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의 원작소설을 연출한 <샤이닝(1980년)>은 호러 영화 중 손가락에 꼽히는 명작이다. 초능력이나 유령 등 오컬트 소재를 통해 심리적으로 옥죄는 표현이 공포감을 극대화시킨다. 현악기가 찢어지는 듯 섬뜩한 음향효과와 독특한 구도를 통해 고립감을 전달하는 영상미도 뛰어나다. 특히 배우 잭 니콜슨의 광기어린 연기는 아직도 전설로 통한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소설가 잭 토랜스(잭 니콜슨)는 겨울이면 폭설로 고립되는 오버룩 호텔의 관리인으로 일하게 된다. 겨울 동안 아예 영업을 하지 않은 탓에 돈을 벌면서 글 쓰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기회다. 그는 아내 웬디(셜리 듀발)와 아들 대니(대니 로이드)를 데리고 호텔에 들어온다. 예전 관리인이 자신의 쌍둥이 딸과 아내를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얘기를 흘려듣는데, 잭도 점점 광기에 사로잡혀 미쳐간다.
그런데 이 영화는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인류 최초의 달 착륙 조작의 실마리가 된다는 소문으로 유명하다. 잭의 아들 대니가 호텔 복도에서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노는 장면 때문이다. 의혹의 단서는 영화에서 호텔 복도에 깔린 카펫의 육각형 무늬가 미 항공우주국(NASA)의 아폴로 11호 발사대가 위치한 곳의 모양과 흡사하고, 대니가 입은 스웨터에 아폴로 11호가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대니가 아폴로 11호가 발사되는 것처럼 서서히 일어서고, 화면이 237호실을 비추는데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인 23만 7천마일을 상징한다는 것도 근거다. 이후 대니는 옷이 해지고 몸에 상처가 난 채 나타나는데, 의혹을 제기한 이들은 대니의 모습이 실패한 미국의 달 착륙의 전말을 상징한다고 주장한다.
이 의혹은 냉전시대에 옛 소련과 우주 탐사에 대해 경쟁해 온 미국 정부가 큐브릭 감독이 연출한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1968년)>를 보고 이듬해 7월 20일 그와 함께 달 착륙 영상을 조작했다는 가정에서 비롯됐다. 의혹을 제기한 이들은 세월이 흐른 뒤 큐브릭 감독이 죄책감이 들어 영화에 인류 최초 달 착륙의 진실을 영화에 비유적으로 담아냈다고 주장한다.
인류 최초 달 착륙 조작설은 1974년 작가 윌리엄 찰스 케이싱의 책 <우리는 달에 간 적이 없다(WE NEVER WENT TO THE MOON)>에서 출발했다. 유사과학 단체 ‘평평한 지구 학회’에서는 지속적으로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2018년 미국 프로농구 3점 슈터로 유명한 스테판 커리가 한 인터넷 방송에서 “나는 달에 착륙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사는 우리를 납득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이에 나사는 커리를 존슨 스페이스 센터에 초청하기에 이른다. 존슨 스페이스 센터는 아폴로 11호의 우주 탐사를 지휘한 곳으로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다.
1969년 인류 최초의 달 착륙을 믿지 않는 이들이 내세우는 의혹의 근거는 크게 9가지로 정리된다. 첫 번째는 ‘펄럭이는 성조기’다. 달의 대기는 진공상태에 가까운데, 나사가 공개한 영상에는 성조기가 펄럭인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달 착륙 영상에서 별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지구에서 영상을 조작한 탓이라는 가정이 따라붙는다. 세 번째 의혹은 우주의 광원은 태양 하나뿐인데 사진 속 그림자의 방향이 일정하지 않고 길이도 다르다는 것이다.
네 번째 의혹은 착륙선이 달에 착륙하고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발을 내딛고, 심지어 착륙선이 발사대도 없이 달에서 다시 이륙하는 장면을 어떻게 찍었느냐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달 표면은 밤에는 영하 183도까지 떨어지고 낮에는 130도까지 오르는데 어떻게 우주비행사들이 몇 시간 동안 달에서 활동할 수 있느냐와 방사능 피폭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여섯 번째 의혹은 미국은 1969년 달 착륙에 성공했는데 그 후로 왜 유인 달 탐사를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일곱 번째 의혹은 1960년대 구식 컴퓨터로 실시간으로 항로계산을 해 우주비행사들과 소통하고, 어떻게 촬영한 영상을 실시간으로 지구에 보낼 수 있느냐다. 여덟 번째 의혹은 1960년대 기술로 최근 달 착륙에 성공한 중국 우주선(창어 시리즈)보다 빠르게 달 착륙을 할 수 있었느냐다. 마지막 아홉 번째 의혹은 나사는 왜 의혹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박하지 않느냐다.
