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선에 도전하는 서울시장 변종구(최민식)는 야심가다. 3선에 성공해 청와대까지 노릴 심산이다. 변종구 캠프의 선거대책본부장 심혁수(곽도원)는 정치공작의 달인으로 통한다. 온갖 권모술수를 통해 선거를 유리하게 이끌어간다. 기발한 캠페인을 펼쳐 변종구 캠프에 합류한 박경(심은경)은 막연히 정치를 하고 싶어 하는 청년이다. 상대 후보 양진주(라미란)는 인권변호사 출신이다. 그는 선거전략 전문가 임민선(류혜영)과 함께 변종구에 맞선다. 표를 얻기 위해 미국 유학파 아들 스티브 홍(이기홍)을 불러들여 유세를 벌이기도 한다.
<특별시민(2017년)>은 ‘표’를 염두에 둔 정치공학(political technology)에만 매달리는 정치계의 적나라한 민낯을 그려냈다. 정치공학은 고상하게 표현하면 정치의 기능을 체계화해 실증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적 방법을 말한다. 하지만 ‘표(득실)’ 계산이라는 부정적인 뜻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정치와 정치공학은 완전히 다른데 현대 정치판은 공학만 난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약다운 공약은 찾아보기 힘들고, 비전과 아젠다는 실종된 지 오래다. 어떻게 하든 표를 얻을 궁리만 하는 탓에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정치공학만 남은 것이다.
민생을 살피고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 좋은 정책보다 득표에 유리한 인물 기용에 중요시한다. 득표를 위해 정당 이미지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만 찾는다. 이 같은 현실정치와 흡사하게도 <특별시민>에서 정치의 진정성을 가진 인물은 단 한 명도 없다. 변종구는 청년들의 표를 얻기 위해 토크쇼를 힙합 방식으로 진행한다. 그는 유명 래퍼가 한창 공연하는 도중 뉴에이라 스냅백을 쓰고 박시한 티셔츠를 입고 등장한다. 몰카의 일부분만 공개해 상대 캠프의 비난을 끌어낸 뒤 이를 통해 역공한다.
고가의 미술품을 사들인 아내가 언론의 집중 타격을 받자 다른 사건으로 물타기 한다. 공교롭게도 난처한 상황에 몰려서는 실신한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난다. 예기치 못한 사건을 대응할 때는 최악의 면모를 보인다. 자신이 저지른 음주 뺑소니 사건을 딸에게 뒤집어씌우는 짓을 서슴지 않는다. 경쟁자인 양진주도 고결하지는 않다. 아들 스티브 홍의 문제 앞에서 균형을 잃고, 변종구를 이기기 위해 정치 방향이 다른 후보와 야합한다. 인명피해가 발생한 지하철 공사장 싱크홀 사고는 변종구를 공격하는 카드로 적극 활용한다.
영화에서 후보들 간 앞서서니 뒤서거니 하는 선거의 양상은 그려지지 않는다. ‘어떤 도시를 만들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정치는 실종되고, ‘승리를 위한 승리’라는 정치공학적 계산만 두드리는 정치인들만 비춘다. 이념, 돈, 복수심, 승부욕, 권력, 열정, 미신이 뒤섞인 정치판은 낯설지 않다. 각종 정치공작과 모략은 현실정치의 기시감이 든다. 정책 경쟁은 없고 서로의 약점을 파고들어 네거티브만 일삼는 것 역시 극단적이지만 현실정치와 닮았다. 낯뜨거울 정도로 직설적이어서 오히려 현실적이다.
