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확진자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장애인 단체도 벌집을 쑤셔놓은 듯 분주하다. 지난달 23일에는 활동지원사 중 확진자가 나오면서 격리자들이 나왔고, 28일에는 비시설 장애인 중 확진자도 나왔다. 격리될 경우 고려해야 할 게 많은 장애인 확진자에 대한 보건당국 차원의 대책이 마땅하게 없었다. 보건당국이 채우지 못하는 공백은 장애인 단체 활동가나 시민들의 자원으로 채워졌다.
장애인 단체는 장애인 생필품 마련, 보급, 장애인 활동 지원 인력 모집, 장애인 건강 상태 점검, 비상 상황 대응, 급기야 자가격리 장애인과 함께 격리돼 활동 지원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 됐다. 당초 장애인 생활을 지원하던 활동지원사들마저 휴직을 신청하면서, 장애인 단체에 더 큰 부담을 줬다.
생필품, 식품, 손 소독제, 마스크 등 구호 물품은 민관에서 후원이 들어왔다. 하지만 이를 가가호호 나눠주는 일은 장애인 단체 몫이다. 단체는 없는 인력을 편성해 집집마다 구호 물품을 전했다. 단체 활동가를 허탈하게 하는 일도 생겼다. 음식 조리가 힘든 장애인에겐 간편 조리식이 제공되어야 하지만 김치라도 담그라는 것인지, 대구 남구청은 생배추를 후원했다. 일정에 맞춰 장면 연출을 요구하는 언론도 부담됐다.
지난 6일 장애인지역공동체는 활동가 5명을 2개 조로 편성해 대구 비시설 장애인 가구 물품 지원에 나섰다. 한 팀당 대구 전역 30가구 이상을 돌아야 하는 날도 있지만, 이날은 그보다는 적은 15가구가 예정됐다. 주소 명단을 작성해 단거리 동선을 미리 짰다. 동선대로 전달되면 좋겠지만, 장애인 격리자와 연락이 되지 않아 길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다른 곳을 갔다가 돌아와야 하는 상황도 생겼다.
장애인지역공동체 여기서함께센터 사회재활교사인 박경숙 씨도 평소 센터에서 하던 일을 잠정 중단하고 물품 전달에 나섰다. 여기서함께센터는 대구시립희망원에서 탈시설한 장애인을 돌보는 주간보호센터다.
박 씨는 “자가격리된 장애인 집집마다 다니는 일도 만만치 않다. 다음 주면 마스크와 손 소독제도 배송해야 한다”며 “센터 업무를 2월 말부터 당분간 중단했다. 지금은 배송 업무를 맡아 하고 있지만, 3월 말이 되면 센터 업무를 다시 해야 할텐데 걱정”이라고 설명했다.
자가격리 되면서 장애인 활동지원사의 활동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 장애인이 생기자, 활동지원을 자원하는 이들도 있다. A(47) 씨는 방호복을 입고 자가격리 중인 장애인과 함께 격리돼 활동지원에 나섰다. 기존 활동지원사가 확진 판정을 받아 장애인도 감염 확률이 높은 상황이었다. 이 장애인은 최종 음성 판정을 받으면서 격리도 해제됐다.
A 씨는 “돌볼 사람이 없다고 해서 긴급하게 자원했다. 중증장애인이라서 식사, 용변 처리, 옷 갈아입기를 혼자서 못했다”며 “방호복을 착용하고 활동지원을 했고, 48시간 동안 격리됐다”고 말했다.
이어 “장애인 관련 코로나19 대응에 공백이 많다. 감염 발생 시 취약계층인 장애인을 우선 병원에 배정해야 하고, 활동지원도 장애인 특성마다 다르게 제공해야 한다”며 “빈 부분은 장애인 단체가 알아서 해법을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28일 장애인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도 A 씨 같은 자원자가 공백을 채웠다. 29일 오후 상주적십자병원으로 이송하기 전까지 자원자가 방호복을 입고 하루 동안 장애인을 돌봤다.
조민제 장애인지역공동체 사무국장은 “장애인 단체 몇 곳에서 활동가 60여 명이 모여 대구 전역 상황 대응에 나섰다. 평소 업무는 모두 중단됐다. 공공영역이 해결해야 할 일들을 대신하고 있다”며 “과부하 상태인데 언론에서는 방송용 장면 연출을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 헌신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데, 누군가의 헌신과 사랑으로 포장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