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가 한국게이츠 국내 공장 철수를 사실상 묵인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왔다. 앞으로 해외 투자 기업이 한국을 떠날 때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하는 법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은 정부와 여당, 시민사회단체가 한국게이츠 공장 재가동을 위해 함께 싸워달라고 제안했다.
17일 오후 2시 대구시의회에서 ‘한국게이츠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은 한국게이츠대구시민대책위, 민주노총 대구본부, 김동식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의원, 대구시 일자리노동정책과가 공동 주최했다.
“원청사 현대기아차, 부품 역외 수입 묵인”
현대기아차 ‘사회적 책임’ 목소리 나와
차차원 한국게이츠투쟁본부 기획팀장(금속노조대구지부 대구지역지회장)은 “한국게이츠 생산 공장 폐쇄를 결정하면서도 판매법인인 게이츠유니타코리아(GUKC)를 통해 중국게이츠에서 생산된 제품으로 국내 완성차에 공급하려고 한다”며 “현대자동차 그룹의 협조 및 방기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차 팀장은 “부품 구매와 협력사 관리는 완성차에서 진행한다. 한국공장 생산품을 중국공장 생산품으로 대체 수입해 납품하는 것을 승인한 것”이라며 “국내 기업인 현대자동차그룹이 외국 자본의 국내 공장 폐업과 역외 수입을 통한 부품 공급을 승인한 것은 국내 노동자 생존권 박탈을 협조하고 방기한 부도덕한 행위”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글로벌현대차가 글로벌게이츠와 관계에서 최소한 국내 공장 납품 문제는 해결할 의지를 갖도록 해야 한다”며 “만약 이대로 게이츠가 폐업한다면, 국내 완성차에서는 게이츠 제품을 쓰지 않아야 한다. 일방적으로 노동자만 해고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식 대구시의원도 “한국게이츠가 재가동할 수 있도록 현대기아차가 나서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고용 위기 속에서 현대기아차가 (폐업을) 암묵적으로 묵인한 것”이라며 “현대기아차는 대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방기했다”고 지적했다.
이길우 민주노총 대구본부장도 “한국게이츠에서 생산한 제품은 모두 국내 현대기아차에서 소비된다. 그런데 이제 중국에서 수입하겠다는 거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며 “집권 여당과 대구시가 나서서 현대기아차 자본에 반드시 압박을 가해야 한다. 지난 쌍용자동차 사태가 대구에서 재현되고 있다는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원준 경북대 교수는 ‘대구형 상생일자리’를 활용해 현대기아차와 협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나 교수는 “정부는 물론 현대기아차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대구형 상생일자리를 통해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현대기아차와 협의체를 구성하고 말로만 상생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상생 일자리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황순규 진보당 대구시당 위원장도 “현대자동차가 사실상 폐업에 묵인, 승인했다고 하지만 사실상 공범으로 낙인을 찍어야 한다”며 “분명한 사회적 책임을 요청하는 투쟁과 압박을 종합적으로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홍용규 대구시 일자리노동정책과 노사상생팀장은 “현대차 협력업체를 포함해 가족들까지 약 2만여 명의 고용문제가 발생할 거로 예상된다. 오늘 토론회에 오기 전에도 게이츠와 현대차에 접근을 해봤는데 거부 당한 상황”이라며 “다른 방법을 동원해서 지속적으로 (접촉을) 시도하겠다. 오늘 토론회에서 나온 이야기를 잘 보고토록하겠다”고 말했다.
해외 투자 기업 국내 철수 법적 제재 없어
게이츠, 정리해고 아닌 폐업…법적 허점 노렸나?
“정부, 일자리 지키기 위해 전향적으로 나서야”
해외 투자 기업이 국내에서 철수할 때 노동자 고용안정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 전혀 없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또, 한국게이츠가 정리해고가 아닌 폐업을 선택한 것이 해고 회피 노력을 피하려는 법적 허점을 노린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나 교수는 “코로나19 위기가 전 세계 다국적 기업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들이 국내에서 자본을 철수할 때 법적으로 규제하거나 제재할 수 없는 사각지대가 많다”며 “기존에 외국 자본을 유치해 경제 성장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했던 것이 따져보면 경제적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매출, 수익성은 물론이고 고용적인 측면에서는 오히려 부정적인 요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외국 자본이 철수할 때 현금이나 입지 관련 지원 환수 규정이 있지만, 환수 조항이 있어야 한다고만 언급한다”며 “대구시 기업유치촉진조례를 보면 사후 관리를 통해 5년 이내 폐업한 경우 지원을 환수할 수 있지만 한국게이츠는 전혀 해당 사항이 없다”고 설명했다.
