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되면 술 먹자던 유엽이, 열아홉에 남았네”

故정유엽 1주기에 모인 친구들, "따뜻했던 유엽이가 그립다"

21:08

“속 깊고 따듯한 친구 유엽이가 그립다.”

故 정유엽 씨 사망 1주기, 유엽 씨의 친구들은 유엽 씨를 생각하면 여전히 눈물이 고인다. 고향 친구로 함께 나이를 먹고, 대학생이 되면 같이 술 마시며 학창 시절을 추억하고 싶었던 유엽 씨의 친구들이 유엽 씨 사망 1주기에 모였다. 18일 이들은 경산시 남매지 야외공연장에 꾸려진 분향소에 국화꽃을 올리고 유엽 씨를 추모했다.

▲유엽 씨 1주기 추모제에 참여한 친구들이 헌화하고 있다.

유엽 씨와 함께 초·중·고등학교에 다닌 친구 송 모(20) 씨는 아직도 유엽 씨의 마지막 통화를 잊지 못한다. 송 씨는 작년 3월, 유엽 씨가 건 전화를 받았다. 유엽 씨는 아픈데 병원에 입원하지 못한 채 진단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다음 소식은 기사로 들었다. 한때 유엽 씨가 코로나19 양성이라는 기사도 나와서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제때 치료받았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으로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친구의 죽음에 쉬쉬하는 듯한 정부에 화가 나고, 아직도 변한 게 없다는 생각에 서글프다.

유엽 씨와 함께 학급 임원을 했던 이 모(20) 씨는 아직도 유엽 씨의 빈자리가 어색하다. 유엽 씨 어머니가 하던 식당에서 함께 밥 먹고, 유엽 씨 형과 같이 카페 가고, 유엽 씨 아버지가 하는 학원에 들러 인사드리던 기억이 생생하다. 크면 술 먹자던 친구는 19살에 머물러 있다. 추모식에 참여한 이 씨는 혼자서 스무 살이 됐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속 깊은 동생을 먼저 떠나보낸 유엽 씨의 작은 형도 여전히 아프다. 해양대에 따라 입학할 거라던 동생에게 도움 될 책을 줬는데, 여전히 책상에 그 책들이 펼쳐져 있다. 군대 가려고 형이 머리를 깎고 오자 덩달아 자기 머리도 깎고 왔던 유엽 씨. 어린 나이에 갑자기 떠나버려 함께 술 한잔 못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유엽 씨 1주기 추모제에 마련된 유엽 씨 영정사진 주변에 친구들이 짧은 편지를 남겼다.

18일 오후 5시 경산시 계양동 남매지 야외공연장에서 정유엽사망대책위원회가 ‘의료공백 1년, 정유엽을 그리다’ 1주기 추모제를 열었다. 이날 추모제에는 유엽 씨 친구 30여 명을 포함해 시민 120여 명이 참여했다.

추모제에 온 유엽 씨 어머니 이지연(52) 씨는 “코로나19로 인한 의료공백 때문에 유엽이가 제때 진료를 받지 못했다. 병원에 가고는 마지막 한 번을 안아주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야 했다. 이별할 시간도 갖지 못했다”며 “화장해서 묘지에 안치하고 돌아오는 길 동백꽃만 보이더라. 그렇게 유엽이를 혼자 두고 집에 온 날이 생각난다. 의료공백 때문에 죽었다. 또 다른 희생이 없어야 한다. 진상조사를 통해 좀 더 건강한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버지 정성재(54) 씨와 함께 걸어서 청와대로 향했던 권영국 변호사는 “청와대의 면담 거부에 분노한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지방 공공의료시설 확충, 의료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병원 확충이 유엽이가 남긴 우리의 과제”라며 “누구나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공공성 확보를 위해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3월 유엽 씨는 40도가 넘는 고열에 선별진료소가 있는 경산중앙병원을 찾았으나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 의료기관의 적절한 처치를 받지 못한 채 이틀을 보내고 나서야 영남대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으나, 발열 엿새 만에 사망했다.

▲유엽 씨 어머니와 작은 형이 1주기 추모제에 참여했다.
▲3월 18일 경산 남매지 야외공연장에서 유엽 씨 1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장은미  수습기자
jem@newsmin.co.kr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