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뉴스민은 대구KBS 밭캐스트 제작팀과 지난 12월 안동, 포항, 구미 등 경북 3개 도시와 대구 곳곳을 다니며 주민을 만나 총선을 앞둔 민심을 들어봤다. 현장에서 만난 대구·경북민들의 이야기를 연속해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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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총선거:TK민심번역기] ① 다시 ‘먹고 사는 일’
[2020총선거:TK민심번역기] ② 다시, 더불어민주당?
[2020총선거:TK민심번역기] ③ 20대에게 조국은?
그 나물에 그 밥.
사전적 의미는 서로 격이 맞는 것끼리 짝이 된 경우를 이른다. 사전적 의미에는 가치 판단이 느껴지지 않지만, ‘그 나물에 그 밥’이 쓰이는 경우는 주로 부정적인 상황에서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대구 서구 중리동에 산다는 70대 여성은 다가오는 총선에서도 여느 때처럼 자유한국당을 지지하겠다고 했다. 그는 한국당이 대구·경북에 잘하고 있는 거 같으냐는 물음에 “아이고, 잘하긴 뭘 잘해요. 그 나물에 그 밥이지”라고 했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안동 중앙시장에서 만난 농민 신숙자(79) 씨는 ‘어떤 국회의원을 원하느냐’는 물음에 “아유, 그것도 없어. 다 옳다고 세워놔도 그 나물에 그 밥이래, 뭐 아니껴?”라고 했다. 신 씨 이야길 옆에서 듣고 있던 엄무치(81) 씨도 “좋은 사람 뽑아 놓으니 맹(역시) 그놈이 그놈이래”라고 말을 보탰다. ‘나물’과 ‘밥’이 모두 상했다고 보는 게 이 경우엔 맞는 가정이다.
‘그 나물에 그 밥’ 정도 표현이면 점잖은 축에 든다. ‘그 나물에 그 밥’이란 표현은 ‘그놈이 그놈’이라거나 더 ‘다 도둑놈’으로 나아갔다. ‘그 나물에 그 밥’, ‘그놈이 그놈’은 ‘다 도둑놈’에 이르면 좀 더 분명하게 의미가 드러난다. 결국 ‘믿을 사람이 없다’는 걸 표현만 다르게 한 셈이다. 바꿔말하면 누군가에게 믿음을 보냈지만, 그 믿음이 충족되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들이 정치(인)에게 보냈던 믿음은 그들이 말한 것에 대한 믿음이다. 정치(인)는(은) 이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말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며 원하는 국회의원상이 없다고 한 신숙자 씨는 “마음에 들어서 뽑아놓으니, 맹 도둑질하고 맹 싸우고”라고 했다. 뭐가 마음에 들었냐는 물음에는 “나와서 말하는 거 보면 마음에 들잖아. 쏘옥 들게 하잖아”라고 답했다. 마음에 들어 뽑아놓으면, 맹 도둑질에 싸움질. 그것이 신 씨에게 각인된 국회의원, 정치인의 모습이다. 삶의 문제는 해결해주지 않으면서 도둑질하고 싸움질만 하는 정치(인)를(을) 당연히 신뢰할 수 없다.
포항 죽도시장에서 만난 김상헌(52) 씨는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말해놓곤 다르게 행동하는 그들에게서 신뢰를 잃었다. 김 씨는 “이때까지는 그분들 말을 믿었는데, 말을 못 믿겠더라구요. 이제는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라고 했다. 그는 왜 못 믿게 됐느냐는 물음에 “말과 행동이 다르니까 그렇겠죠, 아무래도”라고 답했다. 마찬가지로 죽도시장에서 만난 문정근(67) 씨도 그렇다. 그는 “일 잘하는 사람 뽑는다고 뽑아놓으면, 똑같은 사람들인데 뭐”라고 했다. 문 씨는 무엇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느냐는 물음에 “지금 그렇지 않으냐?”며 반문하곤 “이러나저러나 똑같은 사람”이라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대구 서문시장에서 만난 금명선(67) 씨는 투표장 가는 것도 망설여진다. 금 씨는 “우리가 민주당이라서 싫어하는 게 아니고,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이라고 좋아하는 거 아니고. 우리한테 잘해주면 (좋잖아요). 전체적으로 잘 돌아가게 해주면 좋은데, 그게 아닌 것 같아요”라고 했다. 그는 투표장은 가야 되지 않느냐는 말에 “모르겠어요. 그때 가서 상황을 봐야 해요”라고 말했다.
