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계장을 개조한 유기견 보호소는 한낮에도 볕이 들지 않는다. 시멘트와 부직포를 두른 외벽. 안쪽은 샌드위치 패널로 구분돼 있다. 이 보호소에 있는 반려동물은 50여 마리. 문 하나를 열자 40여 개 동그란 눈이 집중된다. 백색 형광등 아래로 “꺼내 달라”는 듯한 울음소리가 가득 울린다.한 마리씩 분리된 우리마다 하얀 이름표가 달려 있다. 이름 칸은 모두 공백. 우리 창살 밑으로 분변 처리를 위한 신문지가 깔려있다. 옆으로 사료, 사료용기, 청소 도구, 싱크대가 한데 모여 있다. 이름 없는 고양이 A는 머지않아 주사를 맞을 것이다. “조용한” 고양이 A보다 급한 것은 강아지 B다. “너무 짖는” 강아지는 법정 의무보호기간 10일이 지나면 어김없이 주사를 맞는다.
한 해 버림받아 대구시 위탁 유기동물 보호소에 들어가는 반려동물만 3천4백여 마리. 이들, 그리고 3천4백여 마리에 포함되지 않고 길거리에서 배회하거나 사설 보호소에 들어가는 수많은 유기동물은 어떻게 될까? 우리 속에서 울던 고양이 A는 지금 어디로 갔을까? <뉴스민>은 1월 대구시 유기동물 보호소 세 곳을 찾아 반려동물의 ‘버려진 후’를 취재했다. 한 곳은 대구시가 위탁 운영하는 ㄱ 보호소, 다른 한 곳은 개인이 운영하는 ㄴ 보호소, 마지막은 재단이 운영하는 ㄷ 보호소다.
시 위탁 보호소 위생·환경 열악
관리자 한 명이 약 50마리 감당
ㄱ 보호소 한 해 안락사 27.6%
병사는 36.1% ‘추정’···사망 63.8%
시·구청에 신고하면 49%는 사망
보호소 관리자도 우울증 호소
동·북·달서구의 유기동물을 ‘구조·보호’하는 ㄱ보호소. ㄱ보호소는 대구시 위탁을 받아 운영한다. 보호소 바로 인근에 타이어 공장, 고물상, 기차역이 있지만, 대부분 농지라 인적은 뜸하다. 동·북·달서 세 구청에 유기동물 신고가 들어오면 모두 ㄱ보호소로 옮겨진다.
ㄱ 보호소 운영시간은 주중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토·일요일은 운영하지 않는다. 관리자는 문 모(56)씨 1명. 문 씨가 자리를 비우면 보호소는 방치된다. 문 씨가 아르바이트를 구하지 않는 이상. 이곳은 “일이 더 많아지기 때문”에 자원봉사자도 받지 않는다.
ㄱ 보호소는 관할 구역에서 신고가 접수되면 보호대상 동물에 한해서 ‘구조’한다. 우선 들어온 유기동물에 내장된 칩을 확인해 소유자에게 연락을 시도한다. 하지만 등록된 동물이 들어오는 경우는 드물다. 구조일자와 간략한 특이사항 등을 적고, 유기동물은 우리 속에 들어간다. 유기동물은 보호기간 10일 동안 목욕이나 미용도 받지 않는다. 보호기간에 소유자가 나타나거나 입양되지 않으면 이들은 안락사 된다.
“저도 안락사 되는 걸 보다 보니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나이 많아서 버려진 애들이 많이 들어옵니다. 그런 경우 연락처를 알더라도 전화도 안 받고, 안락사시킨다고 해도 연락이 없어요. 어떨 때는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어요. 머리로는 다 키워주고 싶은데 그건 안 되죠. 한 마리당 10만 원을 구청에서 받는데 어떻게 키워요. 어차피 안락사는 시켜야 해요. 주변 인식도 안 좋아서 민원도 많고. 누가 환영하겠어요”(문 씨)
대구시에 따르면 ㄱ 보호소에는 2015년 유기동물 1,542마리가 들어왔다. 이 중 반환은 197마리(12.7%), 입양은 303마리(19.6%), 자연사 558마리(36.1%), 안락사 426마리(27.6%), 보호 52마리(0.03%)다. 대구시는 유기동물이 질병으로 사망하는 경우에도 ‘자연사’로 처리한다. ‘보호기간’이 10일로 짧은 것을 고려하면 ‘자연사’ 대부분은 질병사로 추정된다. 이때 36.1%를 ‘병사’라고 볼 수 있다. 즉, ㄱ 보호소에 들어가는 유기동물 중 63.8%(병사+안락사)가 사망하는 셈이다.
