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4일 1차 민중총궐기에서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살인적인 폭력에 의해 의식을 잃고 쓰러져 한 달이 넘도록 사경을 헤매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물론 정부의 그 어떤 인사들도 그 흔한 유감 표명 하나 없는 것이 야만적인 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한국에서 정의라는 단어는 사라진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 아니 애초에 이 땅에 정의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했나 싶다. 이 땅의 청와대, 정부, 법원, 검찰, 경찰, 정치인들, 언론들은 하나같이 법과 원칙, 정의를 앵무새처럼 떠들어댄다. 하지만 이들이 법과 원칙, 정의를 떠들어댈수록 역설적으로 이 땅의 법과 정의는 시궁창으로 처박히는 기막힌 현실을 우리는 두 눈으로 보고 있다.
국가가 온갖 거짓말로 법을 어기고 자료를 조작해서 사대강사업이다 자원외교다 뭐다?하며 자신들의 사익을 채우고 수십조의 국민적 손해를 입혀도 그들은 처벌받지 않는다.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행태와 정책을 비판하고 저항하는 시민들은 법과 원칙이라는 이름 아래 불법세력으로 종북세력으로 낙인찍히고야 만다. 재벌들은 온갖 부정과 탈세를 저지르고 경영실패로 국민적 손해를 끼치고도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지만, 정규직화하라는 법원의 판결을 지키라며 굴뚝으로 올라간 노동자들은 기어이 법과 원칙의 이름으로 단호한 심판을 받고야 만다. 생존을 위한 절박한 노동자들의 정당한 파업은 법과 원칙 아래서 단지 불순한 세력들의 불순한 행동일 뿐이다.
이런 대한민국의 기막힌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준석 전 새누리당 혁신위원장이 민중총궐기 대회의 핵심 요구들에 대해 “국회에서 야당이 주장하고 토론에 부치면 되는 것들” “시위대의 요구사항을 열거해보면 그다지 새로운 주장도 없고, 국회나 다른 합의체계 내에서 논의되지 못할 이유도 없는 부분들”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의회가 자신들을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에 거리로 나온 사람들에게 ‘국회 같은 더 고상한 의사결정 수단이 있는데 왜 시위를 하느냐’는 식의 이런 태도는 배가 고파서 빵 달라는 사람한테 고기를 먹으면 될 것 아니냐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말 한심한 인식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인식이 이준석이라는 한 인사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저들의 보편적인 인식일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들의 인식이 ‘국회같은 고상한 의사결정’을 따르라는 정도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요즘 방영되고 있는 ‘육룡이 나르샤’ 란 드라마에 마치 현시대를 반영한 것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길태미란 권문세족이 최후를 맞이하며 지켜보던 백성들이 자신을 향해 욕을 하자 “약자는 언제나 강자한테 짓밟히는 거야.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강자는 약자를 병탄한다.(빼앗고 삼킨다) 이것만이 변하지 않는 진리야”라고 외친다. 저들의 행태를 보면 소름 끼치도록 맞아 떨어지는 대사가 아닐 수 없다. 이미 있는 노동법마저 마구 유린하고 있는 그들이지만 그나마 귀찮아서 이제는 노동법 개악으로 최소한의 절차마저 완전히 없애버리겠다는 심산이 아닌가. 87년 이후 절차적으로나마 이어지고 있는 민주적인 제도마저 귀찮아서 온갖 방법으로 장기집권을 하겠다는 것이 저들의 심산이 아닌가.
이제 저들은 민중의 마지막 남은 것들까지 기어이 병탄하려는 발톱을 숨기지 않고 있다. 국회같은 고상한 의사결정 기구는 더 이상 우리 민중들의 아픔을 대변해주지 않는다. 이제 어쩌겠는가? 우리가 스스로를 대변하고 외칠 수밖에 없지 않는가. 노동자민중들이 더 많이 하나로 뭉쳐서 강한 힘으로 외치고 해결해나가야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 외침과 단결된 힘이 없다면 그 누구도 우리를 대변해 주지 않을뿐더러 민중들을 병탄하고자 하는 저들의 발톱을 뽑을수도 없을 것이다.
1차,2차 민중총궐기가 진행되었다. 이제 3차 총궐기이다. 더욱더 힘차게 진행해야 한다. 물론 몇 차례 궐기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지만 민중총궐기로 민중들의 힘을 모으고 그것을 계기로 일상적으로 노동자민중들이 연대하고 지속적으로 투쟁해나간다면 저들과 맞설 수 있는 강력한 민중들의 힘이 반드시 생기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