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피해자만 남긴 대구미문화원 폭파 사건, 실체는 무엇인가?

고문조작 인권침해 사건의 향후 과제 토론회 열려

21:02

“저는 환자입니다. 지금 많이 치유됐지만, 옛날 이 사건 이야기할 때는 눈물 없이 이야기 못 합니다. 그때 고문을 받으며 크게 배운 것이 있는데, 인간이 참 나약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트라우마가 얼마나 깊은지 다른 사람은 모릅니다. 문화원 터지던 그 시간에 향촌동에서 후배 3명하고 막걸리를 마시면서 학생운동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학생 운동을 주도하던 시기라 저는 서울로 도망갔다가, 다시 자진해서 조사를 받으러 갔습니다. 그길로 온갖 구타와 고문을 받았습니다. 닷새를 잠을 안 자며 구타당한 적도 있습니다. 출소 후에도 잘 때마다 두들겨 맞는 꿈을 꿨습니다.”

– 대구미문화원 폭파 사건의 고문 피해자 박종덕 씨

▲1983년 미문화원 폭파 사건을 빌미로 고문받고 투옥된 박종덕 씨

1983년 발생한 대구미문화원 폭파 사건은 박종덕 씨를 포함한 고문 피해자만 여럿 만들어냈다. 36년 만에 고문 피해자들에 대한 재심 재판이 열렸고, 무죄·면소 판결이 내려졌다. 하지만 여전히 폭파사건의 실체는 오리무중이다. 사법적 판단과 별개로 사건 실체를 규명해야 하는 숙제는 남았다.

특히, 당시 수사기관이 전문진술(傳聞陳述, 진술자가 타인에게 전해 들은 사실에 대한 진술)을 근거로 북한 간첩 소행으로 얼렁뚱땅 결론을 내린 것은 남북 갈등 관계 심화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치안 불안에 시달리게 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1일 오후 6시 30분, 국가인권위 대구인권사무소 인권교육센터에서는 폭파 사건을 이유로 만들어진 고문조작 인권침해 사건의 무죄 판결이 갖는 의미와 남은 과제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지난 10월 무죄 판결을 받은 박종덕, 손호만 씨가 참여했고, 임채도 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위원, 이재동 전 대구지방변호사회장, 서창호 인권운동연대 상임활동가도 발제자로 나섰다.

▲11일 오후 6시 30분, 대구인권교육센터에서 1983년 대구미문화원 폭파사건 관련 고문조작 인권침해 사건 무죄 판결의 의미와 향후 과제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서창호 상임활동가, 손호만 부본부장, 이재동 변호사, 김승무 인권실천시민행동 대표

발제자로 나선 임채도 전 조사위원은 진실화해위 활동 중 박종덕 씨 사건을 조사하고, 해당 사건의 재심을 권고한 바 있다. 이날 임 전 조사위원은 미문화원 폭파 사건 수사가 핵심 증거물 보존도 되지 않은 부실 수사였고, 이는 남북 관계 악화, 민간인 고문 피해, 치안 불안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임 전 조사위원은 “폭파 바로 다음 날 충분한 조사도 없는 상황에서 수사기관은 대공 용의점을 두고 무차별적 수사를 시작했다. 폭발물 두 개 중 터지지 않은 하나를 충분히 조사하지도 않고 현장에서 터트렸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시 수사본부는 미문화원을 북괴공작원이 폭파 후 복귀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부산 다대포 침투 생포 간첩이 남파되기 전에 ‘대구미문화원 폭파에 성공했다’는 무전 감청을 했다는 전문진술이 그 근거”라며 “미문화원이 폭파된 것도 아니고 고등학생 한 명이 죽었는데 성공이라 할 수 있나. 전문진술 자체의 실재 여부를 확인하고 그 신빙성도 검토해야 한다. 사건에 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진 지정토론에서 고문 피해당사자 손호만 씨는 “여전히 국가폭력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미문화원 폭파 사건 진실 규명도 여전히 중요하다”며 “해방 이후 역사적 맥락 속에서 재조명도 필요하다”고 사건 실체 규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재동 전 대구지방변호사회 회장은 미문화원 폭파사건 피해자에 대한 국가 책임과 명예회복에 대해, 서창호 인권운동연대 상임활동가는 국가폭력 인권침해 재발 방지와 그 과제에 대해 토론했다.

대구 미문화원 폭파 사건은 1983년 9월 22일 대구시 수성구 삼덕동에 있던 미문화원에서 폭탄이 터져 경찰 등 4명이 다치고 고등학생 1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공안 당국은 경북대학교에서 학생운동을 주도하던 이들을 주도자로 지목하고 영장도 없이 원대동 대공분실로 끌고 가 고문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10년 조사보고서를 통해 해당 사건이 고문 조작됐다고 밝혔다. 진실위는 “신청인이 약 30일간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잠 안 재우기, 구타, 관절 뽑기 등 가혹 행위를 당하는 등 인권을 침해받았고, 미문화원 사건과 달리 별건 반국가단체 고무 찬양 동조죄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는 관련 법에 따라 재심사유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이후 박종덕 씨 등의 신청으로 재심 재판이 열렸고, 지난 10월 대구지방법원은 박종덕, 함종호, 손호만, 안상학, 우성수(사망) 씨에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죄는 면소 판결을, 박종덕 씨에 대한 국가보안법, 반공법 위반죄는 무죄를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