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아현 씨는 1기 청년정의당 대구시당 위원장에 당선됐다. 대학 시절 성소수자 동아리 활동과 대구퀴어문화축제 집행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최근 주변의 성소수자들의 극단적 선택을 지켜 본 임 위원장은 정치를 통해 성소수자의 권리가 높아지길 바란다. 또, 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이었던 녹색당 김기홍 활동가, 복무 중 성전환수술로 인해 군에서 쫓겨난 변희수 하사의 죽음이 더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뉴스민>은 대구지역에서 성소수자로, 정치인으로 나선 임아현 위원장을 대구 청년연대은행 디딤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Q. 최근 김기홍 씨와 변희수 하사의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떠셨나요?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우울한 이야기지만, ‘상황이 극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내 차례가 오겠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Q. 나의 성적지향이 다수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때는 언제인가요?
사람마다 스스로의 성정체성과 성적지향을 인정하는 시간의 크기가 다르다. 나는 꽤 빠르게 스스로의 정체성을 알게 되었고 인정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오빠에게 여자를 좋아한다고 고백했는데, 오빠도 “나도 여자 좋아해.”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처음 나의 정체성을 알게 되고 인정했을 때에는 그 사실을 부정당하는 경험은 없었다.
Q. 나의 성적지향에 대해 알리는 것을 주저하지는 않았나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떠한가요?
어렸을 때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 들지는 않았다. 처음 성적지향을 알렸을 때, 부정당했던 경험이 없어서인지 쉽게 커밍아웃하고 쉽게 상처를 받기도 했다. 중학교 시절, 나의 성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밝혔을 때, 뒤에서 욕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성장을 하면서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면 좋지 않은 시선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았다. 자연스럽게 움츠러들기도 했지만 꾸준히 친한 사람에게는 이야기를 했었다. 부모님께는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한 적은 없다. 하지만 나의 다양한 활동들에 대해 부모님께 말씀을 드려서 알고 계시고, 지지해주신다. 내가 성소수자 당사자인 것을 알고 계신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하고 있는 활동과 고민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나의 정체성과 지향에 대해 아셨으면 좋겠다.
Q. 일상에서 경험하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무엇인가요?
술집 옆자리에서 동성애자는 이해하지만, 내 옆에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식의 이야기를 빈번히 들었다. 연인과 손을 잡고 걸어가면 지나가던 사람이 빤히 쳐다보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를 다르게 보는 시선들이 모여 일상의 폭력으로 전달된다. 나에 대한 차별은 스스로 이겨낼 수도 있지만, 성소수자 친구들이 일상에서의 차별로 인해 우울감을 느끼고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되는 안 좋은 소식을 들을 때도 많다. 일상을, 일상에서 벌어지는 차별을 버텨내는 연습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Q. 성소수자의 인권이 보호되기 위한 현실적이고 시급한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클로짓, 벽장 안에 숨듯 성적 지향을 감춘 채 살아가는 성소수자를 뜻하는 용어이다. 그 옷장에서 나오고 싶은 성소수자들, 그리고 커밍아웃을 하던 하지 않던 동등한 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더 이상은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냄으로 사회의 인식과 주변상황을 바꾸는 것에 한계를 느낀다. 법이 바뀌기 위해서는 정치계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현재는 그 노력이 미비한 것 같다. 그렇다면 사회적 합의를 위한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청년정의당 대구시당 위원장으로써의 포부가 있다면?
당사자로서의 문제인식이 정치활동의 시작점이었다. 성소수자로 살아오면서 나를 지지해주는 정당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17년 대통령 후보 합동토론때, 심상정 후보의 1분 발언이 큰 위로가 되었다. ‘정치가 내 삶을 바꿀 수 있구나’라는 정치적 효능감을 청년과 성소수자들이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