2015년 대구시가 파악한 유기동물은 3,440마리다. 이중 반환은 492마리(14.3%), 입양은 1,060마리(29.8%), 자연사 1,026마리(29.8%), 안락사 675마리(19.6%), 보호 181마리(0.05%), 기증 5마리, 방사 1마리로 나타났다. 시민이 유기동물을 목격하고 시·구청에 신고하면 49%는 죽는다.
이혜화 대구시 농산유통과 주무관은 “ㄱ 보호소는 동·북·달서구를 동시에 한곳에 모으기 때문에 보호 두수가 많을 수 있다”면서도 “사업 단체가 요건을 갖춰서 신청하면 선정하는 방식이라 개별 시설 지원은 어렵다. 협소한 시설 등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불법’ 딱지 붙는 민간 보호소
유기동물 처우는 시 위탁 보호소보다 나아
민원으로 시 외곽으로 밀려나
사비 털어 보호소 운영
자원봉사자 발길 이어지지만
재정 형편은 항상 열악
고양이 A가 만약 구청에 신고 되지 않고 사설 ㄴ 보호소로 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팔공산 자락에 있는 ㄴ 보호소는 유기동물을 거둬들인 지 올해로 17년째다. 1월 현재 개 200여 마리, 고양이 20여 마리가 있다. ㄴ 보호소의 고양이는 모두 실내에 있고, 개는 특별히 관리가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모두 너른 울타리 안에 방사한다.
9일 ㄴ 보호소 문을 열고 들어서자 개 50여 마리가 달려 나왔다. 나이 든 개는 볕 좋은 곳에서 귀만 펄럭였지만, 주위를 둘러싼 개들은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그중 몇몇은 검게 때가 탄 옷을 입고 있다. 이전 소유자가 입혀놓은 옷이다. 달려 나온 개 중에는 눈이 없거나, 코가 짓이겨졌거나 하는 과거 학대의 흔적이 보였다.
하지만 ㄱ보호소 유기동물보다 훨씬 건강해?보였다. 트인 공간에 방사해놓았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사람을 무는 개 2마리도 섞여 있었다. 눈을 피하고 앉으면 잠잠해졌고, 일어서면 다시 짖었다. 자원봉사자 남채연(20) 씨는 “아 걔는 남자가 오면 그래요”라고 한다. 남성에게 학대받았기 때문일까.
“무는 개가 있더라”는 말에 신상희(51) 씨도 씩 웃으며 손을 보인다. 손등부터 팔 안쪽까지 거뭇거뭇한 흉터가 있다. 물어뜯긴 상처다. “자기도 무서워서 그러는 거지요. 처음에는 저도 많이 물렸어요” 보호소 관리자인 신 씨는 ㄴ 보호소를 얼떨결에 시작했다. 17년 전 살던 주택에 유기동물을 데려오면서부터 시작해 지금의 이백여 마리에 이른 것이다.
보호 동물이 불어나자 주변 사람들이 불만을 쏟아냈고, 지금 있는 팔공산으로 옮겼다. 소문이 돌며 집 앞에 동물을 버리고 가는 사람들 덕에 보호 동물 수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특히, 한 공중파 방송에 출연하고 난 직후 보호소 앞에 동물 수십 마리가 유기됐다고 한다.
보호소 운영에 어려운 점은 역시 자금 부족이다. 후원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사료비·치료비·중성화비·약품구입비 등을 모두 해결하려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지자체에서 지원받는 금액은 ‘0’원. 남편 월급을 끌어 쓸 때도, 아는 수의사에게 무료 치료를 부탁할 때도 있다.