최근 어지럼증 증세를 보여 병원에 실려 간 권영진 대구시장을 향해 정치공학적 계산이라는 비판이 따른다. 권 시장은 대구시의회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긴급 생계자금 지급 문제를 두고 대구시의원과 마찰을 빚다가 쓰러졌다. 그 모습이 촬영된 사진과 영상은 방송과 신문에 보도됐고 온갖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화제가 됐다. 그의 건강을 우려하는 이들도 있지만, 정치쇼가 아니냐는 주장이 우세하다. 피로누적으로 인한 구토, 어지럼증, 흉통, 저혈압, 안구진탕 등의 의사 소견이 나왔지만, 이를 믿는 이들이 많지는 않다.
시민들의 냉소적 반응은 권 시장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그는 2014년 초선 때부터 정치적 셈법으로 보이는 행보를 이어갔다. 대구 청년들이 몰린 힙합페스티벌에 뉴에이라 스냅백을 쓰고 박시한 티셔츠를 입고 나타나 인사말을 전해 논란을 낳았다. 사상 초유의 탄핵사태 때는 기자실을 찾아가 박근혜 정권에 대해 쓴소리를 내뱉었다. 국민적 공분을 샀던 박근혜-최순실게이트에 대해 같은 당 정치인들이 날선 비판으로 화제를 모으던 때, 그도 언론에 한 목소리를 냈던 것이다. 권 시장이 나름 중도적 정치 성향을 띠었을 때다. 당시 기자들은 권 시장의 기자실 방문을 뜬금없다고 평했다.
2018년 지방선거 유세 도중 장애인단체와 충돌했을 때도 정치적 셈법으로 풀이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중년의 여성이 권 시장 앞에 서서 한팔로 막아서는 과정에서 권 시장이 뒤로 넘어져 허리와 꼬리뼈를 다쳤다. 선거 테러를 운운하며 배후세력 조사를 주장하던 캠프는 하루 만에 한발 물러섰다. 사건 당일 권 시장의 유세를 촬영한 영상이 공개되고, 온라인에는 ‘장풍 사건’으로 부르는 조롱과 야유가 쏟아지면서다. 다음날 권 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글을 올렸다.
지난해 권 시장의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사퇴 촉구 1인 시위도 정치공학적 계산을 두드린 것으로 풀이된다. 몇 달 전만 해도 선거법 위반 혐의로 법정에 섰던 그는 국민 상식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1인 시위를 벌이다 금세 멈췄다. 현직 광역단체장 중 1인 시위까지 나선 건 권 시장이 유일했다. 이러한 행보는 권 시장을 향한 힐난의 단초로 작용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권 시장은 정치의 명운이 위태로운 지경이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에서 우왕좌왕하며 최악의 상황을 자초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최근 코로나19 피해 지원을 위한 재난생계자금 지급 시기에 대해서도 비판을 자초했다. 코로나19 사태 내내 소극적·정략적으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판이 지역 안팎에서 일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권 시장만의 문제는 아니다. 총선을 앞둔 대구 정치판에는 음습한 정치가 도사리고 있다.
국회의원 후보들은 시민들의 공포를 통해 갈등과 혐오, 분열, 선동,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있다. 민생은 내팽개친 채 현 정부를 심판하겠다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고, 실물경제 위기를 극복할 대안을 내세우지 않은 채 남탓만 해대고 있다. 거액을 들이는 비상경제 대책은 투표를 끝낸 뒤 내놓겠다고 한다. 국가가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입신양명만 바라고 있는 셈이다. 애석하게도 이는 코로나19가 몰고 온 또 다른 공포의 한 단면일 뿐이다.
정치계의 문제는 유권자가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은데서 시작됐다. 현 정치인들의 행태는 누가 당선되든 내 삶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기거나, 특정 정당에만 호감이 쏠렸기에 가능했다. 정치공학적 계산으로 보이는 발상은 이제는 시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고 성공할 수도 없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선거는 똥물에서 진주 꺼내는 거야. 손에 똥 안 묻히고 진주 꺼낼 수 있겠어?” <특별시민>에서 변종구 캠프의 선거대책본부장 심혁수의 대사다. 정치인에게 정치의 본질을 일깨우는 일은 유권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