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에 개봉한 다섯 번째 DC코믹스의 영화 <저스티스 리그>는 흥행에 실패했다. DC 확장 유니버스의 포문을 연 <맨 오브 스틸(2013년)>과 <배트맨 대 슈퍼맨:저스티스의 시작(2016년)>이 그다지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데 이어 슈퍼 히어로를 대거 등장시킨 <저스티스 리그>는 혹평을 받았다. 전작 두 편은 플롯의 산만함과 빈약한 개연성 등이 단점으로 꼽혔지만, 잭 스나이더 감독의 장기인 영상미는 뛰어났다.
하지만 <저스티스 리그>는 경쟁사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어벤져스 시리즈>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의 결과를 보여줬다. 흥미로운 건 2017년작 <저스티스 리그>는 프로젝트 도중 가정사로 하차한 스나이더 감독 대신 조스 웨던 감독이 연출을 마무리 지었다는 것이다. 조스 웨던 감독은 <어벤져스>와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연출을 맡았다.
문제는 웨던 감독이 <저스티스 리그> 제작에 투입된 뒤 각본을 전면적으로 수정하고 재촬영하거나, 기존 촬영분의 CG까지 바꿨다는 점이다. 그 사이 스나이더 감독이 구상한 <저스티스 리그 시리즈>가 공개됐고, 웨던 감독이 손댄 결과물에 실망한 많은 DC 팬들은 스나이더 감독의 영화를 공개해달라는 캠페인을 온라인에서 개시해 왔다. 이 과정에서 <저스티스 리그>에 출연한 주연 배우들이 웨던 감독이 전면적 수정을 한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거나, 팬들의 요구를 지지했다.
일이 커지자, 워너 브라더스의 회장인 토비 에머리히는 직접 스나이더 감독에게 연락을 했고 2020년 5월 스나이더 감독은 HBO 맥스를 통해 2021년 스나이더 컷이 공개된다고 공식 발표했다. 스나이더 컷 공개 전까지 나온 예고편에는 2017년작에서 삭제된 분량이 많다는 게 드러났고, 팬들의 기대는 커져갔다. 그리고 마침내 공개된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에 대한 반응은 호평이 지배적이다. 추가 촬영과 후반 작업, 특수효과, 음악 및 후시 녹음을 한 결과물은 2017년작과 전혀 다르다.
2017년작의 가장 큰 문제는 슈퍼히어로들이 개성을 띠고 관객과 친숙해지는 과정이 빠졌다는 점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경우 첫 슈퍼히어로인 <아이언맨>을 2008년 내놓은 뒤 <캡틴 아메리카>와 <토르> 등 슈퍼히어로의 솔로 무비를 잇달아 선보였다. 그 후 4년이 걸려 슈퍼히어로를 모은 <어벤져스>를 제작했다. 슈퍼히어로물이 올스타전의 스케일을 갖추게 됐다.
반면에 <저스티스 리그>는 구성원의 절반이 첫 등장했다. 슈퍼맨과 배트맨, 원더우먼의 경우 서사가 어느 정도 쌓였지만, 아쿠아맨, 플래시, 사이보그는 관객이 첫눈에 반할 매력을 119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동안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또 악당 스테픈울프의 존재감은 빈약했다. 외형은 마치 파워 레인저나 바이오맨 등 아동 전대물처럼 어색하고 유치했다.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는 빈약한 등장인물별 서사를 보충하고 전작의 서사를 계승해 세계관을 확장했다. 웨던 감독은 2시간 동안 6명의 슈퍼히어로가 하나의 팀으로 묶이게 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으며, 슈퍼맨의 부활을 비롯해 중요한 에피소드들을 짜임새 있게 구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러닝타임을 4시간으로 늘린 스나이더 감독은 5명의 슈퍼히어로가 그들만의 힘으로는 지구와 모든 인간을 말살하겠다는 스테픈울프를 막을 수 없었던 이유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들이 인간의 고결함과 희망의 상징인 슈퍼맨을 되살려야겠다고 결심한 계기, 슈퍼히어로인 슈퍼맨보다 한 인간인 클락 켄트를 잊지 않았던 로이스 레인이 부활한 그를 설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전개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에필로그도 흥미롭다. 로이스 레인을 잃고 분노로 타락해 지구를 파괴한 슈퍼맨에 맞서 조커를 비롯한 빌런과도 손잡은 배트맨이 등장한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슬로우 모션의 남발과 영화 전개에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은 장면들은 흐름을 끊어 리듬을 잡아먹는다.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