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 문제는 계층 문제, 사회적 접근 필요해”

[인터뷰] 정민철 신천지 피해자와 함께하는 대구시민들의 모임 대표
“희망 잃은 청년 포섭···기존 교단에만 맡겨둬선 안 돼”

19:47

“삶의 플랫폼을 만들어줘야 한다. 거짓말이라는 걸 깨닫고 나와도 트라우마를 겪는다. 탈북자들이 북한 체제에 염증을 느끼고 남한으로 오더라도 잔상도 남고, 정착도 잘 못 하는 것과 비슷하다. 신천지 탈퇴자도 비슷한 정체성을 갖는다. 탈북자를 돕는 중간 조직이 있듯이 플랫폼이 필요하다”

지난달 25일 대구에서 신천지 피해자를 도와야 한다는 취지를 가진 단체가 출범했다. 청청센터(청년회복 청춘반환 지원센터) 대구지부로 스스로들을 ‘신천지 피해자와 함께하는 대구시민들의 모임’이라고 부른다. 모임 공동대표를 맞고 있는 정민철 목사는 신천지 사례를 단순히 종교계 ‘이단’ 문제만으로 봐선 안 된다면서 사회과학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민철 신천지 피해자와 함께하는 대구시민들의 모임 공동대표

정민철 목사는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일반에게 각인된 신천지 대구교회에서 불과 15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개척교회(위드교회)를 운영하고 있다. 덕분에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신천지 신도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지난해 11월에는 직접 대구교회에 ‘잠입(?)’ 한 적도 있다.

“교회에 신천지 신도들이 찾아온다. 그들 딴에는 전도를 하겠다는 건데, 저는 그냥 이웃으로 만나서 차도 내주고 이야기도 나누곤 했다. 물론 교리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한기총으로 대표되는 기존 교단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신천지는 한기총과 싸우니까 굳이 비판할 필요도 없었다고 할까. 지난해 11월에는 1년에 한 번 신도 아닌 사람도 갈 수 있는 날이 있어서 그렇게 만난 신도들 통해서 초청받아서 가본 적도 있다”

정 목사는 코로나19 이후 평소 알고 지내는 지인을 통해 신천지의 사회 문제를 심각하게 인지하게 됐다. 지인의 아들이 신천지 신도라는 사실을 숨겨 왔다는 게 확인된거다. 이를 통해 다시 본 신천지에는 젊은 청년이 다수 신도로 들어가 있었다. 이들 중 많은 경우가 소위 ‘흙수저’라고 불리는 평범한 소시민, 서민 가정 자녀였다. 지역의 한 대학에는 신도가 수백에 달한다는 이야기도 접했다.

“대학에서 리더격으로 활동하다가 작년 연말에 나온 친구를 안다. 그 대학에만 6~700명 정도 됐다고 한다. 이 친구도 그렇지만 평범한 가정에서 살아온 순수하고 부지런한 청년들이 신천지에 많이들 들어가 있다. 코로나 이후 나온 청년을 만나면서 종교 문제로 접근했지만 보편적인 청년 현상이 보이더라. 청년들의 심리상태, 미래에 대한 불투명한 전망, 불안한 마음,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을 다녀도 불투명한 미래, 이런 정서가 뒤엉켜 있더라”

청년 문제는 하루 이틀 된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청년이 이른바 ‘사이비’에 빠져드는 것도 아니다. 정 목사는 “일반 사람이 보면 미쳤다 싶을 것”이라면서도 “안에 들어가 보면 보상에 대한 희망 고문이 엄청나다. 금방 종말이 온다고 하고, 제사장 그룹이 되면 모든 보상을 받는다는 희망으로 몰입하게 된다. 불투명한 직장 생활에 목매느니 여기에 올인해서 구원받은 자가 되자고 생각하게 된다. 이들에겐 이게 더 현실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목사는 특히 이들 다수가 청년이라는 데 집중한다. 청년은 학업과 직장으로 이어지는 삶에서 꽤 중요한 단계에 있다. 그런 단계에서 기존 삶의 방식을 버린 채 신천지에 몰입하면, 신천지를 떠났을 때 남는 건 낙인뿐이다. 때문에 신천지를 떠나는 결정을 하기도 어렵고, 나온다고 해도 사회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학사경고가 기본이다. 학점 관리를 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들끼리의 커뮤니티 안에 모든 것이 있다. 그러니까 지금 내부적으로 신천지의 허상을 알고 갈등하는 사람이 다수 있지만, 섣부르게 나오는 결정을 못 한다. 나가도 더 나을 게 없다고 생각되니까 차라리 안주하는 결정을 하게 되는 거다”

2018년 신천지를 나온 이들이 이른바 ‘청춘반환 소송’을 제기한 것도 같은 이유다. 정 목사는 그래서 단순히 종교 문제로 국한해서 버려둬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특히 기존 기독교 교단에만 맡겨두면 ‘강제개종’ 같은 문제로 번지고,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냥 종교 문제로 접근하거나, ‘이단 상담소’ 만들듯이 하면 해결이 안 된다. 이단 상담소로 가면 이 사람들이 교리적으로 잘못됐다고 깨달아도 트라우마가 남는다. 거기에 대한 심리상담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시민으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 건강한 사회 일원으로 돌아오도록 플랫폼을 만들어주고, 낙인을 찍어선 안 된다. 요즘은 신천지 들통나서 직장도 퇴사한다고 하더라. 지도부는 사기꾼이지만 거기에 속은 이들은 피해자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지난달 25일 청청센터 대구지부가 창립했다.

정 목사는 우리 사회에 이러한 ‘사이비’ 문제는 역사적으로 존재해왔지만 그럴 때마다 단순히 종교 문제로만 치부해왔기 때문에 해결되지 못한다고도 말했다.

“사실 박근혜 국정농단도 최태민이라는 이단 문제가 있고, 세월호 뒤에도 구원파 문제가 있었다. 그 외에도 한국 사회 곳곳에 이단 문제가 사회를 어지럽게 한 사건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종교 문제로 제한하고 무방비 상태로 던져 놓은 게 많았다. 하나의 사이비가 사라진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사라지면 또 다른 사이비가 구심점을 잃은 이들을 다시 포섭한다. 지금도 신천지를 나온 사람을 다른 사이비 집단에서 데려가려고 혈안이다”

정 목사는 지금 당장보다 이후 위기를 맞은 신천지가 붕괴했을 때를 우려하고 있다. 그는 “신천지 전문가 대부분은 이만희가 죽거나 구속됐을 때 충격파가 어마어마할 거라고 보고 있다”며 “특히 자기 삶을 걸었던 사람들은 집단 자살 같은 일도 벌일 수 있다고 본다. 일본 옴진리교도 있고, 우리나라는 오대양 사건도 있었다. 불이 나기 전에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청센터 대구지부는 크게 3개 분과를 두고 사업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하나는 캠페인 분과로 신천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하는 이른바 ‘청춘반환 소송’을 지원하는 일을 주로 한다. 교리 분과도 있다. 신천지 피해자가 교리를 매개로 포섭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오류를 바로잡을 필요는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상담 분과다. 이 단체가 특히 강조하는 영역이다. 심리적 트라우마를 상담하고, 커뮤니티를 형성해서 신천지 생활로 붕괴된 일상을 복원하는 일을 지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