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에는 3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모두 권력이라는 공통된 욕망을 품고 권력을 지키거나, 빼앗거나, 뺏기는 삼각 구도를 완성한다. 권력 쟁탈의 서사는 여성보단 남성 캐릭터가 중심이 되는 구조가 익숙하다. 그 가운데 여성들의 권력투쟁의 적나라한 모습을 담은 영화는 낯설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통쾌했다. 권력을 가진 여왕을 차지하기 위해 성적으로 유혹하고, 상대편을 궁궐에서 쫓아내며 자신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나는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이들의 힘이 어디에서부터 시작하는지 궁금했다. 아직도 자기 목표를 가지고 도전하는 여성들에게 ‘기가 세다’, ‘드세다’와 같은 부정적인 판단을 서슴없이 표출하는 사회에서, 나는 욕망에는 누구나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는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권력 투쟁의 관계를 통해 노골적인 욕망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보게 만든다. 영화 속 캐릭터들은 오롯이 자신의 욕망에 집중한다. 영화와 달리 현실에선 사회의 시선으로부터 눈치를 보거나, 두려움을 견뎌야 한다. 그럼에도 욕망의 주인이 자신임을 드러내는 이들이 있다. 스탠드업 코미디쇼 <농염주의보>의 박나래와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당원이었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의당에 입당한 이자스민이 그들이다. 박나래는 <농염주의보>에서 자신을 징기스칸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정복’한 남자와 그렇지 않은 남자를 구분한다는 뜻이다. 남성은 여성을 ‘정복’하려는 욕망이 있다는 이야기는 흔히 들어왔지만, 여성의 기준으로 ‘정복’한다는 말을 공식적으로 한 것은 박나래의 유머가 처음일 것이다. 박나래의 쇼는 여성의 욕망의 대상으로 남성을 대한다. 남성서사에 반기를 가한 것이고, 기존의 질서라 여겼던 남성서사를 전복시켰다. <농염주의보>가 여성에게 환영받는 것은 욕망의 주체가 ‘나’임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 행적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이자스민 자신은 정의당 당원이 되는 것을 통해 당을 ‘선택’할 수 있고, 소속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자스민 의원은 2만 5,000명의 이주민 여성들을 위해 버틸 것이란 그만의 욕망을 표출했다. 자유한국당에서 정의당으로, 서로 극단에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당으로의 이적 때문에 그에게 철새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정치적 비판일 수 있다. 하지만 철새는 자신의 먹잇감을 직접 찾아 나서겠다는 욕망이 있기에 행동한다. 이자스민의 ‘철새’ 같은 행동은 정치인으로서, 여성으로서 정치 활동을 통해 이루고 싶은 욕망을 해소하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볼 수 있다.
연예인과 정치인이라는 특수성 이전에 ‘여성’으로서 욕망의 주체성이 드러날 때, 기존의 서사에 익숙했던 이들은 낯선 기분을 느낀다. 객체였던 여성들이 주체가 되었을 때의 ‘통쾌함’은 ‘나’의 욕망을 자극하여 각성시킨다. 박나래와 이자스민의 욕망이 반가운 이유는 그들의 욕망이 ‘나’의 욕망과 다를 것 없으며, 능동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이들의 행동을 통해 ‘내’가 가진 욕망을 지지받기 때문이다. 그들이 드러내는 욕망의 형태는 사회가 개인에게 강요한 선을 넘나드는 원동력이 된다. 박나래와 이자스민이 넘은 ‘선’은 성적이든 정치적이든, 여성의 욕망 또한 다양한 형태로 표출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욕망의 전제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자각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그동안의 여성서사가 개인의 욕망은 제거한 채 사회적 역할에 순응하게 만들었다면, 박나래와 이자스민의 여성서사는 욕망의 주체성이 자신임을 밝힘으로써, 구체적으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자신의 행동을 통해 드러낸다. 제2의 박나래, 제2의 이자스민을 넘어서 개인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사회적 시선이라는 이름의 눈치와 두려움을 뒤집는 ‘농염’하고, ‘철새’ 같은 욕망을 가진 여성서사는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