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뉴스민은 대구KBS 밭캐스트 제작팀과 지난 12월 안동, 포항, 구미 등 경북 3개 도시와 대구 곳곳을 다니며 주민을 만나 총선을 앞둔 민심을 들어봤다. 현장에서 만난 대구·경북민들의 이야기를 연속해서 전한다.
[시민 인터뷰 영상보기]
[2020총선거:TK민심번역기] ① 다시 ‘먹고 사는 일’
[2020총선거:TK민심번역기] ③ 20대에게 조국은?
[2020총선거:TK민심번역기] ④ 불신하고, 무용한 정치
“언니가 해라, 언니가” 이미남(50) 씨는 ‘선거가 다가와서 민심을 들으러 왔다’는 말에 슬쩍 물러났다. 서구 중리동에 사는 언니들은 이 씨네 상가를 자주 찾는 단골들이다. “전부다 도둑놈들이니까 알 수가 있나” 꿀생강차를 타던 언니가 말했다. “그런데 대구에서는 자유한국당을 많이 찍어주잖아. 사람을 보고 찍어주는 게 아니고 당을 보고 찍어주지” 생강차를 기다리는 다른 언니가 그 말을 받았다. 뒤로 물러나 듣고 있던 이 씨는 슬그머니 그들 곁을 피해 자리를 옮겼다.
생강차를 타던 언니는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을 찍으면 여기에, 경북 지방에 뭐가 좀 나을까 싶어서”라며 생강차를 다른 언니에게 건넸다. “좀 유리하려나 싶어서 하는데, 전라도 가봐요” 생강차를 건네 받으며 다른 언니가 말을 이었다. 그는 “전라도, 전부 민주당이지. 거는 사람들이 대차가지고 그러지. 경상도는 흐물흐물해서 전라도 사람 많이 찍잖아”라며 “현재로는 한국당을 머리에 두고 있지. 우린 나이가 있으니까. 젊은 사람들은 요새 다 민주당, 민주당 하는데”라고 덧붙였다.
‘뽑으면 그놈이 그놈’이라던 언니들은 ‘그래도 한국당’이라는 정서가 단호했다. 다만, 한국당을 지지하는 정서만큼 그들이 더 좋은 삶을 가져다 줄 거란 기대는 높지 않았다. ‘한국당이 대구 사람들에게 뭘 잘하고 있는 것 같으냐’는 물음에 생강차를 손에 든 언니는 “아이고, 잘하긴 뭘 잘해요. 그 나물에 그 밥이지”라고 한숨을 내셨다. 그는 “그게 좀 안 낫겠나 싶은, 희망사항이에요”라고 말을 맺었다.
언니들 같은 사람들은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안동에서 만난 오세현(69) 씨는 “맹(여전히) 하던 사람이 낫지 않겠어요?”라고 말했다. 오 씨는 “하던 사람이 잘했나?”라는 물음에는 “잘한 건 없는데, 그래도 지방이니까 경상도는 전부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좋아하잖아요”라고 답했다. 포항에서 35년째 수산물을 팔고 있는 강옥화 씨는 “아직 우리 경북은 알잖아요? 우리가 한 표라도 잘 찍어야지 젊은 애들이 뭘 아나요”라고 말했다. 서문시장에서 40년 넘게 장사를 했다는 66세 남성은 “소득주도성장이 영세상인 다 잡아놨다”고 목소리 높이곤 “정당은 다 똑같은 놈의 XX들이야. 민주당은 말도 못하고, 그래도 한국당은 좀 나아”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남 씨는 언니들과 생각이 좀 달랐다. 그는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기자와 언니들의 대화를 들었다. 그리곤 떠나는 기자의 뒷통수에 대고 불쑥 “나는 이낙연 총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의견이 다른 언니들과 부딪히기 싫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떠나는 기자를 상가 입구에서 붙잡고 소곤소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그는 강원도에서 났지만 12살 때 대구로 내려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강원도 사람은 아니지, 대구에서 태어난 대구 사람이라고 봐야지”라며 “대구라고 해서 무조건 한국당 지지하는 것도 안 된다”고 말했다. 또 “유튜브 방송 좀 거짓 정보 많이 안 했으면 좋겠어. 지금 (언니들이) 이야기한 것처럼은 아닌데, 너무 과장되어 있잖아”라며 “무조건 대구라 해서 자유한국당 지지하는 것도 안 되고, 어느 정도 균형이 이뤄져야 되는거지”라고 덧붙였다.
