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경남 합천에서 우리나라 첫 원폭자료관이 개관했다. 당시 만난 심진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은 자료관을 만든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이야길 반복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나서 만난 심 지부장은 여전히 자료 보존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점을 강조했다. (관련기사=[국내 첫 원폭자료관 개관①] 자료관 개관이 남긴 숙제···‘만든 거로 끝 아니다’(‘17.8.6))
심 지부장은 기억연구회 그늘과 영남대 링크플러스 사업단이 진행한 자료관 자료 전산화 작업을 “역사를 남기는 것”이라고 평했다. 자료 보존에 관심이 많은 심 지부장은 “책자로 되어 있으니 사람이 만지면서 훼손이 된다. 원폭 피해자가 협회에 약 5천 명이 등록되어 있는데 실제 남은 자료는 2,900명 정도다. 그만큼 분실됐다는 의미”라고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면서 소실되는 자료가 많은 것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심 지부장은 “당초부터 사무실이라도 국가에서 지원을 해줬으면 자료가 보관됐을 수 있는데, 그렇지 못했다. 각 지부에서 지부장들이 자기 집에서 관리하다가 지부장 넘기면 자료는 버려졌다”며 “내가 2001년 6월부터 지부장을 했는데, 흩어져 있는 자료 다 주워 모아서 이렇게 남았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기록을 남기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전산화 작업에 포함된 피해자들의 간단한 구술 자료도 심 지부장이 추진하면서 남기게 된 자료다. 그는 “저 같은 경우도 43년 1월 9일생이다. 당시 2, 3살밖에 안 되기 때문에 실제 원폭 떨어진 상황을 모른다”며 “실제 원폭 상황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이미 돌아가셨다. 지금이라도 산 사람들 정보를 받아놓으려고 구술 증언을 받았는데 300개 정도밖에 안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억하는 사람들 이야길 들어보면 검은비가 내렸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원자탄은 몰랐으니까 ‘미국 사람들이 기름을 뿌려서 불을 질렀다’ 이렇게 말하는 분들도 있었다”며 “비극적인 역사인데 1948년 우리 정부가 수립된 후 바로 실태조사를 해야 했다. 그런데 강제징용이고 원폭 피해고 할 것 없이 일본에 대한 건 국가가 해놓은 게 하나도 없다”고 일제 강점기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역할도 강조했다.
그의 강조에도 불구하고 이번 작업도 국가나 지자체가 나서기보단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이들로 인해 진행되게 됐다. 심 지부장은 “저희도 관심만 있었을 뿐이었는데, 영대에서 최범순 교수가 주관을 하면서 합천군과 MOU도 체결하면서 도와준 게 너무 고맙다”며 “자료를 남기는 건 역사를 남기는 거다. 역사가 보존되어야 하지 않나. 지금도 일본 지도자들이 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에게 하는 걸 봐라. 후대에 증거를 남겨야 하는거다”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