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논란이 두 달째 지속되고 있다. 후보자 시절 제기된 의혹들은 장관 임명 후에도 가라앉지 않고 진행 중인 검찰수사와 함께 더욱 증폭되고 있는 모양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지난 한 달여 간 조국 당시 후보자와 관련해 신문과 방송에서 나온 ‘단독’보도를 분석한 결과, 총 14개 신문사‧방송사에서 한 달간 286.5건의 단독 기사를 냈다. 하루에 10건씩 조국 당시 후보자와 관련해 새로운 의혹을 제기한 셈이다. 그야말로 조국 법무부 장관과 관련한 보도가 다른 의제들을 잠식해버리는 ‘조국의 조국(祖國)’이 연출되고 있다.
이러한 언론보도를 두고 시민 집단과 기자 집단 사이에 갈등이 가시화되고 있다. 조국 장관의 후보자 시절 진행된 기자간담회 이후 ‘한국언론사망 성명서’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퍼지는 등 확인되지 않은 사실관계를 퍼 나르는 언론을 비판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기자들은 ‘알 권리’를 내세워 공직자의 업무와 행동을 감시하는 것은 저널리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과 맞닿아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처럼 조국 장관에 관한 의혹제기가 고위공직자의 법적‧윤리적 태도를 감시하는 언론의 의무와 맞닿아 있다면 국민들이 쏟아지는 기사에 피로감을 느낀다 할지라도 이는 정당한 의혹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렇다고 할 수 있는가. 이는 언론의 <단독> 기사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동아일보는 8월 22일 자 신문에서 조국 장관 딸의 단국대 논문 제1저자 의혹과 관련해 ‘딸 외고 유학반에 학부모 모임이 있고 여기서 논문 지도 교수와 조국 후보자가 한두 번 봤을 것이므로 조국 후보자가 제1저자 등재에 영향을 미쳤다’는 내용의 단독 보도를 냈다. 학부모 모임을 가진 것과 인턴십 과정에 조국 장관이 관여한 것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뿐더러 기사에서 제기한 사실관계마저도 추측성 발언에 기반하고 있다. 최근 보도도 마찬가지다. SBS는 9월 22일 8시 뉴스에서 조 장관의 딸이 논문 교수 아들의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증명서를 대신 제출했다는 내용의 단독 보도를 냈다. 조 장관의 딸이 친구의 인턴증명서를 대신 제출한 것이 인턴증명서 허위 제출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검찰발 정보를 통해 그 자체가 범법행위인 양 보도했다.
위의 기사가 ‘단독’이라는 타이틀을 걸 만큼 유의미하기 위해선 제시한 사실관계가 명확한 위법 행위 혹은 정치적 부패와 관련이 있어야 한다. 혹은 그것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라면 적어도 우리 사회가 함께 숙고할만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한다. 조국 딸의 고등학교 유학반 학부모 모임에 논문 지도 교수가 있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면 지도 교수와 조국 장관과 만남에 무게를 둬 억지 인과관계를 만들어낼 것이 아니라 ‘특목고 학부모 모임’ 그 자체에 초점을 뒀어야 한다. 다시 말해 학부모의 재력과 사회적 위치가 유의미한 입시 결과를 만들어내는 한국 사회에서 ‘그들만의 카르텔’을 조준하는 방향으로 기사를 냈어야 한다. SBS의 보도 또한 마찬가지다. 해당 보도가 의미가 있으려면 조 장관의 딸이 친구의 인턴증명서를 대신 제출한 것에 무게를 둘 것이 아니라, “세미나에 한 번 참석했을 뿐 사실상 허위로 수료증을 받았다”는 친구의 발언에 초점을 뒀어야 한다. 이를 통해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주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스펙’이 얼마나 허술하고 불공정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인지를 드러냈어야 한다.
최근 KBS의 <저널리즘 토크쇼J>는 이와 같은 현재 언론의 태도를 문제 삼는 방송(‘검찰과 언론의 공생···알 권리라는 핑계’편)을 내보냈다. 그런데 방송이 녹화된 직후 진행된 유튜브 라이브에서 KBS의 한 기자가 “이 프로그램은 충분히 조국 장관한테 유리하게 방송되고 있는데”라며 현재 언론에 대한 비판이 ‘조국 지지자’에 한한 정파적 입장임을 드러내는 듯한 발언을 했다. 과연 그러한가. 정작 공론화되어야 할 논의들은 내팽개친 채 검찰수사에 목을 맨 듯한 언론의 행태를 꼬집는 것이 ‘한쪽으로 치우친 비난’이 될 수 있는가. 조국 사태를 보도하는 언론들의 집단적인 무의식이 ‘우리 사회가 납득할 수 있는 공직자윤리의 기준’을 공론화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범법자 공직자’를 만들어 감시를 명목으로 한 언론의 성과를 만드는 데 있는 것은 아닌지를 성찰해야 할 때이다.