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조합원이 되면 다양한 혜택이 주어진다. 조합원이 되기 위해 내놓은 출자금은 다른 은행 이자보다 최소 1% 이상 높은 금리로 배당을 받을 수 있고, 연 1회 무료로 건강검진을 해주는 곳도 있다. 최소 연 3차례는 조합으로부터 선물을 받기도 한다. 설, 추석 명절과 조합 창립기념일 같은 날이다. 영농자재이용권이나 농협이 경영하는 마트 상품권이 주로 지급된다.
대출을 받으면 대출 금리도 조합원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공식적으로 다른 이용객과 동일한 금리를 적용받지만, 추후에 대출 잔고에 정해진 비율만큼 이용고 배당금을 받는다. 배당금으로 받는 만큼 금리 혜택을 보는 셈이다. 경작물에 따라 다르겠지만 조합원의 판로를 마련해주는 일도 농협이 하는 일 중 하나다.
농사를 짓는다면 농협 조합원 가입을 하는게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농협 입장에서도 조합원이 늘면 그만큼 거래 고객이 증가하는 것이어서 사업 확장에 도움이 된다. 서로에게 윈윈이다. 그런데 여기 신규 조합원 가입을 거절하는 대구의 한 농협이 있다. 농업협동조합법(이하 조합법)과 농협 정관상에는 몇 가지 특별한 사정 외에는 자격을 갖춘 이의 조합원 가입을 막을 수 없다.
그런데 대구의 한 농협은 “2,000만 원 이상 출자를 하고, 2,000만 원 이상 예금을 해야 한다”거나 “입출, 적금, 예금, 카드, 보험, 대출을 쓰시고, 하나로 마트도 이용해서 신용을 쌓아야 한다”고 한다. 심지어 “신용을 쌓아도 100% 가입이 된다고 보장할 수 없다”고 한다. 왜, 이곳은 신규 조합원 가입을 거절하는 것일까?
지난 3일 대구 한 농협의 지점 3곳을 찾아가 조합원 가입을 문의했다. 3곳은 공통적으로 지점에선 가입을 받지 않으니 본점으로 가보라고 했다. 3곳 중 2곳은 상담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문의한 기자에게 본점 담당자 전화번호를 적은 쪽지를 쥐어 되돌려 보냈다. 다른 1곳만 간단하게 가입 조건을 설명해줬는데, 그 설명이 법률 및 정관과 판이하게 달랐다.
“조합원 가입을 하려고 하는데요.”
“가입 상담을 본점에서 하거든요. 일단 대충 말씀드리면, 예금을 좀 하셔야 하구요. 2,000만 원 이상. 가입 승인이 떨어지면 출자금도 따로 2,000만 원 넣어야 해요. 낸다고 다 되는 건 아니고, 저희가 조합원이 1,000명이 넘어요. 기존에 있는 분들도 관리가 힘든데 신규로 안 받거든요. 그래서 이제 이사회에서 검토를 하거든요. 거기에서 안 될 수 있구요. 100% 된다고 말씀은 못 드리구요.“ _ 대구 A 농협 B 지점 조합원 업무 담당자
“다 가입이 되는 건 아닌가 봐요.”
“저희는 그래요. 조합원이 많아서. 1,000명이 넘으니까, 기존에 있는 분들도 탈퇴시키려고 노력하고 있거든요. 자격 안 되는 분들. 농사 안 짓는데 거짓말하는 분들 있잖아요. 매일 조사하거든요.” _ 대구 A 농협 B 지점 조합원 업무 담당자
“본점을 가봐야 하나요.”
“본점에서 상담을 해보시는 게 맞아요. 지점에선 상담하지 말라고 하거든요.” _ 대구 A 농협 B 지점 조합원 업무 담당자
농협법이 정하고 있는 조합원 가입 조건은 이 담당자가 말하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 법은 조합원 가입을 원하는 사람이 농업인인지 여부가 중요할 뿐 다른 기준은 명시하지 않는다. 농협법 시행령 제4조는 1,000제곱미터(303평) 이상 농지를 경영하거나 경작하는 자, 1년 중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하는 자 등 6가지를 조합원 가입 자격으로 정하고 있다.
제4조(지역농업협동조합의 조합원의 자격)
1항. 법 제19조 제1항에 따른 지역농업협동조합(이하 “지역농협”이라 한다)의 조합원의 자격요건인 농업인의 범위는 다음 각 호와 같다.
