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감염병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휘몰아치고 있다. 신종 감염병은 전 세계에 걸쳐 수많은 사상자를 냈고, 내고 있다. 동시에 우리가 애써 외면해온 사회의 아픔도 그대로 드러냈다. 대한민국, 그중에서도 1차 대유행이 할퀴고 지나간 대구는 극심한 감염병으로 직접적인 피해만큼 사회과 품은 또 다른 아픔도 명징하게 드러냈다. <뉴스민>은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기획을 통해 이주민과 난민, 학생과 교사, 특수고용노동자들을 통해 감염병이 드러낸 우리 사회의 아픔을 짚고, 감염병에 대응하는 공공의료체계의 현실도 짚어보고자 한다.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1) 라울은 왜 인도로 돌아갔을까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2) 우디트는 ‘성실 근로자’로 재입국할 수 있을까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3) 훌란은 3월에 넷째를 낳았고, 열흘 만에 참외를 땄다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4) 감염병의 시대, 이주민을 위한 국가는 없다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이주노동자는 어떻게 살아남았나(합본)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5) ‘특수근로형태근로종사자’로 살아남기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6) 이름만큼 어려운 ‘특고 지원금’ 받기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7) 나만 없는 고용보험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특수근로형태근로종사자, 지원금 그리고 고용보험(합본)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8) 무너지는 신화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9) K방역 밖에 선 사람들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10) 방역마저 자급자족해야 하는 사람들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11) K방역도 메우지 못하는 공백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12) K방역은 ‘성공’했다지만, 같은 문제는 반복된다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성공한’ K방역, 그 밖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합본)
“기자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같이 안타까워해 주시고, 걱정해주셔서 저희 엄마 편안히 잘 모시고 좋은 곳으로 보내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수고하세요”
3월 30일, 배한슬(가명) 씨는 감사한 마음을 담아 문자메시지를 썼다. 기자는 2월 21일 처음 만났다. 그사이 드문드문 연락을 주고받았다. 3월 20일에는 같은 처지에 있는 이관수(가명) 씨와 함께 만나 이야기도 나눴다. 그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엄마가 떠났다.
엄마는 짧지 않은 시간을 투병했다. 담낭암이었다. 엄마는 가족 친지의 애도도 받지 못한 채 외롭고 쓸쓸하게 마지막을 맞았다. 그를 포함한 3남매는 부고를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 “엄마한텐 가는 길 너무 죄송하지만, 우리끼리 조용히, 아무한테도 피해주지 말고, 부담주지 말자고 그렇게 이야길 했어요” 20일 기자를 만나서도 그는 그렇게 말했다. 엄마는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대구의료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숨을 거뒀다.
무너지는 신화
2월 18일 오전 10시를 조금 넘긴 시각, 대구 시청 2층 상황실은 취재진으로 북적였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노란색 민방위복을 입고 상황실로 들어섰다.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에 따른 상황 첫 브리핑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대구에서 첫 코로나19 확진환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슬 씨는 자신과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길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엄마는 병증이 깊어 치유를 희망할 단계는 아니었다. 한슬 씨는 단지 조금 덜 고통스럽게 엄마가 마지막을 맞길 바랐다.
한슬 씨의 바람은 대구에서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대구 첫 확진자는 2월 17일 밤 11시에 1차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 무렵까진 두 차례 진단검사에서 모두 양성이 확인되어야 코로나19 감염이 확정됐다. 대구에서 1차 판정을 받으면 질병관리본부(질병관리청)로 검체를 올려 다시 검사하고 2차 판정을 받는 식이다. 전국 31번째 확진자는 18일 새벽 5시에 최종 양성 확정 판정을 받았다.
무너진 것은 한슬 씨의 바람만은 아니었다. 대구 보건의료체계가 함께 흔들렸다. 2월 18일과 19일 이틀 사이 대구 의료체계는 ‘경악스러운’ 상황에 직면했다. 경북대병원, 대구동산병원, 영남대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 4곳이 이틀 사이 응급실을 걸어 잠갔다.
