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이 의심되던 병사가 전역한 날 목숨을 끊은 사건을 두고 병사에 대한 복무 부적합 기준을 정비해야 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의 직권조사 결과가 나왔다.
인권위가 25일 밝힌 결정문 직권조사 사례를 보면 피해자 고(故) 이아무개 씨는 2012년 8월 입대 후 받은 인성검사에서 ‘자살 위험’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 씨는 그해 10월 자대인 육군 군수사령부 한 탄약창 부대에 배치됐으나, 부대 선임병 김아무개 씨 등으로부터 지속적인 가혹행위에 시달렸다.
김 씨 등은 후임병에게 부대 내 병사 70명의 서열과 부대 근무 수칙 등을 외울 것을 강요하고, 만약 외우지 못할 경우 얼굴과 배를 때리는 등 폭행을 가했다. 특히 김 씨 등은 실수가 잦고 업무가 미숙하다는 이유로 이 씨를 다른 후임병보다 더 집중적으로 때렸다.
이에 이 씨는 2013년 4월부터 군대 동료에게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그해 7월부터는 동료들이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하거나 자해를 하는 등 정신질환이 의심되는 증세를 보였다.
이 씨는 입대 후 약 9차례 정신과 관련 진료와 상담을 받았다. 그러나 군 정신과 관계자들은 대체로 이 씨가 정신질환이 없거나, 있더라도 복무에 부적합한 상태는 아니라고 진단했다. 이 씨는 현역복무부적합 심사를 위해 2014년 2월부터 한 달간 정신과 진료를 받았을 때도 “정신의학적 병적 상태로 보기 어려움”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결국 이 씨는 2014년 7월 10일 복무 기간을 모두 채우고 전역한 뒤, 이날 오후 11시경 자신이 사는 아파트 18층에서 투신했다. 이후 육군 2작전사령부 헌병대는 이 부대에 대한 병영부조리 조사를 실시해 전역한 가해자 10명에 대한 조사를 그해 9월 경찰에 넘겼다. 부대 지휘감독 책임자 12명은 견책, 보직해임 등의 징계를 내렸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국방부에 병사의 현역복무부적합 심사를 개선해, 이 씨와 같이 정신질환이 의심되는 이들의 피해를 예방하도록 권고했다. 구체적으로 인권위는 정신질환 사례를 예상하여 현역복무부적합 기준을 보다 세분화하고, 까다로운 기준을 완화하도록 주문했다. 혹은 현행 규정에 따른 현역복무부적합 심사를 정신질환 의심자들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하는 개선책을 제시했다.
또한 인권위는 이 씨 사망 후 직권조사 과정에서 부대원 69명 중 10명이 자유로운 병원 이용이 어렵다고 호소했다며, 국방부에 병사들이 자유롭게 진료를 받도록 제도 보완을 요청하기도 했다.
한편 이번 인권위 직권조사는 2014년 4월 故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 2014년 6월 임 병장 총기 난사 사건 등이 발생한 다섯 곳, 윤 일병 사건과 유사한 환경을 지닌 한 곳 등 총 7개의 부대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번 조사에서 인권위는 성 정체성 혼란으로 어려움을 겪던 병사가 2014년 8월 휴가 중 자살한 사건에 대해선 부대 내 가혹행위가 없었고 책임자들이 이미 징계를 받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별도의 권고는 내리지 않았다. (기사제휴=비마이너/갈홍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