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일적 임금체불 경험이 있다. 그리 넉넉치 않았던 환경 속에서 부모님께 용돈 받기가 죄송스러워 아르바이트를 한 것인데 오히려 사회의 쓴맛을 체험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당시를 떠올려 보면 체불임금을 받기 위해 무엇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에 대한 무력함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청소년 입장에서 이런 무력함은 어쩌면 당연하였을지 모른다. 당시에도 틀림없이 ‘잘 모르는’ 청소년인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제도나 법이 존재했을 테지만, 나는 그러한 제도와 법을 몰랐고 업주는 그 법을 알고 있으면서 나를 속였다. 이렇듯 법률적 지식은 연령, 학력, 경험 등 다양한 요소로 인해 격차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나는 법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체계적으로 만들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법이 잘 만들어져 있는 것과 법이 잘 시행되는 것, 국민들이 법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는 또 다른 이야기이다. 법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정작 약자는 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약자들이 법을 몰라서 피해를 받는 일은 적지 않다. 다시 말해서 법률에 대한 이해의 불균형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일례로 나의 유년 시절을 빗대었지만 비슷한 상황은 지금도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모든 법의 근간이자 대한민국의 기둥이 되는 헌법은 놀랍게도 우리 생활 대부분을 포함하고 있었다. 바로 헌법을 알아야 하는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헌법은 모든 법률의 모태이면서 가이드라인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대구 한 지자체 기초의원임에도 그동안 헌법에 관심이 없었다. 굳이 변명하자면 누구도 나에게 헌법을 가르쳐주지 않았고 알아야 할 필요성을 역설해준 적도 없었다. 그러나 최근 우연찮은 계기로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 당원들이 함께 헌법을 공부한다는 소식을 듣고 동참하게 되었다. 기초의원인 나에게 헌법은 멀다고 느껴지면서 동시에 가까운 존재였다. 조례를 제정하는 기초의회에서 최고상위법인 헌법은 꽤나 괴리가 크지만 모든 법률의 모태가 되는 헌법을 모르고 조례를 말한다는 것이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헌법을 모르는 선출직 공직자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고 때로는 이런 현실이 어이없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한 예로 최근 대구광역시 북구의회에서는 국민의힘 소속 구의원들의 반대로 ‘공동주택 경비 노동자 인권 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안’이 부결됐다. 반대의 주된 요지는 인권 보호는 국가 사무이므로 위헌적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헌법은 제10조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보장할 의무를 가진다”는 조항이다. 주어가 국가이므로 지자체는 관여할 의무가 없다는 해석인 셈이다. 그러나 헌법적 가치는 국민이 보장받을 가장 기초적인 권리를 나열한 것이므로 국가 사무, 지방 사무를 분리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같은 이유에서라면 교육, 복지, 재해 예방과 보건 등의 모든 업무가 국가 사무인 셈이므로 지자체가 나설 이유가 없어진다. 헌법이 말하는 인권보장은 국가가 지키고 나아가야 할 최소한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므로 이를 침해하지 않는다면 지자체 조례로 보호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북구의회의 이러한 판단으로 지역의 경비 노동자 인권증진의 길은 더욱 멀어지게 되었다.
국민을 위해 일하는 지방정치인들부터 우리 생활의 기본이자 근간이 되는 헌법을 잘 이해하면 할수록 국민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장려하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다. 혹자는 위정자들이 헌법이 말하는 만큼만 노력해도 사회는 눈부시게 달라질 것이라고 한다. 헌법이 말하는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우선되기 위해서라도 헌법적 가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요즘과 같이 코로나19로 인해 전 국민이 힘든 상황에서 정치의 책무는 더욱더 무겁고 막중하다. 이럴 때일수록 이념적 대립으로 헌법의 해석을 왜곡하거나 정쟁의 소재로 활용하는 것은 지방정치에서만큼은 반드시 사라져야 할 구태라고 생각한다. 헌법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 정치(政治)를 넘는 정치(正治)가 실현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