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감염병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휘몰아치고 있다. 신종 감염병은 전 세계에 걸쳐 수많은 사상자를 냈고, 내고 있다. 동시에 우리가 애써 외면해온 사회의 아픔도 그대로 드러냈다. 대한민국, 그중에서도 1차 대유행이 할퀴고 지나간 대구는 극심한 감염병으로 직접적인 피해만큼 사회과 품은 또 다른 아픔도 명징하게 드러냈다. <뉴스민>은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기획을 통해 이주민과 난민, 학생과 교사, 특수고용노동자들을 통해 감염병이 드러낸 우리 사회의 아픔을 짚고, 감염병에 대응하는 공공의료체계의 현실도 짚어보고자 한다.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1) 라울은 왜 인도로 돌아갔을까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2) 우디트는 ‘성실 근로자’로 재입국할 수 있을까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3) 훌란은 3월에 넷째를 낳았고, 열흘 만에 참외를 땄다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4) 감염병의 시대, 이주민을 위한 국가는 없다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이주노동자는 어떻게 살아남았나(합본)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5) ‘특수근로형태근로종사자’로 살아남기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6) 이름만큼 어려운 ‘특고 지원금’ 받기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7) 나만 없는 고용보험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특수근로형태근로종사자, 지원금 그리고 고용보험(합본)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8) 무너지는 신화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9) K방역 밖에 선 사람들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10) 방역마저 자급자족해야 하는 사람들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11) K방역도 메우지 못하는 공백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12) K방역은 ‘성공’했다지만, 같은 문제는 반복된다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성공한’ K방역, 그 밖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합본)
“서명 좀 부탁드려요” 지난해 8월 11일, 경북 경산 중방동 경신시장 입구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행인들에게 서명을 부탁했다. 이지연 씨도 함께였다. 그는 벌써 세 번째 경산시장을 찾아 서명을 받았다. 지연 씨는 시장을 찾으면 상가를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서명을 부탁한다. 처음 와서는 시장 입구에서 경산오거리 반대 방향으로 큰길을 거슬러 오르며 상가를 찾아 들었고, 두 번째에는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세 번째인 이날은 경산오거리 방면으로 큰길을 따라 올랐다.
“다니면서 이야길 들어보면 사람들 마음이 다 같은 마음 같아요. 다시 코로나19가 심해질 수 있다는데 많이 두렵다고들 하세요. 진료 거부를 당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고 하거든요.” 지연 씨는 지난 3월 막내아들을 잃었다. 열여덟 살, 수능을 앞둔 아들은 한국해양대를 진학해 해군 장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꿈은 꿈으로만 남았다. 아들은 고열과 폐렴 증세 때문에 코로나19로 오인 받았다. 의료기관은 적시에 적절한 조치를 하지 못했다. 아들은 경산에서 대구 대학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엄마, 나 아파”라는 말을 남기고 의식을 잃었다. 지연 씨가 들은 아들의 마지막 육성이었다. 의식을 잃은 아들에게 지연 씨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차창 밖으로 손을 빼 차가워진 손을 아들 이마에 가져다 대기를 반복하며 지연 씨는 어서 병원에 당도하길 바랐다.
대구와 생활권 동일한 경북 경산
코로나19 유행도 비슷하게 겪어
코로나 감염 의심 받은 고3 학생
지연 씨 가족이 사는 경북 경산은 대구와 인접한 도시다. 경북 기초지자체이지만 지역번호는 054 대신 대구와 동일한 053을 쓴다. 생활권이 대구와 동일하다. 감염병 유행마저도 그랬다. 2월 18일 대구 남구 신천지 교회에서 시작된 코로나19 집단감염은 경산에도 유탄을 떨어뜨렸다. 2월 29일까지 확진자 145명, 3월 들어 56명, 28명, 62명, 56명, 57명. 3월 5일에는 누적 확진자 400명을 넘어섰다.
지연 씨네 가족은 코로나19가 대구에서 발생하면서부터 바깥출입을 삼갔다. 남편 정성재 씨가 항암 치료를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막내아들 유엽 씨도 마찬가지다. 3월 10일, 유엽 씨는 오랜만에 긴 시간을 밖에서 보냈다. 전날 정부가 공적 마스크 제도를 시행했고, 지연 씨는 아들에게 마스크를 좀 사다 놓으라고 부탁했다.
9일부터 감기 기운이 있다고 한 유엽 씨는 잘 쓰지도 않던 비니 모자를 쓰고 엄마가 운영하는 식당을 찾았다. 오후 5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가랑비가 조금씩 내렸다. 유엽 씨와 아버지 성재 씨는 50분 가량을 줄 서서 KF94 마스크 각 2장을 확보했다. 그날 밤, “엄마, 나 골이 띵해.” 지연 씨는 아들의 머리를 짚어봤다. 크게 열이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지연 씨는 집에 있던 감기약을 아들에게 건넸다.
다음날, 유엽 씨는 평소보다 늦게 아침을 맞았다. 밤새 유엽 씨는 이상하게 오르는 열감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일어나자마자 지연 씨에게도 “엄마, 나 새벽에 열이 좀 많이 났어”라고 말했다. 지연 씨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머리를 다시 짚어봤지만, 크게 열이 느껴지진 않았다.
