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영웅 보단 처절한 전투의 생존자로 ‘아웃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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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북동부 누리스탄주(州) 캄데시 지역은 험준한 산악지대다. 힌두쿠시 산맥의 남사면을 타고 흘러 협로와 협곡이 많다. 11년 전인 2009년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미군의 키팅 전초기지가 있었다. 전쟁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충지가 둥지를 튼 곳은 사방에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다. 방어에 취약한 이 전초기지는 2009년 10월 3일 소총과 로켓유탄발사기(RPG) 등으로 무장한 탈레반의 기습공격을 받았다. 6시간 동안 전투 끝에 미군은 8명이 사망하고 25명 이상 부상을 당했다. 2001년 10월 개전 이래 단일 전투에서 이 정도로 많은 미군 사상자가 난 일은 없었다고 한다.

처절한 패배를 겪은 미군은 엿새 후인 10월 9일 키팅 전초기지에서 전면 철수했다. 미군의 최첨단 무기가 탈레반의 ‘재래식 전술’ 앞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지리적 악조건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의 미군 전초기지는 2001년 9.11 테러 직후 시작된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간 전쟁으로 인해 설치됐다. 미군은 파키스탄과 탈레반의 무기 거래를 막고 지역민들의 협조를 받기 위해 험준한 산악지대에 터를 마련한 것이다.

군사 강국에 오점을 남긴 미군은 진실을 왜곡하기에 이른다. 미군은 “철수 전에 남은 무기류를 남김없이 파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파루크 칸 누리스탄주 경찰국 대변인은 캐나다 일간 <토론토스타>와 한 인터뷰에서 “미군이 남겨놓고 간 각종 탄약과 무기가 탈레반의 수중에 들어간 것을 확인했다”고 반박했다.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현장 화면과 함께 보도한 기사에서 “빈 기지를 장악한 탈레반은 그곳에 남겨진 미군의 무기까지 손에 넣었다”고 전했다.

이듬해 탈레반의 미군 키팅 전초기지 습격사건의 전모가 밝혀졌다. 미 육군이 공개한 사건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간 주둔 미군의 허술한 명령 및 협조 체제 때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탈레반은 습격 당일 미군 키팅 전초기지 인근 주민들을 대피시킨 뒤 기지 인근 고지에서 골짜기 아래에 있는 전초기지를 포위한 채 로켓포와 총격을 퍼부었다. 탈레반의 급습에 기지에 주둔하던 박격포는 무용지물이 됐고 무방비 상태가 된 3개의 출입구를 통과해 기지로 들어온 탈레반은 막사를 불태우고 무기 창고를 차지했다.

미군의 반격으로 탈레반 측에서도 대략 100∼15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미군의 지원 병력은 탈레반이 공격을 시작한 지 13시간 만에 전진기지에 도착했다. 교전을 벌이던 탈레반 잔당은 모두 달아난 뒤였다. 키팅 전초기지는 자체 정보 입수와 감시 활동은 물론 후방 지원 기능까지 마비된 상태에서 탈레반의 공세에 쑥대밭이 된 것이다.

처절한 패배로 기록된 캄데시 전투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전투 가운데 유명하다. CNN 앵커 제이크 태퍼가 ‘전초기지(The Outpost)’라는 제목으로 캄데시 전투를 책으로 펴냈고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밀레니엄 필름은 2017년 영화화 판권을 얻어냈고 각본가 폴 타마시와 에릭 존슨이 장장 3년을 들여 각본 작업을 했다.

<아웃포스트>는 처음부터 키팅 전초기지의 위태로운 상황을 보여준다. 가파른 산악지역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왜 전초기지를 세웠는지 의문이 든다. 탈레반은 종종 기지를 향해 박격포를 쏘고, 조준사격을 한다. 미군은 그런 습격을 받을 때 압도적인 화력으로 적을 쫓아내는데 그친다. 침상에 붙은 ‘나아지질 않는다’는 문구처럼 지옥 같은 하루가 반복된다. 병사들 입장에서는 기지가 마음에 들 리가 없다. 병사들은 키팅 전초기지를 ‘몰살기지’라고 비아냥댄다.

상부에서 내려오는 명령은 하나같이 이해할 수 없다. 지휘관의 대처도 불만이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대형 트럭을 좁은 협곡을 지나 전초기지로 옮겼더니, 다시 후방에서 쓸 일이 있다고 트럭을 가지고 돌아오라는 지시가 내려진다. 부대원 대신 직접 운전대를 잡았던 지휘관 벤 키팅(올랜도 블룸)은 영화 시작 40분 만에 차량이 추락해 사망한다.

