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내일은 좋은 날이 올 것 같은 기분”, ‘용길이네 곱창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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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길이네 곱창집>은 2008년 한국 예술의전당과 일본 신국립극장이 공동 제작한 동명의 연극이 원작이다. 재일한국인 작가·연출가 정의신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그해 한국과 일본의 연극상을 휩쓸며 숱한 화제를 낳았던 연극은 10년 만에 영화로 제작됐고, 한국에서는 2년 뒤 개봉됐다.

영화의 배경은 일본 경제의 호황을 누리던 1969년이다. 간사이공항 근처에 있는 한인 집단 거주지는 판자촌이다. 재일한국인 1세 용길(김상호)과 재혼한 부인 영순(이정은)은 일본인들이 먹지 않고 내다버리는 소와 돼지의 내장을 수거해 요리한다. 영화 제목인 야키니쿠 드래곤(Yakiniku Dragon)은 곱창집의 간판이다. 주요 등장인물은 용길이네 가족들과 단골손님들이다.

용길은 젊은 시절 태평양 전쟁에 끌려가 왼팔을 잃었다. 전 재산을 실은 귀국선은 침몰하고, 그는 한국으로 돌아갈 돈을 벌기 위해 일하지만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용길은 말한다. “일하고 또 일하고, 일하고 또 일하고, 일하고 또 일하다 보니 오늘이 됐다.”

용길은 첫 번째 부인과 사이에서 첫째 딸 시즈카(마키 요코)와 둘째 딸 리카(이노우에 마오)를 얻었다. 먼저 한국으로 돌아간 전처는 한국전쟁으로 세상을 떠났고, 전쟁을 피해 일본으로 온 두 번째 부인 영순과 재혼한다. 영순은 셋째 딸 미카(사쿠라바 나나미)를 데려왔다, 용길은 영순 사이에서 막내아들 도키오를 낳는다.

복잡하게 얽힌 가족들은 각자의 사연과 고민을 안고 있다. 어린 시절 사고로 절름발이가 된 시즈카는 연인이던 테츠오(오오이즈미 요)를 밀어내고 한국에서 건너온 윤대수(한동규)와 교제하기 시작한다. 테츠오와 결혼하지만 늘 마음이 허전한 리카는 대학을 졸업한 남편이 일을 구하려 하지 않고 동네 남자들과 어울려 술만 마셔 속상해한다.

나이트클럽의 가수가 꿈인 미카는 클럽에서 함께 일하는 유부남 하세가와(오타니 료헤이)와 사랑에 빠진다. 명문사립중학교에 다니는 막내 도키오는 집단 따돌림을 당해 학교에 가지 않는다. 학교만 가면 온갖 폭행에 모멸감까지 받는 도키오가 계속해 결석하자 아내 영순은 용길에게 “조선학교로 보내자”고 하지만, 그는 “전학을 간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우리는 계속 일본에서 살아야 한다”며 허락하지 않는다.

<용길이네 곱창집>은 재일한국인 가족의 신산(辛酸)한 삶의 애환을 그렸다. 이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재일한국인은 현실에 대한 울분과 눅진한 아픔을 같은 동포에게 쏟아붓는다. 이렇게 힘겹게 하루하루 일궈내던 용길의 가족에게 큰 절망이 찾아온다. 도키오가 집단 따돌림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관공서에서 추진하는 재개발에 밀려 용길의 곱창집도 철거된다. 큰딸 부부는 북한으로, 둘째 딸 부부는 남한으로 각각 떠나게 된다. 세 딸을 떠나보낸 용길과 영순 부부는 리어카를 끌고 새 삶을 찾아 떠난다. 30년 가까이 살아오던 터전은 허물어진다. 용길은 절망의 순간에도 “내일은 좋은 날이 올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서 희망을 이야기한다.

<용길이네 곱창집>은 영화보다 연극에 가까운 형태를 띤다. 장과 막이 뚜렷하게 구분되고 대사와 등장인물을 비추는 화면도 연극의 무대처럼 보여진다. 러닝타임 127분이 그리 길게 느껴지진 않는다. 콧날이 시큰해지는 묵직한 울림과 곳곳에 스며든 유머, 에너지 넘치는 배우들의 열연이 조화롭다.

12년 전 <용길이네 곱창집>이 큰 인기를 모은 이유는 단순히 재일한국인의 억울한 삶이 아니라 이들의 건강한 삶의 의지를 감동적으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정의신 감독은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가야 한다는 말을 해주려고 한다. 삶에는 행복도 있고 불행도 있지만 그래도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어떤 비극이 기다리고 있다 하더라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좋은 말을 기대하는 용길의 대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