불쑥 ‘이낙연이 됐으면 좋겠다’고 한 건 차기 대통령을 말한 거였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후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 잘하고 계시고, 나쁜 거 없다고 봐요. 북한 도와준다고 하는데, 우리가 도와줘야 우리도 도움을 받는 거잖아”라며 “만약에 (선거를) 한다면 그대로 지금 민주당을 지지하고 싶어요”라고 했다. 이 씨 같은 사람들이 많다면 민주당에게도 대구·경북은 해볼만한 곳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이들을 만나는 건 쉽지 않았다. 오히려 앞선 선거에서 민주당에 표를 줬지만, 지금은 모르겠다고 하는 이들을 더 만날 수 있었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망설임,
다시 한국당 몰표로 바뀔까?
“최저임금제 없애야 되고!” 장기수(67) 씨는 대구 서문시장에서 양말, 레깅스, 수면바지를 팔고 있다. 장 씨는 이웃해서 칼국수, 수제비를 파는 금명선(67) 씨가 인터뷰 하는 걸 듣더니 불쑥 한마디를 보탰다. “아버님도 인터뷰 해주세요” 기자 말은 듣는 듯 마는 듯, 한마디 보탠 그는 아무일 없다는 듯 분주하게 손을 움직여 상품 정리를 이어갔다.
장 씨는 수성구에 살고 있다고 했다. 갑과 을로 총선 선거구가 나뉘는 그곳에서 장 씨는 수성구갑 김부겸 국회의원 지역구에 산다. 그는 지난 2016년 총선에서 김 의원이 ‘기적’을 이루는데 일조했다. “한 번 바뀌면 안 낫겠나 싶어서 지난번에 바꿔 찍어봤는데, 김부겸이 되면 대구가 좀 안 나아지겠나 싶었어”라는 그는 이번엔 자유한국당에 표를 주겠다고 했다.
“그럼 김부겸 의원이 잘한 건 하나도 없으세요?” 기자 물음에 장 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인성은 좋은데, 그 사람이 힘을 못 써”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에 가서 친문한테 딱 찍혀서 말 한마디를 못 한다”며 “친문은 홍위병이야. 잘한 건 잘하고 못한 건 못한건데, 지금도 봐 윤석열이 잘한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는 윤석열이 죽일 놈이라고. 일반 시민만도 못해”라고 토해냈다.
특히 그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불만이 컸다. 최저임금제 인상이나 주 52시간 노동제 도입으로 그는 직접적으로 피해를 봤다고 말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구미에서 일하는 사위는 이전까진 한 곳에서 일했지만, 지금은 두, 세 곳에서 일을 한다. 월급도 250만 원에서 180만 원 수준으로 떨어졌다.([2020총선거:TK민심번역기] ① 다시 ‘먹고 사는 일’ 참고) 당신의 불만을 김 의원이 속 시원하게 대변해주길 바랬지만 ‘인성 좋은 그’는 그러지 않았다는 게 장 씨의 판단이다.
