼쳐 서 보네요. 아아, 그대였기에
우리는 서로 아름다워서.이하석 ‘그대였기에, 우리는 서로 아름다워서’ –문인수 형을 그리며 전문
세례명 요아킴인 문인수 시인은 9일 정오 무렵 천주교군위묘원 8-4구역에 묻혔다. 부인 전정숙 씨는 “굿모닝! 여보! 여보! 굿모닝!”하며 남편을 땅에 ‘심었다’. 자녀 문동섭, 문효원과 며느리 구승희 씨를 비롯한 유족과 문무학, 윤일현, 김선굉, 손진은, 이종문, 박상옥, 박언숙 등의 문인들이 하관을 지켜봤다.
이제, 다시는 그 무엇으로도 피어나지 마세요. 지금, 어머니를 심는 중……
문인수의 시 ‘하관’ 전문
고인의 대구고등학교 후배인 박상봉 시인은 고인의 시구를 빌려 그와 작별하는 순간을 남겼다. 아래는 그의 작별시 가운데 일부다.
기도하는 동안
‘굿모닝! 여보! 여보! 굿모닝!‘
곡소리 참 너무 슬프다느티나무든 측백나무든 애통하는 바람소리 들었다.
‘명아주 바랭이 참비름 강아지풀 같은 초록의 정강이’(문인수 시 ‘벽의 풀‘에서 인용)를 붙들던 말도 들었다.
1945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난 문인수 시인은 대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국대 국문과를 중퇴했다. 불혹에 심상신인상으로 등단한 시인은 이듬해 첫 시집 <늪이 늪에 젖듯이>(1986, 심상시인선)를 출간하고, 시집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1990, 문학아카데미), <뿔>(1992, 민음사), <홰치는 산>(1999, 만인사), <동강의 높은 새>(2000, 세계사)’, <쉬!>(2006, 문학동네), <배꼽>(2009, 창비), <적막 소리>(2012, 창비), <달북>(2014, 시인동네) 등 서정 깊은 시집을 연이어 펴냈다.
시인은 영남일보에서 교열 기자(1992~1998)로 일하는 동안 받은 제14회 대구문학상(1996)을 시작으로 김달진문학상(2000), 노작문학상(2003), 미당문학상(2007), 목월문학상(2016) 등 여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정용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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