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로부터 살해위협을 받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남편과 신분이 다른 것도 아니었다. 타지에서 만나 교제한 지 2년이 된 사람이라면, 부모를 설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타냐 카우르(Tanya Kaur, 31, 가명)는 2011년, 친척이 사는 인도 펀자브 주(州) 잘란다르로 진학했다. 그곳에서 라울 싱(Rahul Singh, 31, 가명)을 만났다. 기숙사 생활을 하다 주말에는 친척 집에서 지냈는데, 친척의 친구였던 싱과 우연히 만나게 됐다.
만날수록 호감을 느꼈고, 그만큼 가까워졌다. 결혼을 결심했다. 둘 다 펀자브 주의 출신이고 신분적으로도 자트 시크(Jatt Sikh)여서 문제 될 게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가족 공동체의 규율이 강한 지역이라 양가 가족 설득하는 것은 큰 과제였다. 부모 의사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카우르의 부모는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딸의 의사는 소용없었다. 지역 유력 정치인 집안이라 더욱 까다로웠을지도 몰랐다. 시간을 두고 설득해도 허락을 받지 못하자, 이들은 섣불렀을지도 모를 결심을 했다. 결혼식 없이 혼인신고를 했다. 결혼 이야기는 숨기고 꾸준히 설득해볼 생각이었는데, 아이가 생겼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되자 카우르의 부모는 그를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했다. 낙태를 하고, 다른 남자와 결혼시키겠다는 말도 했다. 카우르는 싱과 함께 도망쳤다. 2014년 12월 딸이 태어나자, 2015년 무작정 잘란다르에서 남쪽으로 300km 떨어진 뉴델리로 향했다. 가진 것이 없더라도 카우르는 싱과 함께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카우르 일가의 박해는 집요했다. 그들은 뉴델리까지 카우르를 찾아왔다. 권총까지 챙겨 온 그들은 카우르와 싱을 향해 발사도 서슴지 않았다. 그렇게 쫓기길 세 차례, 카우르는 인도에서 살 순 없겠다고 생각했다.
싱가포르로 도피할 계획을 세웠다. 싱가포르에서는 외국인도 일하는 동안 거주할 수 있다고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싱이 먼저 싱가포르로 향했다. 하지만 카우르는 비자를 받지 못했다. 정작 더 큰 위협을 받는 쪽은 카우르와 딸이었는데도 말이다. 다른 도피처를 찾는 중에 싱은 친구들로부터 한국이 좋은 나라라는 말을 들었고, 별다른 지식도 없이 한국을 다른 도피처로 정했다. 2017년 7월, 이들은 인천공항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도착해 만난 다른 인도인들이 대구를 추천해, 또 무작정 대구로 향했다.
카우르와 싱은 그렇게 정착한 곳의 주소를 여전히 모른다. 섬유공장에 취직해 생계를 꾸리느라, 먹고 사는 것에 전념하기도 벅찼다. 법무부는 싱에게만 취업 활동을 할 수 있는 허가를 내줬다. 싱 혼자서 섬유공장에서 일해서 버는 월수입은 약 200만 원이다. 월세, 어린이집 비용 등 생활비로 105만 원이 나간다. 문제는 의료비다. 어린 딸이 감기라도 걸리면 병원비가 생각하지 못한 만큼 든다. 닷새 입원으로 병원비를 60만 원 낸적도 있다. 의료보험 적용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싱처럼 취업 활동 허가를 받고 근무처가 있는 경우 직장 의료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그 가족은 지역 의료보험 당연 가입 대상이다. 하지만 한국말을 할 수 없는 데다 여유 시간도 없는 이들로서 의료보험제도 활용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카우르와 싱은 대구출입국 외국인관리사무소에 난민 신청을 했으나 2018년 7월, 대구출입국은 거부했다.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충분히 근거 있는 공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다. 좋은 곳인 줄로만 알았던 대구는 사실 난민 인정을 안 하기로 손에 꼽히는 곳이었다.