인류 최초 달 착륙을 둘러싼 진실 공방은 수십 년째 끊이지 않는다. 2002년 전 세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동영상이 있다. 이 영상에는 ‘1969년 달 표면에서의 라이브 영상’이라는 제목이 달렸다. 영상에 아폴로 11호 착륙선에서 내리는 우주비행사의 모습이 담겨 있는데, “이것은 작은 발자국이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이라는 닐의 명언이 나올 무렵, 천장의 조명기구가 떨어진다. 우주비행사는 욕을 내뱉고 화면에 스태프들이 나와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 영상은 영국의 광고감독 애덤 스튜어트가 ‘달 착륙 조작설’을 배경으로 2002년 초 영국 런던에서 제작했다. 제작 과정까지 다 공개됐지만, 아직도 ‘달 착륙의 진실’이란 제목이 달려 온라인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인류 최초의 달 착륙 조작설의 의혹을 반박하는 근거도 있다. 첫 번째 의혹인 펄럭이는 성조기는 일부러 깃대를 ‘ㄱ’자로 만든 탓에 생겨났다. 나사는 바람이 불지 않는 달 표면에 꽂은 성조기가 축 처져 있으면 모양새가 나지 않는 것을 걱정해 깃대를 특수 제작했다. 달 착륙 영상을 자세히 보면 깃발이 ‘ㄱ’자로 고정된 것이 보인다. 그리고 멋진 성조기를 연출하기 위해 사전에 성조기를 구겼다. 영상에서 성조기는 구겨진 모양 그대로 흔들림 없이 서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째, 달에서 별이 보이지 않던 이유는 달의 대기가 부족해 빛의 산란이 일어나지 않아 달의 하늘이 시커멓게 보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창어 4호가 지난해 촬영한 달 표면에도 별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달 표면에서 활동한 시간대는 달의 기준으로 ‘오전’이다. 지구에서 낮에 별이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세 번째, 달 착륙 영상 속 그림자의 길이와 방향이 다른 것은 달 표면이 울퉁불퉁한 탓이다. 만약 조명을 여러 개 썼다면 축구장에서 선수들의 그림자가 나뉘는 것처럼 조명이 비추는 방향마다 그림자가 생겨났을 것이다. 달 착륙 영상 속 우주비행사들의 그림자는 하나다.
네 번째, 우주선의 착륙과 닐의 도약, 착륙선의 이륙을 어떻게 찍었느냐는 의혹도 간단히 해결된다. 달의 궤도에서 멈춘 사령선에 남은 마이클 콜린스가 착륙선에 탄 우주비행사들을 촬영했다. 닐이 달 표면에 첫발을 내딛는 모습은 착륙선 다리가 펼쳐질 때 다리 안쪽에 미리 설치한 카메라로 찍었다.
또 달에서 발사대도 없이 어떻게 이륙했느냐에 대한 질문의 답변도 복잡하지 않다. 달에서는 지구처럼 크고 거창한 발사대가 필요하지 않다. 애초 지구에서는 커다란 우주선을 지탱하고 발사 직전 연료와 전력 등을 공급하기 위해 큰 발사대가 필요하다. 또 지구의 강한 중력과 공기저항을 이기면서 대기권을 올라가서 가속을 해야 하기 때문에 로켓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달은 궤도속도가 초속 1.5㎞(지구는 초속 8㎞)만 달성하면 되는데다 공기저항으로 속도를 잃을 염려도 없고 중력이 강하게 작용하는 대기에서 벗어날 필요도 없다. 일반적으로 추력이 강할수록 비추력(연료효율)이 줄어드는데, 달은 중력이 약하니 추력을 낮춰서 비추력을 지구보다 높일 수 있다. 비추력은 높을수록 연료를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효율을 낸다. 달의 중력만 보고 달의 중력이 1/6이면 로켓 엔진의 힘도 1/6 정도여야 한다는 단순 비례를 근거로 한 주장은 빈약하다. 2인용 착륙선을 띄울 수 있을 정도의 발사대는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선에 달려 있었다.
