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가다 숨진 김천 로젠택배 노동자···사측, “산재 처리 협조하겠다”

주 6일, 평균 60시간 근무, 택배 분류·배송·접수까지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 자필 날인 없어
근로복지공단, 경위 조사 중

12:59

배달을 가던 중 뇌출혈 상태로 발견돼 숨진 경북 김천 로젠택배 노동자에 대해 사측이 산재 처리에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숨진 노동자가 제출한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서의 유효성 여부가 산재 인정에 중요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신청서에 자필 서명이 빠져 사측 강압이 있었다는 의혹이 일고 있고, 근로복지공단은 신청서 제출 경위를 조사를 통해 유효성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지난 15일 오후 11시 20분 로젠택배 김천터미널 소속 택배노동자 김 모 씨가 뇌출혈로 숨졌다. 김 씨는 지난 13일 오전 여느 때처럼 배달을 나갔다가 오후 2시 30분께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됐다. 터미널에서 100m가량 떨어진 갓길에 김 씨 차량이 계속 세워져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동료가 발견해 신고했다. 발견 당시 이미 6시간가량 방치된 후였고, 뇌에 피가 2/3 이상 차 있었다. 구토 흔적도 있었다.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
자필 날인 없는 거로 드러나

택배노동자는 특수고용노동자 산재보험 가입 대상에 포함되지만, 김 씨는 지난해 7월 24일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을 작성했다. 하지만 본인 의사로 직접 작성하고 서명한다는 칸이 비어 있어 논란이다.

택배대책위는 사측의 강압에 의해 작성된 것으고 추측하고 있다. 대책위는 “지점장이 ‘산재보험 들어봤자 필요 없다’는 발언을 했고, 대책위에서 지점장에 확인할 결과 ‘운전하다 사고 나도 자동차보험 적용만 받지 산재는 안 되니 알아서 잘 판단해라’는 말만 했다고 한다”며 “사실상 사측에 의한 강요로 작성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택배노동자 산재 제외 신청서를 사측이 대필한 사실이 드러나, 고용노동부는 전수조사에도 나섰다. 하지만 이번 사례는 전수조사 결과 발표에서 드러나지 않았다.

김 씨의 형인 김 모(53) 씨는 “처음에는 산재 처리 받기 전까지는 장례도 치르지 않으려고 했다. 산재보험은 당연히 들어야 하는 건데, 제외 신청서가 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며 “이건 제외하라고 만들어 놓은 신청서 아니냐. 이런 게 있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김 씨의 형이 보여준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서’, 본인 의사에 따라 적용 제외 신청서를 직접 작성하고 서명 날인한다는 칸이 비어있다.

로젠택배 김천지점, “산재 인정되도록 노력”
근로복지공단, 신청서 서명 누락 경위 조사 중

로젠택배 김천지점 A 대표는 <뉴스민>과 만나 제외 신청서는 본인 선택에 따른 것이었다며 산재 인정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A 대표는 “매달 보험료가 부담되는 분들도 있으니 (산재 보험을) 안 해도 된다는 선택을 줬다. 정부에서 제외하는 걸 만든 것도 잘못”이라며 “(산재 인정을 받는데) 노력하겠다. 과로가 인정되어야 하는 부분이 숙제다. 면 단위라 거리는 멀지만 배송량이 적다 보니 그런 게 걱정된다”고 말했다.

근로복지공단은 김 씨의 적용 제외 신청서 제출 경위와 서명이 누락된 경위 등을 조사해 법률 검토를 거쳐 신청서의 효용 여부를 가릴 예정이다. 근로복지공단본부 재활계획부 관계자는 <뉴스민>과 통화에서 “현재 신청서를 낸 경위와 서명 누락 경위 등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며 “현재로서는 산재보험 적용 제외 상태이기 때문에 제외 신청서 유·무효 여부가 가려져야 이후 과로사인지 여부도 조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족과 대책위는 산재 인정과 함께 로젠택배 본사 측에 공식적인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로젠택배 본사는 대표이사 명의로 된 화환을 장례식장에 보냈지만, 공식적인 사과는 없었다.

대책위는 “이번 사건은 사회적 합의 내용을 거부하고 과로사 문제에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은 로젠택배의 무관심이 불러온 참사”라며 “로젠택배는 국민 앞에 사과하고 지금 즉시 사회적 함의 이행에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씨의 장례식장에 놓인 최정호 로젠택배 대표이사의 화환

한편, 숨진 김 씨는 15년 동안 택배 기사로 일해오다 지난해 2월부터 로젠택배에서 일했다. 주6일 근무로 평균적으로 오전 7시 5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일했다. 하루 평균 10시간, 주 60시간 일한 셈이다. 고용노동부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에 의한 질병 인정 기준에 따르면,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주 평균 60시간을 초과하면 업무 관련성이 강하다고 본다.

그는 오전에는 택배 분류 작업을 한 뒤 배송을 나갔고, 돌아오는 길에는 고객이 배송할 물량을 접수해 받아왔다. 하루 배송량은 적게는 20개, 많게는 40개다. 그는 혼자서 대덕면, 지례면(면적 약 152㎢)을 담당하면서 이동거리가 많았다.

▲숨진 택배노동자 김 씨가 배달한 구역인 김천시 대덕면과 지례면 (사진=김천시청)

김규현 기자
gyuhyun@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