법무부에 따르면, 한국은 1994년 난민 신청을 접수한 이래 2019년 11월까지 총 62,970명(중복 포함)이 접수했다. 이들 중 난민 인정자는 997명(1.5%)이다. 대구출입국의 경우, 같은 기간 1,790명 중 6명(0.3%)이 인정됐을 뿐이다. 대구출입국에 신청해 허가를 받지 못했으나, 법무부 재심사에서 인정된 난민 2명을 더해도 0.4%에 그친다.
이대로 인도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싱은 아직도 권총으로 위협받던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적어도 아내와 딸만큼은 한국에 체류할 수 있길 바란다. 영주권은 생각해본 적도 없다. 당장 인도로 추방되면 아내와 딸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밖에 없다. 지난해 8월 싱은 비자 만료 기간이 다가오면서, 대구지방법원에 난민불인정처분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통해 대구출입국의 난민불인정 처분을 뒤집은 사례는 없다. 1994년부터 2019년 11월까지 소송만 총 945건 있었지만, 대구출입국이 828건(87.6%)을 승소했고 나머지는 취하(27건) 또는 계류(90건) 중이다. 싱과 카우르는 변호사도 없는 소송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대구출입국의 입장은 확고하다. 대구출입국 관계자는 2019년 12월 열린 난민불인정처분취소소송 변론기일에서 “인도에서 카스트 간 결혼을 장려하고 명예살인을 엄격히 처벌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원고가 주장하는 박해 사유는 본국(인도)의 사법 당국 보호를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역사의 도움을 받은 싱은 “인도에서도 경찰 보호를 받으려 해봤다. 그렇지만 부인의 집안이 정치적으로 힘이 있는 집안이라 경찰에게도 도움받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인도가 카스트 간 결혼을 장려한다?
이광수 교수, “대도시, 지방 차이 있어···신변 위협 가능”
대구출입국은 인도가 서로 다른 카스트 간 결혼을 장려한다고 했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판단이라는 지적도 있다. 인도는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헌법을 통해 ‘국가는 종교, 인종, 카스트, 성, 출신지 가운데 그 어느 것에 의해 시민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여전히 ‘명예 살인’은 발생하고 있다. 특히 대도시가 아닌 지방에서는 인도 법체계보다 공동체 규율이 더욱 엄격하게 적용되는 경향도 고려해야 할 요소다.
또한, 카우르와 싱이 신분이 다른 카스트 간 결혼으로 위협을 받는다고 하기도 어렵다. 이들이 사는 펀자브 지역은 시크교의 발상지로, 카스트 체계가 다소 다르게 형성됐다. 시크교는 표면적으로 인간 평등을 내세우기 때문에, 전통적인 의미의 카스트 체계(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가 작동하지 않는다. 이보다는 좀 더 가문·직업별로 세분화된 자티(Jati)라는 체계가 작동한다. 이들은 자티 안에서 동일한 자트 시크다. 이들이 호소하는 위협은 신분상 문제가 아니라 권위적인 지역 공동체로부터 받는 위협이다.
이광수 인도연구원장(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은 “인도 민법은 통일된 법전이 없다. 종교적, 지역적, 커뮤니티별로 달라지는데, 펀자브는 인도에서도 아주 보수적인 지역”이라며 “부모 의사에 반해 결혼과 출산을 했다면 충분히 당사자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종교도 지역 문화 테두리 안에 있다. 전통적으로 부모의 의사나 동네 공동체의 권위를 따르지 않는다면, 특히 형법 체계가 작동하지 않는 시골 지역에서는 신변의 위협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대구이주여성상담소 관계자는 “(이주민들은) 의료보험 등 한국 사회가 보장하는 제도를 이용하기 어렵다. 생각 자체를 못 하기도 하고, 방법이 있다는 걸 알더라도 언어 등 현실적 문제도 장벽”이라며 “이들에 대한 법률 지원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오는 3월이면 이들의 비자는 만료된다. 대구출입국 상대 소송을 통한 난민 인정 사례 ‘0건’. 예외가 나올 수 있을까. 오는 1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판결이 내려진다.
※통역 도움 : 홍보비(네팔 귀화 한국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