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돋보기]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싶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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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이 되자 가슴에 몽우리가 잡혔다. 엄마는 시장 란제리 가게에 가서 면으로 된 하얀 브래지어를 사다 주었다. 브래지어를 처음하던 날 가슴이 답답하고 가슴골과 등이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순간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하는 숙녀로 변신한다. 간혹 남자교사들은 격려라며 브래지어 끈을 중심으로 등을 어루만지기도 했다. 브래지어 끈을 잡고 새총 고무줄 당기듯이 놀이를 하는 놈들도 있었다. 잠들기 전 브래지어를 벗어버리고 나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몸을 옥죄는 속박에 더해 여성이라는 이유로 신경 써야 할 하나의 짐이 벗어지는 것이니까.

탈코르셋이 페미니스트 운동이라고 해서 도대체 우리나라 여성들은 언제부터 브래지어를 착용하게 되었는지 찾아보았다. 분명 근현대사 강의를 들으며 보았던 사진자료집에 우리나라 여성들은 아이를 업고 가슴을 훤히 드러낸 채 물동이를 이고 가고 있었단 말이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일제강점기에 도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인터넷 검색은 브래지어에 대한 놀라운 것들을 많이 알려주었다. 전쟁에서 가슴의 보호구로서 어원을 찾고 있었으며, 브래지어의 후크를 개발한 사람은 놀랍게도 톰 소여의 모험을 쓴 ‘마크 트웨인’이기도 했다. 여성이 브래지어 착용을 힘들어하는 모습에 후크라는 놀랍게도 편리한 도구를 만들어주다니. 여성이 걸레질하는 게 힘들다고 하니 무릎보호대를 착용하게 해주는 형국이다.

그 외에도 가슴 쳐짐을 이유로 브래지어를 한다는 설은 터무니없으며 오히려 브래지어 착용을 통해 피부질환이나 유방암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한다.

프랑스 어느 대학은 하물며 이 브래지어를 대상으로 연구까지 한 결과 최종결론을 이렇게 내리기도 했다.

“의학적, 생리학적, 해부학적으로 여성의 가슴이 브래지어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가슴이 더 처지는 효과만 있을 뿐”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고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한 연예인이 삶을 마감했다. 무수한 악플에 시달려 우울했다고 한다. 그녀의 노브라는 논란의 기삿감으로 소비됐다.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페미니즘을 빌리지 않더라도 수없이 많다.

내가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단지 편하고 건강하게 살고 싶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