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뭐 생일축하 노래가 장례 곡 같노. 왜 그렇습니까.”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
7일,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있는 을지로 나라키움저동빌딩 1층 로비에 소박한 생일상이 차려졌다. 상에는 생일케이크 두 개와 수십 그릇의 인스턴트 미역국이 놓였다. 그러나 오늘 65번째 생일의 주인공, 박명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의 표정은 영 밝지가 않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이 그 옆에서 너스레를 떨어보지만 그의 표정 또한 박 대표처럼 굳어 있다.
박 대표는 생일축하 노래를 도무지 기쁘게 들을 수 없었다. 중증장애인들은 만 65세 생일이 되면 활동지원서비스가 중단되고 노인장기요양보험으로 강제 전환되기 때문이다. 박 대표 또한 이 ‘고려장과 같은’ 제도를 피할 수 없다. 박 대표는 현재 보건복지부(아래 복지부) 431시간, 대구시 60시간을 합해 월 491시간의 활동지원을 지원받고 있다. 하루 16시간꼴이다. 하지만 노인장기요양서비스로 전환되면 하루 최대 4시간만 받을 수 있다. 사실상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므로 시설로 들어가거나 꼼짝없이 집에 갇혀 살아야 한다.
“저는 학교 갈 나이가 되어도, 방구석에서 텔레비전만 하염없이 보고 라디오 들으며 시간을 보내며 살았습니다. 엄마가 제때 집에 오지 못해 요강이 차기 시작하면 조마조마해야 했어요. 간혹 어머니가 어디 가지 않고 집에 있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그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머니가 나를 돌보느라 동생들은 방치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생들에게도 미안해요. 저는 47세 때 장애인야학 다니면서 집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집에 다시 갇히기는 싫었으므로, 박 대표는 이날 “비열한 국가가 내팽개쳤던 엄마의 삶을 생각해서라도 활동지원 만 65세 연령 제한이 폐지될 때까지 악착스럽게 싸울 것”이라고 외쳤다.
박 대표의 사례가 알려지면서 현재 복지부는 올해 6월까지 박 대표의 ‘강제전환’을 유예한 상태다. 그러나 이는 한시적인 유예이기에 6월 이후는 장담할 수 없다. 박 대표는 이러한 부분을 지적하며 “시설에서, 집에서 갇혀 사느라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한 장애인이 많이 있다. 장애인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복지부가 예산 타령만 하고 있다”면서 “만 65세를 앞둔 동지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만 65세 연령 제한의 현실이 뒤집어질 수 있도록 끝까지 투쟁하겠다”라고 밝혔다. 이날 박 대표는 인권위에 긴급 구제도 신청했다.
장애계, ‘만 65세 연령 제한 폐지 운동본부’ 발대식 열어… “끝까지 싸우겠다”
지난해 ‘활동지원 만 65세 연령 제한’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이 제도의 폐지를 위해 박 대표를 비롯한 장애인 당사자들은 단식을 단행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 자리에서 장애인활동지원 관련 질의에 “장애인활동지원 받는 분들이 65세가 되면 노인장기요양 대상으로 전환 되어서 시간이 줄어드는 문제가 있다고 보고받았다”라며 “빠른 시일 내에 해법을 찾아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장애계의 투쟁으로 20대 국회에 만 65세 연령 제한 폐지를 담은 ‘장애인활동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총 3개(김명연 의원, 정춘숙 의원, 윤소하 의원)가 발의됐으나 국회 문턱은 넘지 못했다. 올해 5억 원의 연구용역 예산만 책정되었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박 대표의 65번째 생일인 7일, 인권위에 긴급 진정을 하면서 ‘장애인활동지원 만 65세 연령 제한 폐지 운동본부 발대식’을 열었다. 전장연은 “활동지원 연령 제한 폐지가 해결될 때까지 싸우기 위해 이곳 1층 로비에 운동본부를 차린다”면서 ‘만 65세 연령 제한’ 피해 사례 상담 및 지원, 복지부 연구용역 사업 모니터링, 장애인활동지원법 개정 추진 등을 통해 해당 문제를 끊임없이 알려 나가겠다고 밝혔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은 “얼마 전에 장애인정책국 국장과 만나서 활동지원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물어봤다. 그는 노인 문제와 같이 이야기해야 하므로 요양보험제도과에서 안을 가져와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에 박 이사장은 “활동지원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더딘 이유는 바로 이처럼 장애인정책국과 요양보험제도과 간의 책임 떠넘기기 탓”이라고 꼬집었다.
박 이사장은 “활동지원서비스가 중증장애인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기획재정부가 예산을 너무 꽉 쥐고 있기 때문”이라며 “시범사업을 하겠다며 5억 원의 예산을 들여 활동지원 문제를 다시 방치하려 한다. 이 시범사업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두 눈 뜨고 지켜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염형국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국회에 계류 중인 활동지원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며, ‘활동지원법 제 5조 2호’는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도 설명했다. 염 변호사는 “장애인활동지원제도로 시설에 계신 많은 분들이 지역사회에 나와서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활동지원법에 ‘만 65세 이상 이용자를 노인장기요양법 대상자로 전환’하는 조항이 들어갔다”면서 “이러한 활동지원법 제5조 2호는 장애인 당사자의 행복추구권과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기에 위헌의 요소가 있다”면서 향후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기사제휴=비마이너/박승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