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돋보기] 우리 아파트에 경비노동자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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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민 75%가 공동주택에 산다고 한다. 많은 국민들이 살아가는 공동주택에는 노동자들이 있다. 언제나 우리 곁에 있던 노동자들을 우리는 알지 못했다. 지난 5월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주민의 폭력과 괴롭힘을 견디지 못한 경비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사람들의 눈길이 그곳에 가 닿았다.

아파트 경비노동자 A 선생님이 상담받을 것이 있다며 사무실로 찾아왔다. A 선생님 뒤로 아내도 함께 들어왔다. A 선생님은 사무실 근처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서 2년 6개월간 근무하다가 지난달 말로 계약해지 되었다고 했다. 계약해지, 그러니까 해고되었다는 말이다. 6개월짜리 근로계약이 끝났고 이제 당신과 더 이상 계약을 맺지 않겠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은 것이다.

근로계약서에 적힌 용역업체를 검색해봤다. 홈페이지도 잘 꾸며놓았고 꽤 규모가 있는 업체였다. 전화했다. 아파트 현장 담당 관리자를 찾았으나 자리에 없다고 조금 있다가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다시 전화가 왔을 때는 현장 담당자가 아니라 총무인사 담당자였다. 좀 젊은 목소리였다. 화가 나서 흥분된 상태였지만 애써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2년 6개월이나 일한 분을 형식적인 계약 기간이 끝났다고 이렇게 내보내는 건 부당하지 않으냐 물었다. 저쪽에선 차분히 ‘법 위반 아니잖아요. 잘 아실 텐데’하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다. 법 위반이 아니다. 기간제이지만 2년 이상 일한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본다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만 55세 이상의 고령 노동자를 제외한다. 고령의 경비노동자들에게 법의 보호는 손에 쥘 수 없는 보석일 뿐이다.

법이 그렇다고 해서 형식적인 3개월, 6개월짜리 근로계약이 끝났다고 2년 6개월이나 일한 사람을 내보내는 건 지나치지 않느냐, 이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만하다고 했다. 저쪽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우리도 사람들 내보내기 싫다. 사람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고 여간 번거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아파트에서 경비원을 찍어서 이번 계약기간 끝나면 내보라 하면 내보낼 수밖에 없다. 이미 법도 다 알고 말한다. 아파트가 바뀌지 않는 한 용역업체로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용역업체는 아파트에서 원하니 어쩔 수 없고, 관리소장은 입주자대표회의에서 하라니 어쩔 수 없고, 입주자대표회의는 주민들이 싫다니 어쩔 수 없고, 대다수 주민은 그런 일이 있는지 모르니 어쩔 수 없다고 하는 사이에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은 3개월마다, 6개월마다 이번에 잘리는 게 아닐까 하며 혼자 끙끙대고 있을 수밖에 없냐고 나도 목소리를 높였다.

오래된 서민 아파트에서 일하시는 B 선생님을 만났다. 경비실에 에어컨 있느냐 물으니 ‘없어요. 그런 거 없어요’하며 손사래를 치셨다. 경비 반장이 있은 관리실에는 에어컨이 있긴 하지만 틀지 않는다고 했다. 혹시라도 틀어놓으면 주민들이 전기세 나온다고 난리를 칠 게 뻔하니 아예 틀 생각도 안 한다고 했다. 에어컨 같은 건 필요 없다고 했다.

C 선생님은 경비원이 진짜 잡부라고 했다. 주민들이 숙취로 구토한 것부터 죽은 짐승 치우기까지 온갖 험한 일을 다 하는데, 일부 주민들은 땀 냄새 난다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싫어하고 못 타게 하기도 한다고 했다.

▲대구노동세상은 대구 지역 아파트 경비노동자과 함께 경비노동자 모임을 결성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정은정 제공)

7월 첫째 날과 둘째 날, 대구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이 처음으로 모임을 가졌다. 그동안 혼자 견디던 부당한 갑질과 고용불안에 대해 속 시원하게 이야기하고 서로 도닥였다. 앞으로 정식으로 단체를 꾸려 경비원 노동자의 목소리를 모아서 처우를 개선해 나가자고 마음을 모았다.

다음날, 한 경비노동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근로계약을 1개월씩 한다고 했다. 4명이 근무를 하는데 2명이 잘리고 2명이 살아남았다며, 이번 달에는 무사히 재계약을 했지만, 월말엔 또 어쩌냐 두려워하다가 이런 모임을 꾸려졌다는 뉴스를 보고 반가워 그냥 전화를 했다고 했다.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현실을 선명하게 드러내면서도 따뜻한 문장으로 쓰인 조정진 선생님의 『임계장 이야기』가 많이 읽히고 있다. 주변의 많은 분이 ‘대구지역 아파트 경비노동자 모임’에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고 있다. 더 이상 서울 강북구 아파트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시민들의 공동체 의식과 정부와 자치단체의 적극적인 노력이 경비노동자들의 목소리와 제대로 만나서 우리가 사는 아파트가 노동하기도 좋은 공동체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