나 교수는 “해외 기업이 철수할 때 사전 예고하고, 일정 기간 고용대책의 방법으로 기금을 출연한다거나 취업을 알선하는 등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도록 하는 접근이 필요하다”며 “문재인 정부가 ‘한국판 뉴딜’을 이야기했다. 뉴딜 정신은 현대사회 회사가 공적인 책임을 부담하는 거다. 정부가 전향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정부가 약속한 일자리 지키기는 다 어그러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황순규 위원장도 “그동안 우리 사회와 정치권이 직무유기를 해왔다. 해외 투기 자본에 대해 아무것도 해놓은 것이 없다”며 “해외 자본 유치라는 미명 하에 지원에만 주력해왔다면 이제 사회적 책임을 부과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세종 노무사는 정리해고 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하고, 해고 해피 노력, 과반수 노동조합과 협의 등 기업의 책임이 필요한 것과 달리 폐업에는 아무런 제재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 노무사는 “노동자를 보호하는 노동법이 한국게이츠 사태를 촉발했다. 사용자가 자유의사로 완전한 폐업을 할 때 그 어떤 노동법도 사용자에게 제한과 책임을 묻는 장치가 없다”며 “어떻게 보면 게이츠는 정리해고 절차보다 완전한 폐업으로 불필요한 갈등을 벗어나고자 급작스럽게 폐업한 것이 아닌가 싶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당장 한국게이츠는 20일까지 희망퇴직을 신청받고 있다. 명확한 것은 자본 철수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저항을 무력화하려는 것”이라며 “전 사회적인 연대투쟁으로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사용자의 폐업에 따른 해고에도 제한을 반드시 둬야 한다”고 제안했다.
민주노총, 대구시·민주당에 공동대책위 제안
채붕석 한국게이츠지회장, “함께 출근해주십시오”
이날 민주노총 대구본부는 대구시,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에 한국게이츠대구시민대책위와 함께 공동대책위를 꾸리자고 공식 제안했다.
채붕석 한국게이츠지회장은 “올해 한국게이츠 슬로건이 ‘2020 내생의 최고의 게이츠’였다. 이런 상황에서 폐업을 맞았다”며 “너무 참담하다. 믿고 싶은 것은 저희도 국가가 있기 때문에 희망을 가져보려고 한다. 여기 계신 분들이 저희 직원들을 죽음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힘을 써달라”고 말했다.
채 지회장은 “물론 법과 제도가 중요하지만 당장 저희 동료들은 7월 말 이후가 제일 걱정이다.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출근하려고 하는데, 당장 법과 부딪히게 될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 시장, 군수, 국회의원들 다 같이 출근 좀 해달라. 악랄한 투기 자본에 국가를 믿고 싸우고 버틸 힘을 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은 지난 13일 중앙당에 한국게이츠 폐업 반대 대책위 구성을 건의했다. 이어 김문오 달성군수는 지난 15일 한국게이츠 공장 재가동 협조문을 발표했고, 달성군의회 역시 같은 내용의 협조문을 발표했다. 지난 16일 권영진 대구시장 역시 게이츠 최고경영자 이보 유렉(IVO JUREK)에 서한을 보내 폐쇄 결정 철회를 요구했다. 대구시의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조만간 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미국에 본사를 둔 게이츠는 코로나19를 이유로 지난 6월 26일 달성군 소재 한국게이츠 사업장 폐쇄를 통보했다. 한국게이츠는 지난 6일 희망퇴직 공고를 내고, 오는 20일까지 신청서를 작성할 것을 요구했다. 한국게이츠 지분은 미국게이츠(51%)와 일본니타(49%)가 갖고 있다. 미국게이츠 최대 주주는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이다. (관련기사=멈춰 선 공장 지키는 한국게이츠 노동자들…협력업체 51곳 6천여 명 고용불안(‘20.6.30))
*토론회 녹화 영상은 뉴스민 유튜브 채널을 통해 볼 수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