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한 구청이 주민들이 직접 사업을 구상하고 추진하도록 하는 주민참여예산 사업을 구의원들에게 제안하도록 요청해 물의를 빚고 있다. 주민참여예산 사업은 주민의 자발적 참여가 기본 사업 취지이기 때문에 공무원이나 의원 등이 관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시민단체는 “주민참여예산제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뉴스민> 취재를 종합하면, 대구 한 구청은 20일 오후 구의원들에게 “의원님 지역에 필요한 사업 말씀해주시면, 주민참여예산 사업에 공모 신청 해보도록 하겠다”는 안내 문자를 보냈다. 문자에는 사업 규모별로 5천만 원 이내 사업은 구청 소관 사업이고, 5천만 원 초과 3억 원 이내 사업은 시 소관 사업이라고 명시까지 했다.
문자 내용만 놓고 보면 의원이 사업을 제안하면 해당 사업을 주민참여예산사업으로 반영해 추진하도록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는 지방재정법과 같은 법 시행령, 그리고 지자체 관련 조례에서 정하고 있는 주민참여예산 추진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다.
지방재정법 39조는 지자체 예산편성에서 주민 참여 권한을 명시하고 있고, 동법 시행령 46조를 보면 주민의 참여방법을 ▲공청회 또는 간담회 ▲설문조사 ▲사업공모 ▲그밖에 조례로 정한 방법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대구시나 구·군 조례는 시행령이 규정하는 방법을 기본적인 의견 수렴 방법으로 정하고 있다.
다만, 의견 수렴 방법에 참여할 수 있는 주민의 정의를 따로 두고 있는 특징이 있다. 이는 사업 대상이 되는 ‘주민’의 의미를 명확히 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지만, ‘주민’을 빙자해 지자체가 공무원을 동원해 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막으려는 의도도 있다.
대구시는 2018년 관련 조례를 개정하면서 ‘시와 구·군 공무원 및 산하 출연기관, 투자기관 종사자는 주민에서 제외한다’고 정했다. 구의원은 선출직이긴 하지만 신분상 공무원에 해당하기 때문에 조례에 따라 사업을 제안할 대상이 되지 못한다.
대구참여연대는 21일 논평을 내고 “시민이 예산 과정에 참여하고 직접 결정하는 직접민주주의 제도로 자리 잡아가는 주민참여예산제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며 “2020년 주민참여예산 사업공모가 코로나19 사태로 미진한 틈을 타 주먹구구, 눈먼 쌈짓돈으로 전락하게 될 지경”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선출직이라도 신분상 공무원인 대구 시의원, 기초의원은 주민참여예산 제안자가 될 수 없도록 한 대구시 주민참여예산 조례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며 “더 큰 문제는 의원이 제안한 내용을 주민제안 공모에 선정하겠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내세워 대리 제출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제도의 형식과 내용 모두를 기만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대구시는 해당 구청에 대해 즉각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 나아가 이 일이 이 구청에서만 일어난 일인지, 대구시의 직간접적 지시나 묵인이 없었는지 확인해야 할 것”이라며 “또한 이런 문자와 연락을 받고도 사실을 감추거나 별거 아닌 양 치부한 의원들도 문제가 있다. 지금이라도 관련 사실을 공개하고 의회 차원의 자정 및 대 집행부 감시를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해당 구청 예산담당 팀장은 “코로나19로 대주민 홍보가 잘 되지 않아서 의원들에게 홍보를 부탁하고, 홍보를 하는 차원에서 보낸 문자”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