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는 서유기(가명, 27) 씨. 그는 최근 끊어진 기타줄을 바꾸지 못할 만큼 생계가 어렵다. 2년 2개월 동안 일한 곳에서 허리디스크가 재발해 퇴사했는데, 퇴직금을 받는데 1년 8개월이 걸렸다. 노동청에 진정했지만, 조사만 6개월이 걸렸다. 결국, 형사, 민사 재판까지 거쳤다.
유기 씨는 지난해 3월 허리디스크 재발로 대구시 수성구 한 아이스크림 카페 아르바이트를 그만뒀다. 월평균 90만 원을 받으며 하루 7시간, 주 5일 2년 2개월 일했다. 딱딱한 아이스크림을 휘저어 퍼담는 작업을 반복하니 허리에 무리가 온 탓이다. 유기 씨 혼자 매장 관리, 아이스크림 만들기, 주문, 정산, 물건 발주 등 모든 업무를 해야 했다.
그는 “일을 그만두면서 사장님께 퇴직금은 안 주시느냐고 물었더니 퇴직금 받으려면 법대로 해라, 그러면 받는 퇴직금보다 변호사 비용, 재판 비용이 더 들 거라고 오히려 겁을 줬다. 몇 차례 사장님과 이야기를 했는데 사장님이 정말 퇴직금 줄 마음이 없는 것 같아서 노동청에 진정을 넣었다”고 말했다.
유기 씨는 결국 체불임금(주휴수당 및 퇴직금), 휴게시간 미준수 등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대구고용노동청에 진정사건을 접수했다. 접수 6개월 만에 조사가 끝났고, 체불임금 579만 원에 대한 체불 금품 확인원을 발급받았다. 올해 8월, 해당 사업주에 대한 형사 재판이 열려 유죄 판결이 났지만, 벌금은 고작 30만 원에 불과했다.
그는 “노동청에서 조사하는 데만 6개월이 걸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최대 50일 안에 진정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6개월이 다 지나서야 고소하는 방법도 있다고 알려주더라”며 “대부분 알바 노동자가 하루 일해서 먹고 살기 바쁜데, 우리가 받지 못한 임금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느냐”고 하소연했다.
유기 씨는 지난 11월 사업주로 상대로 낸 민사 소송에서도 승소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사업주에게?체불임금과 미지급 기간 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항소 마감일까지 사업주가 항소하지 않았다. 일을 그만둔 지 20개월 만에 유기?씨는 체불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확답을 받은 것이다.
이에 2일 오전 10시 30분, 알바노조 대구지부는 대구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진정사건 조사에 6개월, 체불임금 받는 데 20개월 걸린 대구고용노동청 근로감독관의 직무 태만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민원 처리 기간은 25일 이내이며, 1회에 한하여 25일 연장이 가능하다. 그 이후에도 조사가 마무리되지 않으면 진정인에게 동의를 구해야 한다. 그러나 서 씨에게 어떠한 통보도, 동의를 구하는 시도도 없이 자그마치 6개월간 서 씨의 진정 사건을 방치했다”며 “이는 집무규정 위반이며 심각한 직무 태만”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을 더 강화해 처리 기한을 반드시 지키도록 하고, 약자인 노동자의 편에서 근로감독관이 본연의 직무가 가능하도록 근로감독관 증원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이윤태 대구고용노동청 근로개선지도2과장은 “체불 금품 사건의 경우 특히 어려움이 있다. 노동자는 못 받았다고 하는데 사업주는 무조건 아니라고 주장만 하기 때문에 금품 확정이 어렵다”며 “특히나 이번처럼 영세사업장의 경우에는 사업주가 근로기준법에 대한 상식이 없는 경우가 많다. 확증할 증거를 찾는 데 오래 걸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 감독관이 4~50개의 사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예방 감독이 우리 본연의 업무인데, 앉아서 진정 사건을 처리하기도 빠듯하다”며 “지금보다 두배 이상 감독관이 충원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2015년 현재 대구고용노동청 소속 근로감독관은 모두 33명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4년 6월 기준 대구고용노동청 근로감독관 1인당 사업장 수는 1,618 곳이다. (관련 기사:나홀로 1,643개 사업장을 책임지는 근로감독관의 고충)?대구고용노동청은 이를 보완하고자, 올해 예방 감독을 전담하는 광역근로과를 신설하고 5명의 근로감독관을 배치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