캄데시 지역 주민들도 믿을 수 없다. 마을 장로들은 협조하는 대신 돈과 자원을 요구한다. 학교를 지어줄 것을 약속하며 평화를 이야기하는 지휘관 앞에서는 이름까지 지어주며 탈레반 잔당으로 추정되는 청년들의 손에 쥔 총을 놓게 하지만, 하루도 되지 않아 평화는 깨진다. 다음날 키팅 기지에는 총탄이 날아든다.

영화는 키팅 전초기지를 지휘하는 지휘관(대위)의 이름을 마치 하나의 작은 에피소드인 것처럼 자막 처리한다. 여러 단편 모음 같은 형태이지만 지휘관만 바뀔 뿐 임무를 수행하는 주요 병사는 변하지 않고 감정선도 이어진다. 본대로부터 명령을 받고 캄데시로 파견 온 지휘관은 사고로 죽거나 적에게 사살당한다. 급기야 세 번째 지휘관은 자신의 막사에서 꼼짝 않다가 떠나버린다. 지휘관이 바뀌면서 병사들은 혼란스럽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와 혼란, 기약 없는 철수 일정 등 모든 것은 병사들을 괴롭힌다. 지휘관 중 누구도 그들이 전쟁에서 지켜야 할 어떤 숭고한 임무가 무엇인지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현실적이다.

작전을 지시할 지휘관의 부재에도 병사들은 총탄과 포탄이 빗발치는 전장의 한가운데서 동료를 살리기 위해 나선다. 생생하게 구현된 전쟁터에서 죽고 죽이는 병사들의 모습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전쟁의 참상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 기록과 영화 내용은 차이가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13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영웅 타이 카터 육군 하사에게 명예훈장을 수여했다. 타이 카터 하사는 캄데시 전투의 생존자다. 그는 탈레반에게 포위 공격을 받을 때 다친 전우들을 구해내 응급처치를 해가면서 적과 싸웠다. 하지만 영화는 그를 영웅적으로 미화하지 않고 전쟁터에서 살아온 그의 내면의 상처에 집중한다.

영화에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은 타이 카터(케일럽 랜드리 존스)는 육군 상담사에게 자신이 구한 병사 메이스에 대해 “메이스는 친구가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메이스가 총에 맞아 쓰러져 있을 때 그에게 달려가 구한다. 타이 카터가 메이스를 구한 이유는 거창한 사명도, 훈장 욕심도 아니다. 그저 자신의 동료 전우이니까 구한 것이다. 전우애를 제외하곤 공통분모가 없다. 그런 그는 눈물을 흘리며 그때를 회고한다. 지금은 전역한 타이 카터 전 하사는 여전히 PTSD에 시달리면서도 다른 병사들의 회복을 돕고 있다고 한다.

영화는 전쟁의 참상을 전장에 놓인 군인들의 얼굴과 피 칠갑한 전투의 흔적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한다. 로드 루리 감독은 생생한 전투를 스크린으로 가져오기 위해 롱테이크 촬영과 보통 다큐멘터리에서 사용하는 오너스(무편집) 기법을 활용했다. 쉴 새 없는 공격과 방어가 이뤄지는 전장을 누비는 병사와 이를 뒤쫓는 카메라를 통해 몰입감이 더해진다. 정신없이 흔들리는 화면에 보는 이의 호흡도 가빠진다. 그리고 실제로 해당 작전을 수행했던 참전용사 세 명이 각각 본인 역으로 배역을 맡아 조언했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로드 루리 감독은 웨스트포인트를 나온 육군 베테랑 출신이라고 한다. 로드 루리 감독의 아버지는 세계적인 시사만화가 래넌 루리다. 감독이 군인 출신인 탓인지 영화는 꽤 건조하며, 직선적이고 투박하다. 그런데 실감 난다. 러닝 타임 123분 동안 전반부는 전장의 일상과 캐릭터 구축으로 진행되며, 후반부에는 급박한 전투신으로 이어진다. 이에 따라 전반부와 후반부의 카메라 워킹 자체가 다르다. 후반부 전투 신에서는 핸드헬드 기법을 통해 관객이 전장에서 함께 병사들과 전투를 치르는 듯하다. 영화는 참전군인들 사이에서는 꽤 호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