신 씨는 동물 안락사를 반대한다. “부족해도 최대한 살릴 때까지는 살려서 제 명대로 사는 게 좋다”고. 실제로 보호소 동물은 모두 나이가 많았고, 10세 이상으로 보이는 개도 어림잡아 30마리쯤은 됐다.
또한, 신 씨는 200여 마리 동물 이름을 모두 알고 있다. 보호소에 들어오면 새로 이름을 지어주기 때문이다. 인터뷰 내내 기자의 무릎에 앉아있던 개 이름은 ‘깜지’. 새끼?강아지일 때 보호소에 들어와 13년을 살았다. 신 씨는 깜지처럼 보호소에서 무리 지어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반려동물을 보호소 옆에 묻고 그 위에 탱자나무를 심는다.
“주변에서 시 위탁을 받으라는 제안도 하는데, 그러면 안락사를 시킬 수밖에 없어요. 그건 싫어요. 마리당 10만 원 받고 가둬놓다가 안락사시키는 게 개장사랑 뭐가 다른가요···남은 애들도 명대로 살아야하는데, 어린 애들은 15년은 더 키워야 하니 걱정이죠. 나이 많고 안 예쁘면 입양도 안 돼요. 내 눈에는 다 예쁜데···제일 큰 문제는 번식장이에요. 생명으로 안 보고 돈벌이 상품으로 봐요. 무작정 사육하고 무작정 버리죠. 책임지는 사람이 따로 있어야 하나요. 번식장에 벌금을 많이 물린다든지, 유기하면 벌금을 물린다든지 법이 좀 바뀌어야 해요”
시 위탁받다 철회한 ㄷ보호소
감당 가능한 만큼을 최적의 상태로 돌봄
시설 앞 무단 유기 시달려 간판도 제거
“동물보호법부터 개정해야”
“보호소는 소형화·지역 분산해야”
“동물권의 수준이 그 사회 수준의 바로미터”
재단법인이 운영하는 대구시 달서구 ㄷ보호소. 과거 대구시 위탁을 받아 운영하다 2015년에 자진 철회했다. ㄱ보호소처럼 쏟아지는 유기동물을 모두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대신 위탁 철회 후 ㄷ보호소는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동물만 받아 돌본다. 동물 유기를 막기 위해 간판 등 알아볼법한 표식을 없앴다. 그래도 가끔 아침에 일어나면 보호소 앞에 유기동물이 담긴 상자가 있다.
최정아(41) 이사의 안내를 받아 7일 ㄷ보호소를 찾을 수 있었다. ㄷ보호소는 개와 고양이 각각 약 30마리를 다른 건물에 나눠 보호한다. 보호소 내부에도 연령대·건강상태·개체 특성별로 공간을 나눴고, 각 공간을 드나들 때마다 실내화도 갈아 신을 정도로 청결에 주의한다. ㄴ보호소와 대조되는 부분인데, 최 이사는 ㄱ보호소는 물론 ㄴ보호소 방식에도 비판적이다.
최 이사는 “약자가 보호받는 나라가 안전한 사회”라는 생각으로, 한국의 동물권이 더욱더 신장해야 한다고 본다. 그 과제로 ▲유기동물 보호소가 소규모 지역 분산형으로 바뀌어야 하고 ▲학대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유기·학대 동물의 소유권을 박탈 등을 할 수 있도록 동물보호법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호소가 계속 커지고 동물을 구조만 해서는 끝이 없어요. 학대를 막기 위해 법이 강화돼야합니다. 동물학대는 아동학대와 비슷해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입니다. 약자를 돌볼 줄 아는 사회가 안전한 사회입니다. 동물학대를 하는 사람은 결국 사람에 대해서도 폭력을 저질러요”
“또 큰 문제는 번식업자입니다. 시 통계를 보면 입양율이 높게 나오는데 비정상적인 수치예요. 대구 사례인데, 한 시민이 큰 개 2마리를 잃어버려서 보호소에 가보니 벌써 입양 갔대요. 의무보호기간도 안 지난 상황이라 동물사랑실천협회에 연락해서 조사해보니 개농장에 팔았던 거예요. 찾아보니 이미 암컷은 임신해 있고, 수컷은 잊어버렸다는데, 개고기로 팔았겠죠”
시 위탁 유기동물 보호소 방치는 문제
공통적 관리 매뉴얼 없어···
녹색당, “동물복지 기준 마련해야”
무분별한 포획 막고
학대자로부터 동물 격리할 수 있는 제도 필요
대구시에 동물권 전담 부서와 인력 확보되고
민관이 함께할 수 있는 거버넌스 구축해야
현행 동물보호법을 보면 유기·피학대 동물 중 소유자를 알 수 없는 경우와, 유기·피학대 동물 중 소유자로부터 치료·보호받을 수 없다고 판단하는 동물에 대해 지방자치단체가 보호조치를 해야 한다. 그리고 지자체 보호를 위해 “동물보호센터를 설치·운영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유기동물 보호 주체는 지자체인 셈이다. 그 외 국민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동물보호법은 “모든 국민은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시책에 적극 협조하는 등 동물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만 나와 있다. 결국 소유권이 타인에게 있는 유기동물을 개인이 보호하면 ‘불법’이다.
