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의료공백’ 정유엽 사망 진상규명 위한 행진 시작

2월 22일부터 3월 17일까지 청와대 향해
청와대 국민청원도 함께 진행, “정부 차원 진상조사”

11:23

“유엽이 죽음의 출발점인 이곳에서 지난 아픈 기억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3월 13일 오늘을 넘기기 힘들다면서도 구급차 이용을 거부해 저의 차 안에서 가쁜 호흡에 괴로워하며 유엽이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말인 ‘엄마 나 아파’. 13일 영남대 응급실에서 밤 12시경 엄마에게 걸려온 유엽이의 마지막 전화를 받지 못해 가슴에 한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난해 3월 경북 경산에서 코로나19로 오인 받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숨진 정유엽(당시 17세) 씨의 아버지 정성재 씨가 22일부터 24일간 청와대를 향한 도보행진에 나선다. 성재 씨는 22일 오전 경산중앙병원 앞 기자회견에서 “눈물과 회한으로 나날을 보내는 것도 저희에겐 사치”라며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도보행진의 시작을 알렸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도보행진 시작을 함께하기 위한 연대자 60여 명 등이 참석한 가운데 유엽 씨 첫 진료를 본 경산중앙병원 앞에서 열렸다. 성재 씨 일행은 첫날 일정은 경산중앙병원에서 출발해 유엽 씨가 숨을 거둔 영남대의료원까지 이어진다.

▲정성재 씨(왼쪽 세번쨰)와 이지연(왼쪽 두번쨰) 씨 부부가 도보행진을 앞두고 경산중앙병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경산중앙병원과 영남대의료원은 유엽 씨가 숨지기 전까지 거친 의료기관이다. 경산중앙병원은 고열 증세로 처음 내원한 유엽 씨에게 코로나19 검사를 받지 않으면 병원에 들일 수 없다며 해열제 정도만 처방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상태가 심각해져 영남대의료원으로 옮겨가야 할 때도 구급차를 내어줄 수 없다고 해 성재 씨가 직접 운전해 가도록 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유엽 씨는 영남대의료원에 입원한 후에 진단검사만 13회 받았다. 영남대의료원은 13회 만에 유엽 씨가 코로나19에 감염됐다고 밝혔지만, 질병관리본부(현재 질병관리청) 조사를 거쳐 최종 음성으로 결과를 바꿨다. 의료원이 최초 유가족에게 발급한 사망진단서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이라고 적혔지만, 의료원은 질본 조사 이후 최종 양성 판정을 하지 않았다는 해명을 하고 있다.

유엽 씨 사망 이후 성재 씨는 아내 이지연 씨와 함께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활동을 이어왔다. 경산 지역 시민사회단체, 정당의 도움으로 대책위를 꾸렸고, 토론회를 열고 거리 서명전에도 나섰다. 정유엽사망대책위원회는 도보행진과 함께 청와대 국민청원도 진행한다. 21일 게재된 국민청원은 사전동의 100명 기준을 충족해 현재 관리자 검토 과정에 있다. (국민청원 바로가기)

성재 씨는 “K방역 이면에는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인 서민과 소외계층 그리고 장애인 등의 피와 눈물이 녹아있다. 이러한 분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다수의 이익이라는 명목하에 무시되는 결과를 만든 것”이라며 “각기 다른 형태로 나타난 의료공백 문제를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결하고자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그는 “유엽이 죽음에 외면과 침묵으로 일관한 정부와 병원은 책임있는 태도로 나서길 바란다”며 “유엽이 죽음에 대한 정부 차원 진상조사를 통해 의료공백 대책이 마련되고 의료전달체계 및 공공의료확대를 통해 모두가 평등하게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고 덧붙였다.

도보행진은 유엽 씨 1주기를 하루 앞둔 3월 17일 청와대 도착을 목표로 하지만, 성재 씨가 항암치료를 마친지 얼마 안 되어 건강상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성재 씨와 모든 일정을 동행하는 최기석 민주노총 경산지부 조직부장은 “많은 분들이 아버님 건강을 걱정하고 있다. 아버님 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진행하도록 하겠다. 아버님이나 저의 뒤를 이어줄 분들이 있다는 든든한 마음을 갖고 걸어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