안동 중앙시장에서 제사 음식점을 운영하는 임현숙(51) 씨도 탄핵 이후 선거에서 민주당에 표를 줘왔다. 임 씨는 “저는 솔직히 저번에 민주당을 찍었는데, 하는 걸 보니까···”라며 말끝을 흐렸다. 임 씨는 자영업 하는 사람들이 불만이 많다고 하면서도 자신은 크게 경기를 타는 건 아니어서 괜찮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이어가는데는 망설였다. 투표를 해야할까 의구심이 든다는 그는 “단합해서 싸우지 말고, 타협이 되어서 나라를 잘 이끌어갔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대구 동성로에서 만난 김장경(37) 씨도 민주당 지지를 이어가는 것을 망설이는 듯 했다. 그는 자영업을 하는 부모님과 주 52시간 근로제로 임금이 줄어든 오빠 이야길 하며 “솔직히 다 이루어진다고 생각은 안 하고, 실현 가능하길 바라며 뽑았는데, 그 결과를 올해 보니까 참담하다”고 했다. 김 씨는 “박근혜 탄핵으로 새로운 정권에, 그래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젊은 사람들이 나서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직접 느끼는 건 나아졌다고 느껴지는 게 하나도 없다”고 덧붙였다.
“뽑아 놓으면 그놈이 그놈”이라면서도
고개 쳐드는 ‘미워도 다시 한 번’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탄핵을 거치면서 장 씨나 임 씨, 김 씨 처럼 대구·경북에서도 조금씩 기존과 ‘다른 선택’을 하는 시민들은 늘어났다. 2017년 대선 당시 득표 현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될 때 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구·경북에서 더 큰 변화를 만들었다. 경북 김천 율곡동에선 문 대통령이 과반 득표를 했고, 구미 양포동, 진미동, 공단2동, 포항 효곡동, 칠곡 석적읍에선 득표 1위를 했다. 전에 없던 일이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도 경북에선 한국당 계열 후보에게 이긴 읍·면·동이 없었다.
대구에선 경북처럼 문 대통령이 1등을 하거나 과반 득표를 한 곳은 없었다. 하지만 한국당에 물표를 주는 묻지마 투표 행태는 퇴색됐다. 홍준표 당시 한국당 후보 득표가 과반을 넘긴 읍·면·동이 139곳 행정동 중 67곳(48.2%)에 불과한 것에서 확인 할 수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될 때도 대구 모든 읍·면·동이 한국당 계열 후보에게 과반 표를 몰아준 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관련기사=경북에서 문재인 1등 동네, 김천 율곡동 말고 5곳 더 있다(‘17.5.10))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선 더 두드러진 결과로 드러났다. 경북에선 역대 세 번째 민주당 계열 단체장이 탄생했다. 그곳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 구미라는 것이 상징적이었다. 구미는 경북도의원 선거구도 6곳이 있는데 6곳 중 3곳에서 민주당이 이겼다. 경북 전체 247석 기초의원 지역구 의석 중 38석(15.4%)을 민주당이 가져갔고, 대구에서도 전체 102석 중 45석을(44.1%) 민주당이 챙겼다. 비례대표까지 포함하면 훨씬 늘어난다.
이는 부산·경남의 2014년 지방선거 결과와 유사하다. 민주당(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은 부산 전체 158석 기초의원 지역구 의석 중 58석(36.7%)을 가져갔고, 경남에서도 전체 225석 중 21석(9.3%)을 챙겼다. 경남 김해시에선 민주당 단체장도 등장했다. 2년 후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부산·경남 각각 5석, 3석을 얻어냈다.
단순비교를 하면 2018년 지방선거에서 충분한 성과를 낸 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부산·경남 같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조건의 차이를 무시할 수 없다. 당시엔 세월호 참사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세가 상당히 꺾여 있었고, 한국당(당시 새누리당)이 공천 파동을 겪었다. 이번엔 문 대통령 지지도는 전국적으로 높은 수준이지만,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문제와 경기 문제로 대구·경북 여론이 식은 건 사실이다. 장 씨와 임 씨, 김 씨 같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미워도 다시 한 번’은 정치 불신과 함께 고개를 쳐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