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폴:오디어스와 환상의 문(2006년)>의 영상미는 말이나 글로 쉽게 설명할 수 없다. 러닝타임 117분 동안 시선을 사로잡는다. 버릴 만한 장면은 단 하나도 없다. 이국적인 영상미는 환상적이다. 세련된 미학을 추구하는 웨스 앤더슨 감독의 <문라이즈 킹덤(2012년)>과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년)>과 비슷하면서 사뭇 다르다. 앤더슨 감독이 아기자기한 소품, 화려한 색감, 미니어처의 적극 활용 등으로 영화는 마치 그림책의 삽화를 보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더 폴>을 연출한 타셈 싱 감독은 각 장면을 한 편의 미술 작품처럼 보여준다. 영화의 각 장면이 매우 환상적이고 아름다워서 아무 화면에서나 일시 정지를 하고 있으면 예술 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흥미로운 점은 CG를 완전히 배제한 채 실제로 촬영된 초현실적인 화면이라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아무리 생각해 봐도 CG 처리를 한 것 같은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환상의 색채와 모양은 실제로 존재한다. 이탈리아 티볼리의 빌라 아드리아나, 로마의 콜로세움, 터키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사원,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 중국 만리장성 등 전 세계 26개국의 그림 같은 명소를 화면 안에 펼쳐놓으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교묘하게 교차시켰다. 세상 곳곳을 돌다 보면 순간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들을 담은 프레임마다 모든 대상을 최선의 각도에서 찍어냈다. 신이 빚어낸 위대한 작품에서 음악이란 예술은 무용지물이다.
영화는 초반부터 인도 라자스탄 주 자이푸르의 ‘잔타르 만타르’ 천문대를 보여주면서 시선을 끈다. 산스크리트어로 잔타르 만타르는 ‘마법장치’라는 뜻이다. 1734년 완공된 잔타르 만타르 천문대는 천문 관측과 일기 예보에 쓰인 계단형 돌 건축물이 줄줄이 늘어섰다. 특히 14개의 계단이 하나의 별을 향하도록 세워져 있는 게 인상적이다. 가장 큰 계단의 높이는 27m에 이른다. 계단의 그림자로 낮 동안의 시간을 가늠하고 일식이나 계절풍의 변화를 예측했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이 천문대는 ‘아무리 오르고 올라도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고 끝없이 계단만 이어지는 절망의 미로’로 소개됐다. 싱 감독은 잔타르 만타르 천문대에 네덜란드 판화가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의 작품 ‘무한공간’ 이미지를 입혔다.
자이푸르에서 서남쪽으로 500㎞ 정도 떨어진 조드푸르 인근 아브하네리 마을의 ‘찬드 바오리 저수지’도 멋지다. 9세기에 만들어진 이 저수지는 약 30m 높이의 사방 벽면이 3,500여 개의 계단으로 가득 채워졌다. 영화 말미 푸른 도시 ‘조드푸르’도 꽤 인상적이다. 1459년 세워진 메랑가르 성채를 둘러싼 구시가지 건물 대부분이 짙은 푸른색으로 칠해져 있다. 도시가 생겨났을 때 이주해 온 브라만들이 숭배한 시바 신의 상징이 파란색이기 때문이다.
<더 폴>의 빼어난 영상미가 가능한 이유는 타셈 싱 감독이 광고 촬영을 위해 17년간 볼리비아와 아르헨티나, 인도, 터키, 체코 등 28개국을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자연과 도시, 건축물을 점 찍어둔 덕분이다. TV CF 감독 출신인 싱 감독은 1991년 R.E.M.의 <Losing My Religion>으로 MTV 최우수 뮤직비디오 상을 받았다.
영화는 불가리아 영화 <요호호(1981년)>를 리메이크했다. 영상미는 초현실주의 대표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을 오마주했다. 포스터는 달리의 작품 ‘메이 웨스트의 얼굴(face of Mae West, 1938년)’에서 영감을 얻었고, 영화 곳곳에 달리의 작품처럼 보이는 장면이 등장한다. 일본인 아트디렉터인 이시오카 에이코가 디자인한 의상은 화려한 색감을 뽐낸다.
대신 서사는 헐거운 편이다. 1920년 미국 할리우드의 한 병원에서 영화 촬영 중 다리를 다친 스턴트맨 로이(리 페이스)는 나무에서 떨어져 팔이 부러진 5살 소녀 알렉산드리아(카틴카 언타루)를 만나 다섯 영웅의 이야기를 해준다. 상처 입은 어른과 의젓한 꼬마가 나누는 풋풋하고 애틋한 우정이 그려진 이야기는 동화적인 매력을 살린다. 이 영화에서 이야기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네모난 화면에 나타나는 아름다운 신의 선물을 즐기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