정호영 전 경북대병원장은 “대구시 재난안전대책본부는 칠곡경북대병원을 제외한 대구의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이 모조리 폐쇄된 것에 대해 경악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환자 발생 이틀 만에 인구 250만 대구시의 상급종합병원들이 말 그대로 우왕좌왕, 좌충우돌이었다”고도 덧붙였다.1
2월 18일, 마치 기다렸다는 듯 코로나19 의심환자들이 병원을 ‘급습’했다. 청도대남병원에 있던 67세 환자는 선별진료소도 거치지 않고 경북대병원 응급실로 들어섰다. 그날 밤 그는 양성 판정을 받았고, 밤 11시 15분부터 경북대병원 응급실이 폐쇄됐다. 의료진, 원무 직원 등 88명이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대구동산병원은 17일 밤 수성구 시지에서 온 37세 여성이 응급실에서 폐렴 증상을 보여서 검체 검사를 의뢰했고, 응급실을 폐쇄했다. 영남대병원 권역응급센터도 같은 날 의심환자가 들어와 폐쇄했다가 19일 음성 판정이 나오면서 다시 개방했다. 하지만 오후에 또 다른 환자가 양성 판정을 받으면서 다시 폐쇄했다. 대구가톨릭대병원도 같은 이유로 응급실을 닫았다. 18, 19일 이틀 사이 벌어진 일이다. 네 곳 모두 선별진료소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이 시기 선별진료소는 서류에서만 의미를 가졌다. 2월 13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중앙사고수습본부-401(2020.2.7.)호와 관련한 선별진료소 운영 현황을 붙임과 같이 제출합니다”고 대구시는 보건복지부에 보고했다. 붙임 문서에는 보건소 8곳, 대구의료원, 종합병원 6곳이 선별진료소를 운영하는 것으로 표기됐다.
하지만 김진경 보건의료노조 영남대병원지부장은 “2월 18일 이전에는 선별진료소가 있어도 유명무실했다. 환자들이 그냥 들어왔다”고 전한다. 선별진료소를 거치지 않고 환자들이 병원을 드나들었고, 병원에서도 엄격하게 관리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 결과가 18, 19일 응급실 폐쇄로 드러났다.
대시민 호소문 도중 한숨 몰아쉰 시장
떨리는 목소리로, “대구 역량으론 한계”
상황은 심상치 않게 흘렀다. 19일 오전 권영진 시장은 다시 브리핑에 나섰다. 아니, 대시민 호소에 나섰다. 오전 10시 10분, 홀로 브리핑장에 들어선 권영진 시장은 단상에 자리한 후 문밖을 보며 “어서 들어오십시오”라며 손짓했다. 손짓과 함께 대구종합병원장들이 우르르 브리핑장으로 들어와 시장 뒤에 도열했다.
“오늘 방금, 우리 대구광역시에 있는 병원장님들과 의료기관장들이 함께 상황을 고려하고 대책회의를 하면서 오늘 발표하는 부분을 대구 시민들에게 드리는 말씀의 형태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역 의료계와 대구시, 모든 지역사회 역량을 모아서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겠다는 그런 결의를 담기 위해서 오늘 각 병원장님들, 의료기관장님들 함께 하셨습니다.”
추가 확진자 10명이 공개됐다. “후.” 호소 도중 시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확진자가 발생한 기초지자체를 하나하나 언급한 직후였다. 8개 구·군 중 4곳에서 확진자가 확인됐다. 잠시 말을 멈춘 시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가늠하기 어려운 중압감이 엿보였다.
10명 중 7명은 대구 첫 확진자와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다. 시장은 그들처럼 대구 첫 확진자와 같은 종교를 갖고, 같은 교회에서 예배를 본 인원이 파악된 것만 1,000여 명이라고 했다. 브리핑장이 술렁였다. 시장은 대구시 역량만으론 현 상황을 대처하기 힘들다고도 덧붙였다.
“중앙정부에 호소합니다. 대구시 사례에서 보듯이 코로나19가 이미 지역사회에 깊숙이 퍼져있습니다. 대구시 자체 역량으로 극복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중앙정부 차원의 특별대책단 파견, 필요한 역학조사 및 의료 관련 인력 지원, 음압병실 확보,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행·재정적 지원을 요청합니다.” 확진자 발생 이틀 만에 사실상 대구시의 방역·보건·의료체계가 손을 든 셈이다.
불과 보름 전에 황계자 대구시 사회재난과장은 “음압병실은 총 10개 병원, 76개 병상이 있다. 국가지정 입원 치료 병상은 대구의료원과 경북대병원에 30병상 있고 그외 감염병거점병원, 격리병상 보유병원에 46개 병상이 있다”2고 방송 인터뷰에서 호언했지만, 이틀짜리 준비에 그쳤다.
곧 병상 부족 상황에 직면했다. 원칙적으로 감염병 환자는 시설이 준비된 음압병실에 입원해야 했다. 하지만 준비된 시설은 코로나19 전파력을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권영진 시장은 20일 “이런 상황에서 확진환자를 음압병실 격리 치료 방식으로는 대구뿐 아니라 전국 보건 체계를 동원해도 어렵다”고 단언했다.
시장은 “중증은 음압에서 격리 치료하고 경증은 음압이 아닌 곳에서도 1인 1실 정도면 충분히 격리 치료가 가능한 그런 단계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입원체계 변화도 주장했다. 시장의 주장은 즉각 받아들여졌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21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응 의료기관 병상 배정 계획’을 통해 음압병실이 없으면 일반병실에도 입원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한다.
그리고 한슬 씨에게 시련이 닥쳐온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