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개봉한 <김씨표류기>의 누적 관객 수는 72만 4,987명이다. 그해 7월 21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로 손익분기점이 전국 200만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흥행에 실패했다. 사실 관객 수 50만 명을 넘으면 관객으로부터 외면 받은 것은 아니다. 제작비가 50억 원이나 들었기 때문에 흥행에 참패한 것이다. 제작비를 줄였다면 큰 성공을 거뒀을 것이다.
마케팅도 흥행 실패의 원인으로 꼽힌다. <캐스트 어웨이(2000년)>를 흉내낸 것처럼 만든 포스터와 코미디 색채를 잔뜩 풍기는 광고는 현대인의 외롭고 목적 없는 삶을 표류기로 묘사한 감성을 가려버렸다. 가벼운 코미디물로 홍보한 탓에 <지구를 지켜라!(2003년)>, <구타유발자들(2006년)>과 함께 마케팅이 망친 대표적인 수작 영화로 남게 됐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극찬을 받는다. 영화 관련 유명 해외 사이트에서는 최고의 한국 영화에 <김씨표류기>가 빠지지 않는다. 특히 외국 대학 강의 커리큘럼에도 들어갔고, 영화에서 영감을 얻은 현대무용 안무도 만들어졌다. 뒤늦은 해외 호평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영화는 재평가 받고 있다. 시대를 앞서간 측면도 있다. 영화 개봉 당시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져 있었지만 당시 한국 영화계에서는 코미디물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 정도로 대세였다.
영화는 서울 한강 마포대교 난간에 매달린 남성 김성근(정재영)을 비추며 시작된다. 실직한 뒤 여자친구에게 차인 그는 2억 원의 빚 독촉에 시달린다. 대출금을 갚아야 한다는 독촉 전화를 받은 뒤 삶을 포기하고 투신한다. 그러나 그가 눈을 뜬 곳은 다름 아닌 ‘한강의 무인도’ 밤섬이다. 핸드폰은 무용지물이고, 음식도, 옷도, 사람도 없다. 구조 요청을 몇 차례 시도해보지만 그마저 실패로 돌아가자 밤섬에서 표류 생활에 적응해간다.
밤섬은 서울 한복판에 있지만 ‘단절된 공간’이다. 맞은편에 63빌딩을 비롯한 도심의 고층 빌딩이 늘어서 있지만, 사회와 분리되어 있다. 김씨는 밤섬에서 지내는 삶에 만족한다. 카드사의 독촉 전화도, 지난 인연에 대한 아픔도, 밟고 밟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도 없어서다. 그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평온함을 느끼며 잠이 든다.
여성 김정연(정려원)은 방 안에 스스로를 가뒀다. 남성 김 씨에게 없는 모든 것이 제공되지만 좁고 어두운 방의 문을 열지 않는다. 여성 김 씨는 3년째 방 안에 쌓인 쓰레기와 함께 통조림 옥수수 캔으로 끼니를 때우며 생활한다. 주된 일과는 SNS에서 미니홈피를 운영하는 일이다.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길이지만, 진정한 의미의 소통은 아니다. 그는 SNS에서 자신의 본 모습은 감춘 채 예쁜 외모와 명품으로 치장한 남들의 사진으로 자신을 가린다. 여성 김 씨가 은둔형 외톨이 된 이유는 얼굴의 상처로 학창 시절 따돌림을 당한 탓이다.
여성 김 씨는 유일한 취미로 ‘달’ 사진을 찍다가 밤섬에 체류 중인 남성 김 씨를 발견한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남성 김 씨에게 관심을 갖게 된 여성 김 씨는 쪽지를 넣은 와인병을 통해 그에게 인사를 건넨다. 서로 소통하는 데 3개월이 넘게 걸린다. 그 메시지 안에는 구체적인 무엇도 담기지 않지만, 두 김 씨는 서로를 세상 밖으로 다시 끌어낸다. 둘은 모두 사회의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밀려난 ‘실패한 사람’이다.
영화는 현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이 왜 사회로부터 떠밀려 표류하게 될 수밖에 없는지를 두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꼬집는다. 그리고 이들이 길을 잃은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은 어디로부터 비롯된 것인지를 묻는다. 영화의 주제는 ‘희망’이다. 영화는 ‘희망 소비자 가격’에서 ‘희망’을 강조한 장면을 통해 주제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또 사회에 있었으면 관심 없었을 짜파게티 스프에 남성 김 씨가 삶의 희망을 얻으며 원동력으로 삼는 과정을 그린다. 남성 김 씨는 짜장면이 먹고 싶다는 일념으로 밤섬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한다. 그에게 짜장면은 삶의 의지를 갖게 해주는 일종의 기폭제다. 짜장면을 먹기 위한 그의 사투를 지켜본 여성 김 씨는 밤섬으로 짜장면을 배달시켜주지만 남성 김 씨는 이를 거부한다.
짜장면은 단순히 음식이 아니라 ‘살아갈 희망’이기 때문이다. 남 성 김씨의 의도를 깨달은 여성 김 씨는 3년 만에 어머니를 대면해 옥수수 씨앗을 부탁해서 자기 방에 옥수수를 기른다. 결국 남성 김 씨의 노력은 결실을 맺어 짜장면을 만드는데 성공한다. 눈물 흘리면서 먹는 남성 김 씨의 모습을 여성 김 씨 또한 애틋한 미소로 그 모습을 바라본다.
영화는 무거운 주제를 유쾌하게 묘사하지만 결말은 현실적으로 그려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세상 밖으로 나온 두 김 씨가 앞으로 세상을 어떻게 견뎌 나갈지 영화는 보여주지 않은 채 끝을 맺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두 김 씨가 어떻게 살아갈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을 숨도록 했던 세상이 지속할 것이라는 사실은 안다. 현실의 문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중대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