다섯 번째, 영하 183도에서 영상 130도까지 오르락내리락하는 달의 온도에서 우주비행사들이 활동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기가 부족한 달에서는 열전도 현상이 일어나지 않고 우주복을 통해 열의 전달을 막아 가능했다. 카메라에는 만약을 대비해 특수 장치를 입혔다. 또 지구와 달 사이에 위치한 밴 앨런대에 있는 방사선을 어떻게 버텼느냐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질문이다. 방사선이라고 하면 죄다 사람 죽이는 광선이 아니다. 방사선마다 투과할 수 있는 정도가 다르다. 아폴로 유인 미션에서 우주비행사들이 쐰 전체 방사선량은 미국 원자력 에너지 위원회(U.S. Atomic Energy Commission)가 정한 ‘방사선 작업 종사자’의 연간 허용 피폭량보다 훨씬 낮다.
여섯 번째, 미국이 더 이상 유인 달 탐사에 나서지 않은 이유는 더 이상 막대한 예산을 들일 필요성이 없어서다. 당시 유인 달 탐사에 들인 예산은 1,378억 달러(약 150조원)가 넘는다. 이 때문에 달 탐사가 실패할 때마다 예산 낭비와 우주비행사 사고사를 감수할 필요가 있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옛 소련과의 경쟁에서 승리했는데, 명분도 실리도 없는 유인 달 탐사를 더 이상 할 ‘정치적 이유’가 없다.
일곱 번째, 컴퓨터의 낮은 성능은 문제가 없다. 사양이 높으면 반도체가 민감해져 오히려 고장이 날 위험성이 높다. 이 때문에 안정성 문제로 지금도 구형 컴퓨터를 우주선이나 인공위성에 설치한다. 아폴로 11호 때는 지상에서 고사양의 컴퓨터로 궤도 계산을 끝내고 우주선에서는 궤도 보정만 했다.
여덟 번째, 2019년 1월 3일 중국의 창어 4호는 달 착륙에 도착하는데 한 달이 걸렸는데, 반세기 전 기술을 탑재한 아폴로 11호는 나흘 만에 도착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도 간단하다. 창어 4호의 도착점은 달의 앞면이 아니라 뒷면이다. 달의 뒷면은 지구의 전파가 닿지 않은 미지의 공간이다. 창어 4호는 이륙한 지 닷새 만에 달의 뒷면 궤도에 들어섰고 앞면보다 더 울퉁불퉁한 달의 뒷면에 수직으로 착륙하기 위해 궤도 계산을 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아폴로 11호의 착륙선은 사선으로 달 표면에 도달했다.
아홉 번째, 나사는 ‘달 착륙 조작설’을 반박하는데 예산을 편성했다가 비판이 일자 철회한 적이 있다. 1960년대에 미국이 달 탐사에 열을 올린 이유는 옛 소련과의 냉전 때문이다. 아폴로 계획의 목적은 ‘달에 사람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달에 사람을 먼저 보내 옛 소련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었다. 미국 과학기술력의 수준과 위업을 보여주는데 치중한 달 탐사는 더 이상 자랑거리만은 아니다. 나사가 달 착륙 조작설에 대해 반박해봤자, 논란을 부추기고 부끄러운 과거를 들추기만 할 뿐이다.
인류 최초 달 착륙 조작설은 이미 오래전에 논파됐다. 빈약한 근거로 제시된 허접한 음모론에 불과하고 학술적 논의의 대상조차 안 된다. 하지만 여전히 달 착륙 조작설을 믿는 사람은 많다. 2016년 영국에서 벌어진 설문조사에서 영국인의 52%는 1969년 7월 20일 인류 최초의 달 착륙이 조작된 것이라고 믿고 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각종 영상, 실제 우주선, 달 암석 표본 등의 증거가 있는데도 많은 영국인들은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을 가짜라고 생각한다. 또 미국인의 20%는 여전히 달 착륙을 조작한 것으로 의심한다고 한다.
2019년에는 나사에서 1시간 32분가량의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과정을 미공개 영상과 오디오로 공개한 다큐멘터리가 나왔다. 하지만 달 착륙 조작설을 뒤집을 수 있는 증거를 내놓아도 소용없다. 달 착륙을 믿지 않는 이들은 자신들이 내세우는 의혹의 근거만 주목하고 반박 증거에는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같은 의혹은 일정한 주기로 되풀이되고 전혀 해소되지 않는다. 애석하게도 달 착륙 조작설은 미국이 자초한 탓이 크다. 진실 공방은 미국과 옛 소련의 우주탐사 우위경쟁의 산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