– 1호. 1천 제곱미터 이상의 농지를 경영하거나 경작하는 자
– 2호. 1년 중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하는 자
– 3호. 누에씨 0.5상자[2만립(粒) 기준상자]분 이상의 누에를 사육하는 자
– 4호. 별표 1에 따른 기준 이상의 가축을 사육하는 자와 그 밖에 「축산법」 제2조 제1호에 따른 가축으로서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 정하여 고시하는 기준 이상을 사육하는 자
– 5호. 농지에서 330제곱미터 이상의 시설을 설치하고 원예작물을 재배하는 자
– 6호. 660제곱미터 이상의 농지에서 채소·과수 또는 화훼를 재배하는 자
A 농협 B 지점 담당자 설명처럼 다른 조건을 들어 조합원 자격을 갖추고 있는 사람의 가입을 거절하거나 다른 조합원보다 불리한 가입 조건을 제시하는 건 사실 법률 위반이다. 농협법 28조 1항은 “지역농협은 정당한 사유 없이 조합원 자격을 갖추고 있는 자의 가입을 거절하거나 다른 조합원보다 불리한 가입 조건을 달 수 없다”고 명시한다. 조합원이 많아서 신규 가입을 받지 않는다는 설명도 농협법 28조 4항 “지역농협은 조합원 수를 제한할 수 없다”고 규정한 것을 위반한 것이다.
본점은 좀 다를까? 같은 날 본점을 직접 찾아가 조합원 가입 문의를 했다. 본점은 지점보다 더 혹독한 조건을 내걸고 가입 가능성이 낮다고 설명했다.
“지금 (농협과) 거래가 없으시면 통과가 안 되요.” _ A 농협 본점 조합원 업무 담당자
“지금부터 거래를 하면 안되나요?”
“거래를 늘리고 다시 신청을 하셔야 하거든요. 신청을 한다고 무조건 가입되는 건 아니고 이사회가 있어요. 조합원이 모여서 만든 이사회가 있는데, 거길 통과해야 하는데, 저희 같은 경우는 조합원 수가 많거든요. 많은 편이어서 까다롭게 심사를 하거든요. 신용 거래, 각종 거래가 많으셔야 될 가능성이 높아요.” _ A 농협 본점 조합원 업무 담당자
“농협 거래 통장을 터서 얼마나 신용을 쌓아야 하는데요?”
“골고루 다하셔야 하는데요. 입출, 적금, 예금, 그다음에 카드, 보험이면 보험, 대출 쓰시는 거 있으면 대출까지. 하나로 마트도 있는데, 마트도 이용해주시면 좋고.” _ A 농협 본점 조합원 업무 담당자
“전반적으로 다 해야 하네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거래를 늘려서 신청을 하더라도 100% 된다는 보장이 없거든요.” _ A 농협 본점 조합원 업무 담당자
보통예금 거래를 하고, 적금도 들고, 농협 카드를 쓰고, 보험에, 대출까지 해도 “100% 된다는 보장이 없다”고 했다. B 지점 담당자나 본점 담당자는 문의한 기자가 실제로 농사를 짓는지 여부는 별로 궁금해하지 않고 까다로운 조건만 나열했다. 만약을 대비해 거짓 농업인 프로필을 만들어 준비한 것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본점 담당자의 설명 역시 농협법에 위배되는 설명이다.
해당 농협의 정관에도 이처럼 까다로운 조건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해당 농협 정관을 보면 ‘조합 구역에 주소, 거소나 사업장이 있는 자로서 농업협동조합법 19조 4항에 따른 농업인의 범위에 해당하는 자’를 조합원 자격 조건으로 정해뒀다. 법 19조 4항에 따른 범위가 바로 앞서 설명한 시행령 기준이다. 정당한 사유 없이 조합원 자격을 갖추고 있는 자의 가입을 거절하거나 다른 조합원보다 불리한 가입 조건을 달 수 없다는 법 조항도 그대로 정관에 포함돼 있다. 정관상으론 출자금도 최소 50만 원, 최대 5,000만 원을 초과할 수 없다.
지역 농협을 관할하는 농협중앙회 대구지역본부 관계자는 출자금 2,000만 원 기준이나 적금, 대출, 카드 등을 써야 한다는 기타 조건을 조합원 가입 자격으로 제시하는 것에 대해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런 조건은 없다”며 “농협법이나 시행령, 정관과 달리해서 조합원 가입 여부를 승낙하면 안 된다. 항상 저희도 지도한다”고 설명했다.
“조합원이 많을수록 농협이 불편한 게 있나요?”
“다른 건 아니고 많으면 배당이 적게 되죠.” _ 농협중앙회 대구지역본부 관계자
“조합원 개인에게 이득이 줄 순 있는데, 농협 차원에선 출자금도 늘고 거래하는 사람도 늘면 좋은 거 아닌가요?”
“예. 맞아요. 고객이 한 명이라도 늘면 사업 활성화에 도움은 되죠.” _ 농협중앙회 대구지역본부 관계자
대구 A 농협은 무엇 때문에 새로운 조합원을 받는 걸 꺼리는 걸까? (계속)
영상편집 : 김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