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된 이후 처음으로 누적 관객 수 100만 명을 넘은 영화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개봉 닷새 만에 <#살아있다>의 누적 관객 수는 100만 1,802명을 기록했다. 개봉 12일째에는 누적 관객 수 145만 3,853명으로 나타났다.
그간 영화관에서는 재개봉작이 쏟아졌고, 신작은 흥행에 실패해 손익분기점을 넘어서지 못했다. 지난 3월 25일 개봉한 <주디>는 누적 관객 수 9만 2,413명에 그치고, 같은 날 개봉한 <사랑하고 있습니까>는 누적 관객 수 1만 2,878명에 머물렀다. 이 때문에 <#살아있다>의 누적 관객 수 100만 명 돌파를 지난 2월 23일 코로나19로 국가 감염병 위기 경보 수준이 ‘심각’ 단계로 격상된 이후 침체됐던 극장에 다시 발길이 되살아나고 있는 신호탄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영화계에서 좀비를 질병의 은유적 표현으로 써왔던 것을 감안하면 <#살아있다>는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역병에 대한 공포가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대한민국의 현실과 흡사하다. 이 때문에 재난이라는 영화의 설정은 제작 취지와는 관계없이 올해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흥행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런데 <#살아있다>는 좀비 장르물로 보았을 때는 영 아쉽다. 원인 모를 증세로 좀비가 창궐한다는 설정은 여타 좀비 장르물에서 매우 익숙하다. 영화에서 좀비가 처음 등장한 <화이트 좀비(1932년)>부터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년)>을 거쳐, 좀비 아포칼립스를 유행시킨 <28일 후(2002년)>, <새벽의 저주(2004년)>, <28주 후(2007년)>, <워킹 데드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전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파트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생존의 절박함에 초점을 맞춘 점도 <람보크:베를린 언데드(2010년)>, <쥬(2018년)>, <데이라이트 엔드: 인류멸망의 날(2016년)>, <워킹 데드 나잇(2018년)>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살아있다>의 얼개는 기존 좀비 장르물의 공식을 따른다. 어느 날 오전 10시, 오준우(유아인)는 잠이 깬다. 준우의 방에는 인공지능 스피커, 컴퓨터, 드론 등 첨단 기기가 널려 있다. 온라인 게임을 시작하려던 준우는 좀비가 창궐하는 사태를 목격한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아파트 앞마당으로 쏟아져 나오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 뒤를 쫓아와 덮치고 물어뜯는다. 자동차는 탈출하는 사람들과 뒤엉켜 꼼짝하지 못한다. 소방차는 아수라장 한가운데를 밀고 들어와 다른 차를 들이받고서야 멈춘다.
공포에 떨던 준우는 집밖을 나서지 않고 버틴다. 연락망은 복구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식량마저 바닥난다. 좀비로 들끓는 아파트에서 혼자만 살아남았다고 생각한 준우는 술에 취해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한다. 이때 배우 유아인의 연기는 전작 <사도(2015년)>에서 광인으로 변해가는 사도세자와 겹친다. 준우의 절망감은 극에 달하고, 급기야 극단적 시도를 하는 순간 한줄기 붉은빛이 날아든다. 각종 캠핑 장비와 넉넉한 식량으로 버텨온 김유빈(박신혜) 덕분에 목숨을 부지한 준우는 유빈을 통해 삶의 의지를 다잡으며 생존과 탈출의 길을 모색한다.
영화의 단점은 후반부로 갈수록 개연성과 설득력을 무너뜨리며 정해진 수순을 향해 돌진한다는 것이다. 준우가 집안 가구를 부술 때 반응하지 않던 좀비가 탁자가 넘어지는 소리에 모여든다거나, 아파트 현관문을 부수던 좀비 떼를 준우가 자전거로 막아서고, 밀쳐내는 등의 설정의 오류가 대표적이다. 기존 좀비 장르물과의 차별성도 눈에 띄지 않는다. 영화는 제목에 해시태그(#)를 넣어두고도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들이 이야기 전개에 효과를 내지 못한다.
여타 좀비 장르물과 크게 차이가 없는 것도 관객의 눈높이를 따라가기에 역부족이지만, 더 큰 문제는 현재 영화계에서 유행하는 시류에 형편없는 수준으로 편승하려 한다는 점이다. <매드맥스:분노의 도로(2015년)>에서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는 무자비하고 잔인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다.
거칠고 호전적인 남성들 사이에서, 수적 열세인 상황에서, 맥스(톰 하디)와 합세해 이겨낸다. 그리고 남자 사회를 이끌어야 하는 잠재적인 지도자로 거듭난다. 이 과정에서 능력을 과장하거나, 캐릭터의 설정 오류가 벌어지지는 않았다. <캡틴 마블(2019년)>의 캐럴 댄버스(브리 라슨)는 성차별적 환경에서 성장하는 캐릭터다. “여자는 조종사가 될 수 없어.” “여자는 너무 감정적이야.” “여자가 하기엔 무리야.” 영화는 캐럴 댄버스의 성장을 특별하지 않고 당연하게 그린다.
유빈은 최근 몇 년간 할리우드에서 강렬하게 선보이는 여전사와 비슷하다. 자일(산악 등반 로프)을 이용해 아파트에서 능숙하게 뛰어내리고, 피켈(등반용 얼음도끼)로 좀비 무리를 서슴없이 물리친다. 그러던 유빈은 후반부 들어 유약한 여성으로 돌변하더니, 좀비로부터 목숨을 지키기 위해 쏜 총 때문에 좀비들이 몰려들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다. 안일하게 시류에 편승하려고 한 탓에 캐릭터 설정이 붕괴된 것이다. 스토리텔링의 원칙을 지켰다면 다르고 신선한 좀비 장르물이 탄생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