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 이용수(93) 씨가 지난 7일 기자회견 이후 처음으로 공식 입장을 냈다. 이 씨는 <경향신문>에 보낸 입장문에서 “정의기억연대와 활동을 통해 이끌어 낸 성과에 대한 폄훼와 소모적인 논쟁은 지양돼야 한다”며 입장을 밝혔다.
지난 7일 이 씨는 대구시 남구 한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저는 수요데모(수요집회)는 마칠랍니다”고 밝혔다. 13일 기준 1,439회째 이어온 수요집회를 참석하지 않는다는 발언은 말 그대로 ‘폭탄 발언’이었다.
이 씨는 매주 대구에서 상경해 수요집회에 참석했다. 이 씨가 수요집회를 그만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든 근거는 “학생들 고생만 시킨다”였다. 이 씨는 “왜 데모를 해서 귀한 사람들 고생만 시키나. (학생들은) 공부를 해야 한다”며 “양국 간에 젊은 사람들이 활발하게 소통하면서 역사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일본에 사죄와 배상을 받기 위해 젊은 사람들이 역사를 알고, 옳은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씨는 대구 중구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 교육장을 짓겠다고 했다. 13일 이 씨는 입장문에서도 “문제해결 과정은 가해국의 책임과 별도로 직접 당사자인 한일 국민 간 건전한 교류 관계 구축을 위한 미래 역사를 준비하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씨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 것이다. 이 씨는 지난 1991년 피해 당사자로 신고한 이후, 미국, 일본 등 세계 각국을 다니며 문제를 알렸다. 영화 <아이캔스피크>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하다.
지난 30년 동안 이 씨는 성과도 만들었다. 지난 2011년 8월 30일 헌법재판소는 정부가 한일 청구권 협정 제3조에 따른 절차에 따라 해결하지 않는 부작위가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당시 헌재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는 모두 고령으로서,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경우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배상청구권을 실현함으로써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우고 침해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회복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해질 수 있으므로, 기본권 침해 구제의 절박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헌재 판결 후, 지난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부는 피해자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한일협정’을 맺어 일본 정부로부터 10억엔을 받아 왔다. 일본 정부의 사과는 없었고, 불가역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합의한다는 단서도 달았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외교부는 한일협정 합의 과정을 검토하는 TF팀을 꾸려 문제점을 밝혀냈다. 지난 2017년 TF팀은 검토 결과 보고서에서 “전시 여성 인권에 관해 국제사회 규범으로 자리 잡은 피해자 중심적 접근이 위안부 협상 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고, 일반적인 외교 현안처럼 주고받기 협상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이후 2018년 이 씨를 포함한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이 소송을 제기한 지 4년 만에 열리기도 했다.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 후 9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3년이 지났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대구 자택에서만 지내온 이 씨는 그동안 쌓인 절망감이 터진 것이다.
대한변호사협회 일제피해자 인권특별위원장 최봉태 변호사는 “우리나라에서는 개인 청구권이 살아있다는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의 취지도 청구권이 살아있다는 입장이다. 한국과 일본 사법부의 결정은 동일하다”며 “그런데 한국 정부나 일본 정부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 위헌 상황이 9년 이상 지속되고, 문재인 정권도 2015년 협정이 문제가 있다고는 했지만 일본과 협상하겠다는 이야기는 안 했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을 이겨도 이 씨로서는 희망을 가지기 어렵다. 지난 2018년 11월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보상 명령 이후, 문제 해결은커녕 일본의 경제보복만 이어지고 있다.
최 변호사는 “열심히 재판에서 이겼는데도 법대로 안 되니 절망적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며 “더구나 할머니가 한국 법원에서 일본 정부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이겨도 한국 정부나 일본 정부가 해결할 거 같지 않다는 절망감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일 정부가 피해자를 구제하라는 사법부 판결을 이행하지 않아 갈등이 생긴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양국 사법부 판단을 존중해서 피해자를 구제하는 협상을 열고, 그 과정에서 징용 판결도 이행시켜야 한다”며 “일본군 ‘위안부’ 재판도 판결까지 가지 않고 화해하는 게 중요하다. 그 협상을 한국정부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