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형복 시인, 새 시집 ‘무 한 뼘 배추 두 뼘’ 펴내

몇 해 전 팔공산 자락으로 이사하고 텃밭 농사꾼 자처
자연에 대한 경외, 농민에 대한 존경 담은 56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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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채형복 시인이 새 시집 ‘무 한 뼘 배추 두 뼘’을 학이사에서 출판했다. 총 4부 56편으로 꾸민 시집에는 몇 해 전부터 팔공산 아래 마을에서 텃밭을 가꾸며 사는 시인이 농사일을 하면서 깨달은 자연, 농사, 사랑 등의 이야기를 담았다.

“겨우내 창고에 던져두었던 낫을 꺼내 풀을 베는 맛이 나도록 무뎌질 대로 무뎌진 날을 갈았다 낮밤으로 갈고 꿈속에서도 갈며 숫돌이 다 닳도록 날을 벼렸다 낫은 서슬 푸른 검광을 뿜어내며 수시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루는 살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낫을 휘둘러 해와 달을 자르고 꿈속의 꿈을 베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 정신 차려 보니 낫날은 간곳없고 머리맡에 덩그러니 나무 손잡이만 남아있다 밤새 숫돌에 갈고 간 탓일까? 낫날이 모두 닳아버렸다 날이 없는 낫은 이제 아무것도 벨 수 없는 몸이 되었다”
-1부 ‘낫을 갈다’ 전문(행 구분 없음)

1부에서 시인은 농사일에서 얻은 깨달음을 주로 담았다. ‘땅’ 연작, ‘텃밭농부의 자세’ 연작 등에서는 자연에 대한 경외가, ‘호미 한 자루만 있으면’에서는 농민에 대한 존경이 보인다. 2부에서는 농사일에서 가깝게 만난 생명에 대한 단상을 담은 ‘지네’, ‘지렁이’에서 ‘바랭이’, ‘질경이’ 같은 작품들을 선뵀다.

3부에는 꽃을 소재로 한 ‘국화가 된 장미’, ‘소국’ 등과 아내를 향한 사랑시 ‘중노년의 부부’ 같은 작품을 담았다. 4부에서는 이미 곁을 떠난 엄마를 ‘사랑으로’, ‘엄마’ 같은 작품으로 그리는가 하면 이웃 개에 대한 연민을 ‘옆집 개’ 연작으로 표현했다.

엄마 젖도 떼지 못한 어린 강아지로 팔려와
가죽으로 만든 목줄 차고
밤이나 낮이나 굵은 쇠사슬에 묶여있다

주인이 주는 잔반 먹고
한 평도 되지 않는 공간을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맴돌다가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텅 빈 골목을 쳐다보는 것이

옆집 개가 날마다 하는 일이다…

-4부 ‘옆집 개’1 부분

▲채형복 시인(사진=정용태 기자)

시인은 텃밭 농사꾼으로 사는 몇 년의 시간을 그의 시 ‘농사꾼’에서 “정성껏 가꾼 열무를 거둬 / 이웃에게 나눠주는데 // 밖에서는 교수님인지 몰라도 / 농사꾼 다 되었네요 // 설기1 엄마의 칭찬 한마디가 // 외국에 유학 가서 박사학위 따고 / 대학교수가 되었을 때보다 // 한 번에 두 권의 시집을 내고 / 갑자기 시인이 되었을 때보다 // 백배 천배 더 기쁘고 감격스럽다”라고 스스로 평했다.

채형복 시인은 1963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력에서 텃밭 농민은 아주 최근의 것이고, 현재도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유럽통합법(EU법) 교수다. 오래 법학자로서 살아왔고 스스로 아나키스트라고 말한다. 시집 ‘늙은 아내의 마지막 기도’(2012, 높이깊이)로 등단, 시집 ‘바람이 시의 목을 베고’(2016, 한티재)를 비롯해 여러 저작이 있다.

정용태 기자
joydrive@newsmin.co.kr

  1. (털이 백설기와 같이 하얗다며 이름 붙인 이웃이 키우는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