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북극 한파’가 몰아친 날, 다행히 대구에는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았다. 부산에서부터 걸어 온 김진숙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는 무사히 대구를 지날 수 있었다. 1년여 전 대구 영남대의료원까지 걸어왔던 그는 이제 대구를 지나 청와대로 가는 길이다.
7일 오후 2시께 대구역 앞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도착했다. 부산 호포역에서부터 걷기 시작해 8일째 되는 날이다. 이날 오전 11시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에서 시작해 약 10km를 걸었다. 이날 한국게이츠 해고노동자들과 대구지역 노동단체, 진보정당 40여 명은 “김진숙 복직, 고용안정 없는 (한진중공업) 매각 반대”라고 적힌 자보를 걸고 김진숙 지도위원과 함께했다.
복직하지 못한 채 지난해 말 정년을 넘긴 김 지도위원은 여전히 푸른색 한진중공업 작업복을 입고 있다. 대구역 앞에서 만난 김진숙 지도위원은 “1년 만에 다시 보네요”하며 인사를 건넸다. 2019년 연말, 영남대의료원에서 원직 복직을 요구하며 고공농성 중이던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을 응원하기 위해 부산에서 대구까지 7일을 걸어왔던 그다. 지난해 박문진 지도위원은 투쟁 끝에 복직했고, 이제 김 지도위원의 복직만 남았다. 부산에서부터 김 지도위원과 함께 걸었던 박문진 지도위원은 지난 5일부터 청와대 앞 농성장에서 기다리고 있다.
김 지도위원은 행진 대오 맨 앞에서 걸었다. 걸음이 빨라 뒤따라 걷는 연대자는 경보 아닌 경보를 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1년 전 걸었던 길보다 올해가 더 힘들다고 했다. 재발한 암 때문이 아니다. 그는 “그때는 박문진을 응원하기 위해 힘내라고 온 거였는데, 지금은 노동자들의 현실이 더 힘들어진 거 같다. 중대재기업처벌법도 난항을 겪고, 유가족의 단식, 청와대 앞 노숙이 계속되고 있다. 문제가 해결되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누적되고 있다”며 “(1년 전) 그땐 차라리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라는 희망이 있었는데, 지금은 문재인 정권 말기를 향해가고 있어 시간도 없다. 더 암울한 느낌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오븐 장갑을 연상시킬 만큼 두꺼운 방한용 장갑을 끼고서도, 한여름에 쓰는 부채를 들었다. 부채에는 “한진중공업 고용안정 없는 매각 반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대로”라는 글귀가 적혔다. 정작 본인의 복직을 요구하는 내용은 없었다.
“이게 다 맞물려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문재인 대통령이 말 한대로 노동존중사회였다면, 제 문제도 자연히 해결됐을 거고, 청와대 앞에서 유가족들까지 단식을 안 했겠죠. 세월호 문제 해결을 걸고 집권한 정권에서 아직도 유가족들이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문재인 정권이 1년이 지난 것도 아니고, 1년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답답한 마음들이 드네요.”
김진숙 지도위원과 문재인 대통령은 한때 부산지역을 민주화 운동을 함께 했던 ‘동지’이기도 하다. 김 지도위원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시간이 없다”고 재촉했다.
“노동인권 변호사 직책을 달고, 세월호 해결을 약속하면서 대통령이 돼셨는데 시간이 없습니다. 서둘러 쌓여있는 적폐들을 해결하고, 그래서 역사에 길이 남는 대통령이 되시길 바랍니다. 실패하지 않는 정권이되길 바랍니다.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