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의성 쓰레기산 사태를 계기로 환경부가 2019년 전국 불법 방치 폐기물 현황을 조사한 결과 전국에서 불법 폐기물 120만 톤이 적발됐다. 2년이 지난 지금 2019년 전수조사 이후 추가로 발생한 불법 폐기물은 43만 2,000톤. 이중 약 17만 2,000톤이 경상북도에 투기됐다. 대한민국 국토 면적의 20%, 인구의 5.2%를 차지하는 경북에 전국 불법 폐기물의 40%가 쏠려 있다. 경북 불법 폐기물 17만 2,000톤 중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채 쌓아 둔 방치 폐기물은 2021년 2월 기준 6만 2,000톤. 경북은 왜 불법 폐기물 투기장이 된 것일까. 불법 투기로 인해 지역 주민은 어떤 고통을 받고 있을까. <뉴스민>이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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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하던 공장이 불법 폐기물 쓰레기통으로 바뀌기까지, 2개월이면 충분했다. 경북 영천에서 가구 공장을 하던 이 모(44)씨는 공장을 빌려줬다가 상상도 못 할 일을 당했다. 가구업은 이 씨 아버지가 영천에서 오랫동안 했던 가업이었지만, 2019년 이 씨는 경기가 좋지 않아 사업을 그만두고 공장을 임대하기로 했다.
공장을 빌리겠다는 사람은 금방 나타났다. 그는 비철금속 보관업을 한다면서, 비싼 자재를 숨기기 위해 담장을 쌓고 운영하겠다고 했다. 공장 임대는 보통 5년 단위로 하는데, 그는 일단 보증금은 낮게 해준다면 돈을 더 벌어서 1년 뒤 보증금을 올리겠다고 부탁했다. 이 씨는 그 말을 믿었다.
이 씨는 두 달 뒤, 불법폐기물 투기를 감시하던 환경운동가 서봉태 씨로부터 공장에 수천 톤의 쓰레기가 쌓여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공장을 빌리겠다고 이 씨에게 연락해온 사람은 사실 폐기물 투기 일당의 속칭 ‘바지사장’이었다.
쓰레기로 가득 찬 공장을 확인한 이 씨는 한숨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공장을 훼손해 봐야 기물을 부수는 정도겠거니 했는데, 불법 폐기물을 가득 채워 놓고 도망간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하지만 시작에 불과했다. 폐기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이 씨가 겪은 일은 ‘상상 초월’의 연속이었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전국 투기·방치폐기물 43만 3,000톤 중 17만 2,000톤(39.8%)이 경상북도에서 적발됐다. 경북 투기·방치폐기물은 투기장 34곳에 나뉘어 적치됐는데, 대부분이 이 씨 사례처럼 공장을 빌려 투기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 씨는 사태 수습을 위해 마음을 다잡고 경찰에 신고하기로 했다. 수사 단계에서 변호사를 고용해 투기범들을 밝혀내고 형사적 책임을 물으면서, 이와 함께 공장에 적치된 쓰레기도 책임지고 치우게 하려 했다. 나라에 법이 있으니, 수사에 들어선 이상 투기범들이 밝혀지고 책임도 지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
순리대로 처리될 것이란 기대는 오산이었다. 2019년은 의성 쓰레기산이 알려진 직후로, 폐기물 불법 투기 수사와 관련해 공조 체계가 잘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 씨는 신고 당시에도 경찰서 민원실 문을 두드렸으나 지능범죄팀으로 가라, 경제팀으로 가라, 영천시로 가라는 말을 들었고, 영천시에서는 다시 경찰서에 가라는 말을 들었다. 부산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투기범 처벌에 뛰어들었으나, 기대만큼 진척이 없었다.
수사와 재판 결과, 결국 투기범 중 일부는 징역 1년 6개월(무허가 폐기물처리업자), 징역 1년(위탁 경영 브로커, 바지사장),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배차 브로커)를 선고 받았다. 하지만 이 씨는 충분한 처벌로 여겨지지 않았다. 또한 이들 일당에 헐값으로 폐기물을 넘긴 폐기물 중간배출업체 또한 원인 제공자로서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고 느껴졌다.
2021년 5월 현재에도 이 씨 공장의 폐기물은 여전히 그대로 있다. 이 폐기물을 행정대집행을 통해 치우게 될 경우, 수십억 원대의 비용은 고스란히 이 씨가 물게 된다. 투기범들은 통상 범행 후 재산을 빼돌리기 때문에, 투기범에게 구상권을 청구해봤자 비용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법 투기의 피해자인데,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할 상황인 셈이다.
