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카엘(48, 서울) 씨는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기가 힘들다. 진료하던 의료진도 김 씨가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감염인이라 사실을 알면 대개 진료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병원 입원은 상상할 수 없다.
“서울 모 병원에 갔는데 처음 본 의사가 상담 후에 진료를 거부했어요. 에이즈 환자라고 밝혔기 때문이에요”
“에이즈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너무 심각해요. 아직도 동성애를 해서 생기는 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요” (김미카엘 씨)
아플 때 치료받는 것은 기본적인 권리지만, 현실에서 HIV/AIDS 감염인은 해당하지 않는다. 이에 12월 1일 28회 세계에이즈의 날을 앞두고 30일 오후 4시, 대한에이즈예방협회 대구경북지회 주최로 인권위 대구인권사무소 인권교육센터에서 ‘HIV/AIDS 감염인 장기요양병원·시설 정상화를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에이즈 감염인도 차별 없는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국립 요양병원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다.
주최 측은 토론회에 앞서 전국 1,300여 개 요양병원 중 공공요양병원 23곳과 민간요양병원 5곳을 선정해 감염인 입원을 문의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정부가 전국에서 유일한 에이즈 감염인 장기요양시설로 지정했던 경기도 남양주시의 한 병원도 2013년 지정이 취소됐다. 감염인은 전국 9,615명(2014년 기준)인데, 한국에는 감염인을 위한 요양병원이 없다.
요양병원이 감염인에게 중요한 이유는 에이즈 특성상 장기 지속적 관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반 병원은 진료 대상자의 적극적 치료와 완치를 목표로 두는 반면, 요양병원은 진료 대상자에 대한 장기적·지속 관찰을 목표로 둔다.
또, 요양병원은 ‘일당정액수가제’가 적용돼 감염인 상태에 따라 기본 수가가 책정된다. 감염인 상태 등급별 일일 수가에 입원일 수를 곱한 비용이 병실료, 약값, 인건비 등 모든 의료 관련 비용이 되기 때문에 과잉진료 우려도 적고 진료·입원비 과다 지출도 막을 수 있다.
토론회 주발제자인 김대희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국장(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은 “민간이 아닌 공공이 직접 나서서 공공 직영 요양병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대희 사무국장에 따르면 2014년 6월 기준 전국 1,298개 요양병원 중 72개소만이 공공요양병원이다. 이 가운데 실제 공공 영역에서 직접 운영하는 요양병원은 5개 미만으로 알려져 있다. 99%가 민간 요양병원인 셈이다. 민간 요양병원은 수익성 악화를 우려해 사실상 감염인에 대한 진료와 감염인 입원을 거부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는 ▲민간요양병원을 통해 감염인 병상 확충 ▲간병비 지원 ▲감염성 질환 전문병원 설립 등의 대책을 시행하거나 계획 중인데, 모두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아직 시행된 적 없는 전문병원의 경우 일반 환자 진료를 하지 않으면 운영 적자에 허덕일 것이고, 진료하더라도 감염성 질환에 대한 전문성을 증진하기 어려운 난관에 빠진다는 것이 김대희 사무국장의 전망이다.
김대희 사무국장은 “지금 있는 공공 병원도 정부 지원이 줄며 수익 창출이 강요됐다. 감염 전문 병원은 흑자가 나오기 어려운 구조”라며 “공공이 직접 나서서 요양병원을 만들어야 한다. 감염인만이 아닌 일반 시민을 위한 공공 요양병원이 되면 세금도 적절히 투여되고 감염인에 대한 낙인효과 없이 치료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지정토론에서 권미란 에이즈환자건강권보장과국립요양병원마련을위한대책위원회 활동가가 ‘지역에서의 해결 모색이 불가피하다’며 지역 관련 조례 개정 등을 주장했다. 김미카엘 한국감염인연합회 KNP+ 공동대표는 요양병원에 갈 수 없는 감염인의 현실을 호소했고, 김신우 경북대학교 감염내과 교수는 의료진의 입장에서 요양병원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은종영 경상북도 보건정책과 사무관은 정부의 관련 진료와 요양에 필요한 네트워크 구축 계획 중 경상북도의 역할을 알렸고, 이재화 대구시의회 문화복지위원장은 요양병원 정상화를 위한 지자체 차원의 제도 구축 방안을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