이혜화 대구시 농산유통과 주무관은?“대구시가 유기동물 보호 시설을 만들고 지원하는 게 아니라 적합한 조건을 갖춘 단체를 선정하고 위탁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그래서 개별 시설에 대한 지원은 어렵고, 운영에서 불거지는 문제는 스스로 개선해야 한다”며 “시에서 보호센터를 직영 운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검토를 해도 혐오시설이다 보니 부지 확보가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개인이 유기동물을 보호하고 입양하는 것은 불법이다. 지자체가 처리하도록 법에 명시돼 있다. 실질적으로도 대구시가 총괄적으로 통합시스템을 통해 관리해야하는데 통합적 관리가 어렵게 된다. 개인이 운영하는 단체 지원도 그래서 어렵다”고 덧붙였다.
동물권 실현이 주요 당론 중 하나인 녹색당은 “유기동물 보호에 대구시가 형식적 수준에만 머물러 있다”며 현행 법 개선과 함께 제도적 뒷받침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녹색당 대구시당은 제도 개선과 더불어 유기동물 처우에 관한 구조적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유기동물의 열악한 현실에 ▷동물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 ▷생명을 상품화해 과다 양산·유통하는 체계 구축 ▷반려동물 유기나 학대에 대해 너그러운 법·제도로 인한 문제 심화 ▷유기동물 대량 발생 ▷유기동물 처우 악화로 이어지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녹색당 대구시당은 ▲동물 보호 환경과 관리에 대한 공통적인 매뉴얼이 없고 ▲유기동물 보호소에 대한 관리감독 제도가 미비하며 ▲동물보호를 전담하는 부서가 없고 관련 인력이 부족하며 ▲동물 보호를 위한 별도의 거버넌스가 없다고 지적했다.
변홍철 녹색당 대구시당 공동운영위원장은 “동물 복지 실현을 위해 보호·사육 환경을 관리할 수 있는 공통적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시위탁 보호소의 무분별한 포획·중성화 사업을 통제하기 위해 명예감시관 제도를 도입·동물보호단체와 협조해서 예산을 배정하고 집행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동물학대자로부터 동물을 격리·보호할 수 있는 법 마련도 중요하다. 외국의 사례처럼 학대자에 대해 법원이 상담 치료나 사회봉사 명령 등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상습전과가 있는 경우 동물 사육을 금지할 수 있도록 법을 강화해야 한다”며 “또한 적극적 가해행위 뿐만 아니라 굶기거나 위생상태가 불량한 상태를 유지하는 등 환경적 학대와 동물 유기에 대해서도 처벌할 수 있도록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구시에 대한 정책 제안으로 변홍철 공동운영위원장은 “서울시 사례처럼 동물권을 전담하는 부서와 인력이 확보돼야 한다. 형식적 운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돌봄과 입양에 힘쓸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경기도의 ‘동물보호 감시원 제도’처럼 민관이 함께 할 수 있는 거버넌스 구축도 필요하다. 녹색당이 이번 총선에서 원내에 진출하고 관련법과 제도를 도입하는데 힘 쓰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