공장 폐기물 투기 어떻게 이뤄졌나
2020년 4월 대구지방법원(제10형사단독)에서 이 씨 사건에 연루된 투기범들의 폐기물관리법 위반에 대한 1심 판결이 내려졌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들 폐기물 투기 조직은 총책 A(무허가 폐기물처리업자), 브로커 B·C(위탁 경영·배차), 바지사장 D로 나뉜다.
A은 B·C에 지시하고, B은 D에게 지시해 D의 명의로 이 씨에게 공장을 임차하도록 했다. B은 D에게 임차 시 명의 제공의 대가로 7천만 원의 사례비와 경비 지급을 제안했고, D은 이를 승낙했다. 이들은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폐기물을 처리해주기로 하고 중간배출업체로부터 폐합성수지 등 도합 5,711톤의 폐기물을 투기했다.
이들은 폐기물 허용보관량을 초과해 보관하다 영천시로부터 영업정지 처분과 폐기물 처리 명령을 받은 모 업자와도 공모해 폐기물을 투기했다. 이들은 업자에게 싼 가격에 폐기물을 투기하려 하는 배출업체를 연결해주고, 그 비용 중 일부를 나눠 받았다. 투기가 이뤄진 시점은 영천시의 이행 명령을 받은 뒤였다. 행정기관의 조치는 폐기물 투기 방지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폐기물관리법 위반 처벌 약하고, 수사 의지 부족”
“행정대집행, 피해 공장주 입장에서 정답 아냐”
이 씨는 현재 불법 폐기물 수사 체계에 난맥이 있으며, 이 씨 사례와 같은 피해자도 발생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한다. 또한 불법 폐기물 투기범들이 통상적으로 차명계좌를 이용해 범죄 수익금을 빼돌리는데, 이 씨 사건에서 투기범들의 주변인에 대한 금융계좌 수사 등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피해복구에 어려움이 있다고도 설명한다.
환경운동가 서봉태 씨는 “투기범들은 본인 명의로 돈을 받지 않고 차명 계좌로 돈을 받아 현금으로 빼낸다. 징역만 살고 나오면 빼놓은 현금으로 다른 사업을 한다”며 “투기범을 체포와 압수수색 권한이 있는 사법경찰이 현장에서 체포하고 증거도 압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수사기관의 적극적인 대처가 부족해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지적은 일선 시군에서도 제기된다. 경북 한 기초자치단체 공무원은 “수사권도 없는 우리가 조사하려 해도 조사받는 사람들이 제대로 응하지 않는다. 현장 조사에서 위협받는 일도 빈번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사건은 권한 있는 전담 조직이 맡아 일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지금은 가장 힘없는 기관이 일을 도맡아 하는 형국이다. 현장에서 우리가 행정대집행을 하는데 투기한 사람은 외제차를 끌고 다니며 대집행을 열심히 해보라며 비꼰 적도 있다. 환경부를 넘어서 국무조정실급의 부서가 총괄해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씨는 행정대집행으로 폐기물을 치우는 것을 최악의 상황으로 생각한다. 영천시가 행정대집행 비용 구상권을 투기범 일당에게 청구한들, 이들은 수익금을 빼돌린 다음 변제할 능력이 없다고 할 것이 뻔하고, 그렇다면 대집행 비용은 이 씨가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책임까지 물어야 하는 상황이 부당하다는 항변이다.
행정대집행 구상권 청구 시 불법 투기 피해자에 대한 처우 문제는 논쟁 지점이다. 투기범에 대한 처벌 강화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의견이 모이지만, 건물이나 토지소유자에 대해 어느 정도의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는 의견이 갈리고 있다.
지난 4일 환경부가 주최한 ‘불법 투기 폐기물 발생 예방을 위한 열린 토론회’에서 진실 변호사(진앤리 법률사무소)는 “투기한 사람은 돈이 없다고 하면서 책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결국 토지 소유자가 처리하게 되고 투기자는 징역형만 지게 된다”며 “토지소유자의 책임이 없는 경우 면책하자는 취지의 폐기물관리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토지소유자에 대한 면책조항은 원칙적으로 옳지만, 악용될 소지도 있다. 토지소유자와 투기자가 공모하면 수익은 공유하면서 면책을 받아, 투기를 더 막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박중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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