금 씨 처럼 투표하는 걸 망설이는 사람은 더 있다. 안동에서 만난 신 씨나 엄 씨도 투표는 하러 가야 되지 않느냐는 말에 ‘두고 봐야지’라고 했고, 죽도시장의 문 씨도 ‘투표할 마음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투표 날이 되면 이들은 으레 그렇듯 투표장에 나가고, 으레 하던 투표 행태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국민으로서 해야 하는 일’이라는 정서는 장노년층에 팽배한 투표 인식이기 때문이다.
문 씨는 “투표할 마음도 없어요”이래놓곤, ‘그럼 이번엔 안 갈 거냐’는 물음에 “하긴 해야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하기는 해야 되는데, 똑같은 사람들”이라고 답했다. 신 씨는 “표 함부래 찍지마래이”라는 엄 씨 엄포에 “안 그래도 내 올해 찍어주지 말까”이래놓곤 “그래도 우야노(어쩌나) 또 가야지”라고 했다.
정치를 믿지 못하는 장노년
정치 효능감 못 느끼는 청년
청년층에서도 장노년층과 유사한 기류가 적지 않게 형성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장노년층이 ‘그 나물에 그 밥’이라거나 ‘그놈이 그놈’, ‘다 도둑놈’이라며 말 그대로 ‘불신(믿지 않는다)’을 드러낸다면, 청년층은 ‘무신(無信·믿음이 없다)’이라고 표현하는게 적확할 만큼 정치 무용론을 이야기했다. 이들은 정치 효능을 몸소 체험하지 못했다고 느끼는 탓에 투표장에 나갈 가능성이 낮다. 나가더라도 본인 뜻보다 주변 뜻에 따른 투표를 할 가능성을 엿보였다.
경북대에서 만난 권동욱(21) 씨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아직 투표를 직접 해본 적이 없다. 2017년 대통령 선거나 2018년 지방선거 당시엔 만 19세 생일을 맞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정치에 관련된 게 저희에게 크게 영향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어디에 투표해도 제 인생이나 제 생활 반경엔 영향이 없을 것 같아요”라고 했다. 그는 4.15 총선에서 첫 투표권을 행사하게 되는데 “군대에 가서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군대에 가면 투표는 무조건 하게 될 것이라는 말에 그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경북대에서 만난 허민지(22) 씨는 정치, 선거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엄마, 아빠가 좋아하는 사람’을 뽑았다고 했다. 오는 총선에서도 부모님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표를 줄 거냐는 물음에 그는 “모르겠어요. 딱히 관심이 없어서”라며 “왠지 시험기간 일 것 같아요”라고 했다. 포항 죽도시장에서 아버지 일을 돕고 있는 찬민(22) 씨는 지방선거에서 할머니가 찍으라고 한 사람을 찍었다고 했다. 그 역시 “일하느라 바빠서 투표할 시간이 없을 것 같다”고 적극적인 투표 의지를 드러내지 않았다.
구미에서 만난 김형찬(20) 씨의 경우엔 투표장에 가지 않는 걸 고려하고 있지만 무관심이나 무용론과는 결이 다르다. 그의 아버지는 밥상머리에서 뉴스를 보며 ‘자유한국당은 찍지말라’고 아들에게 말하곤 한다. 뉴스나 아버지를 통해 접하는 정치는 그에게 어려운 주제다.
그는 “(아버지가) 뉴스 보시고 항상 한탄하시더라구요. 저는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 기권할까 생각되기도 하고···”라며 “잘 몰라서 정치에 크게 관여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했다. 그는 “알려고 하니까 어렵기도 하고, 맨날 싸우기만 하고, 잘 모르겠어요. 되게 어렵더라구요”라며 “보면 볼수록 뭐가 맞는지 모르겠고, 서로 자기가 맞다고 하니까”라고 덧붙였다.
장노년층이 그간 경험에 바탕해 정치 불신을 키워왔다면, 경험 없는 청년층은 정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장노년은 관심은 있지만 환멸을 느끼고, 무관심한 청년 중에서도 관심을 가지려는 이는 아귀다툼에 아연실색한다. 물론 이들처럼 정치를 불신하고, 무관심하며, 무용하다고 느끼는 시민들만 있는 건 아니다. 먹고 사는 일이나 자기 소신 또는 공정 사회에 대한 바람을 갖고 투표에 나서는 시민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기획기사 ①, ②, ③ 참고) 문제는 신뢰할 수 없고, 관심 갖기 싫으며, 무용한 정치다. 정치, 특히 국회는 각종 여론조사나 사회조사에서 신뢰를 잃었다는 지표를 내보이고 있다. 결국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시민이다. 비난이나 힐난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