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교협 시사 칼럼] 촛불, 그 후 / 채장수

10:17

1.
봄은 色(색), 쓰는 계절이다. 꽃샘추위 속에서도 하얀 목련과 노란 산수유가 만개하더니, 줄지어 갖가지 꽃들이 피어나고 있다. 그리하여 봄은 色, 다른 계절이다. 그 다른 색깔에 어울리는 이름들을 다 헤아리지 못하는 나의 무지가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게 ‘자연의 봄’은 도래했으며, 그런 냉정한 무심함에 오히려 사람들은 위안을 얻는다. 한편으로 ‘사람의 봄’은 아직 저 멀리 있으며, 그 공허가 쉬이 물러가지 않는다. 그리하여 식상하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몇 년 전, 우리는 ‘촛불의 봄’을 확신했다. 어깨동무의 연대와 하늘을 가리는 만장이 파도처럼 넘실대던 그날의 광장은 여하한 경계와 차별이 사라진, 촛불보다 더 밝은 희망의 공간이었다. 약간의 과장을 허용한다면, 어느 서구 역사학자의 표현처럼 그것은 마치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정치적 열정으로 가득 찬 시기이자 사적인 것이 공적인 것으로 합쳐지는 ‘광기의 순간(the moment of madness)’이었다. 그것을 체험한 우리들의 마음은 이미 봄과 함께였다.

많은 것이 변한 것은 사실이다. 어처구니조차 없었던 대통령은 마침내 탄핵되었고, 바야흐로 ‘촛불정부’가 탄생했다. 우리는 새로운 정부의 슬로건처럼, 머지않아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가 도래하리라 기대했다. 반대자들의 조직적인 저항이야 각오하겠지만, 적어도 공정사회로의 출입문은 열리게 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2.
일정한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촛불은 내려졌고 사람의 봄은 아직 요원하다. 요즘은 ‘촛불정신’이니 ‘촛불정부’니 하는 말을 듣는 것이 왠지 거북하다. ‘촛불’에 편승하는 수많은 정치적 레토릭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사이의 심한 괴리감을 쉽게 감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촛불 이후 우리는 막연하기는 했지만, 진심으로 무언가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들의 바람직하지 못한 삶의 생채기는 여전하다. ‘촛불정부’ 구성원의 성범죄 이슈로 시작된 보궐선거 국면에 편승한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은 여야 합의라는 보기 드문 상황 속에서 일사천리로 통과되었다. 미래를 책임진다는 친환경 재생에너지는 멀쩡한 산과 들을 이리저리 파헤치는 태양광 패널로 대체되고 있다. 청년의 고단함은 더욱 늘어나고 있으며, 불안정 노동자의 슬픈 죽음의 행렬은 맥빠진 ‘중대재해처벌법’이 소란한 제정 이후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갖은 사회적 편견과 혐오 속에서도 삶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성소수자 변희수 하사는 끝내 죽음의 문턱으로 내몰렸다. 세계화를 지향한다는 캠퍼스 인근의 마을에서는 무슬림이 동네를 파괴하는 괴물로 취급되는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게 발생하고 있지만, 학교도 지방정부도 사태를 회피하고 있다. 탄핵의 몸통들이 대학의 권력을 되찾으면서 그들의 부당함을 비판했던 정의로운 사람들을 감시하는 데도 별다른 대응이 어려운 상황이다.

▲2016년 11월, 대구 4차 시국대회 모습. (뉴스민 자료사진)

3.
촛불은 국민적 저항을 통해서 명백하게 비정상적인 정치 권력을 퇴출시켰던 단지 뿌듯한 경험의 기억으로 박제되어서는 곤란하다. 우리가 그토록 뿌듯해하는 ‘촛불신화’의 한계에 대해서도 살펴봐야 한다. 예를 들어, 촛불은 ‘마지노선 민주주의’의 제한 속에 갇혀 있을 수도 있다.

김윤철에 따르면 ‘마지노선 민주주의’는 ‘최후의 방어선’(마지노선)으로서 국가권력의 공적 작동을 설정하고, 주로 국가권력의 사유화에 대한 저항에 시민사회의 정치적 에너지를 집중하는 방어적인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민(사회)은 국가(대통령)가 마지노선을 직접 침탈하는 경우가 발생해야만 비로소 집합적인 저항을 전개하는 특성을 보인다.

결과적으로 시민사회의 운동적 에너지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만 주기적으로 분출되지만 보다 확장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존의 정치질서는 일정한 변신과 정상화 과정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재생산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시민들은 집합적으로는 ‘질서’에 대한 불만을 주기적으로 표출함에 익숙해지면서도, 개인적으로는 기존 질서를 거부감없이 내면화하는 ‘분열적 주체’로 자리를 잡는다. 돌이켜보면 어떤 면에서 촛불이 그러했으며, 그러하기에 촛불‘혁명’이라는 명명은 확실히 과도한 레토릭이다.

4.
촛불 이후에도 자연의 봄은 도래하였고 사람의 봄은 지체되었으며, ‘촛불, 그 후’에 대한 실망은 ‘촛불정부’에 대한 지지도에 투영되고 있다. 이 와중에 멀리 미얀마에서는 80년 광주의 비극이 재현되고 있으며, 가까이는 대구지역의 유력지 만평에서 80년 광주의 비극이 조롱받고 있다. 결국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랫말을 진심으로 회의하게 되는 상황에까지 다다른다.

그러나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벼랑에 몰렸을 때만이 진화할 수 있는 존재가 사람’이라면, 오늘의 위기는 그날의 촛불처럼 ‘부디 사람은 못 돼도 괴물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보통 사람들을 다시금 곧추세우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에서도 얼마든지 다른 종류의 억압이 가능하다는 것이 명백해진 지금이야말로 ‘마지노선 민주주의’를 넘어선 또 다른 진화가 가능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제 더디 오는 봄을 찾아 나서는 우리의 수고가 필요한 때인 것도 같다.

채장수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