당시 정부는 의심 증상이 있어도 바로 병원을 찾기보다 3, 4일 경과를 지켜보라고 당부했다. 정부 콜센터1339로 문의해도 같은 대답이 돌아왔고, 조바심에 선별진료소를 찾아가도 확진자 접촉 사실이 없으면 검사 대상자가 아니라는 이야길 듣는 이들이 많았다. 지연 씨와 가족은 정부 방침대로 하루, 이틀 더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12일 오전까지만 해도 유엽 씨 상태는 전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상태는 오후부터 급격하게 나빠졌다. 지연 씨는 체온계를 급하게 찾아 아들 몸에 가져다 댔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40이 넘는 숫자가 체온계에 찍혔다. 지연 씨 부부는 다급하게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다행히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경산중앙병원이 국민안심병원으로 지정되었고, 선별진료소도 운영했다. 시각은 저녁 7시를 넘겨 8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급하게 도착했지만, 병원은 이미 선별진료소 운영을 마친 상태였다. 저녁 6시까지 운영한다고 했다. 병원은 유엽 씨를 안으로 들이는 대신 의사가 밖으로 나왔다. “애 아빠가 항암을 해서 2주 전부터 밖에 내보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열이 많이 나요.” 애타는 지연 씨 설명을 들으며 의사는 유엽 씨의 체온을 쟀다. 의사는 정확한 수치는 말하지 않은 채 ‘상당한 고온’이라고 지연 씨에게 전했다. “링거라도 맞을 수 있게 해주세요.” 지연 씨는 말했고, 의사는 링거 대신 해열제와 항생제를 처방하면서 다음 날 오전 선별진료소 문을 열면 다시 오라고 했다.
병원 안으로 발 한 번 들이지 못한 채 유엽 씨는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지연 씨 부부에겐 의사가 처방해준 약이 전부였다. 같은 시각 중앙병원에서 2km 떨어진 세명병원 선별진료소는 운영하고 있었지만, 누구도 그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아들을 잃은 후에야 부부는 세명병원 선별진료소가 그날 밤 10시까지 운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의사가 준 약은 효과가 없었다. 아들은 밤새 고열에 시달렸다. 지연 씨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며 날이 밝길 기다렸다. 13일 오전,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9시에 문을 열면 곧장 진료를 받을 요량으로 20분 전에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은 여전히 유엽 씨를 안으로 들이진 않았다. 선별진료소에서 폐 엑스레이를 찍고 독감 검사도 마쳤다. 폐 곳곳에 염증이 있고, 코로나19 검사 결과는 하루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링거라도 맞게 해주세요.” 지연 씨는 다시 부탁했다. 의사는 병원 안에선 안 된다고 했다. “차 안에서라도 맞을게요.” 간절한 부탁에 간호사가 링거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2시간 동안 차 안에서 링거를 맞았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다. 간호사는 1시간 정도 있으면 효과가 있을 거라며 안심시켰고, 새로 나온 의사는 강한 약을 처방했다며 안심시켰다. 강한 약은 1시간 정도 유엽 씨에게 효과를 보였다. 그뿐이었다. 다시 유엽 씨는 고열에 시달렸고, 구토, 호흡 곤란 증상도 보였다.
“응급환자라든지 중증환자가 어떻게 대처하면 되는지 홍보가 없었잖아요. 병원에 열나는 환자가 대학병원 가서 폐쇄되는 것만 뉴스로 보니까, 가면 안 되는 줄로만 알았어요.” 지연 씨 부부는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1339로 문의했다. 1339는 경산보건소로 연결해줬다. 경산보건소는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이기 때문에 마땅한 방법이 없다며 병원 의사와 다시 상의하라고 했다. 곧장 중앙병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의사는 소견서를 서줄테니 서둘러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병원에 도착하자 의사가 소견소를 들고나왔다. 그러면서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다. 이윽고 병원장이라는 이가 나와선 청천벽력 같은 이야길 지연 씨 부부에게 전했다. ‘오늘 밤을 넘기기 어렵다’ 황당해진 지연 씨는 병원장 옆에 있던 의사에게 따져 물었다. “오전까지 그런 이야기 없었잖아요!” 의사는 말없이 고개만 떨궜다. 여기서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구급차라도 불러주세요.” 지연 씨는 병원장에게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병원장은 직접 운전해서 가야 한다고 했다. 항암 후유증으로 손발이 저린 성재 씨의 손이 더 크게 떨렸다.
하필이면 퇴근 시간, 길게 늘어선 차량 사이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지연 씨와 성재 씨는 영남대병원으로 향했다. 1시간이 걸려 도착한 병원에 겨우 입원했다. 그 후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는 그대로다. 유엽 씨는 영남대병원에서만 13차례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았다. 경산중앙병원 선별진료소를 포함해 14회 검사에서 13회 음성, 마지막 검사에서 영남대병원 측은 양성이라고 했다가 중앙방역대책본부 조사 끝에 음성으로 최종 결정됐다. 그 사이 유엽 씨는 숨을 거뒀다. 3월 18일, 입원 치료 닷새 만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